서울시향 말러 교향곡 9번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말러 교향곡 9번이 연주된 80여 분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4악장 말미, 영원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져가는 현악기의 마지막 음은 이미 이 세상의 소리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흔히 '죽음'과 '이별'을 뜻한다고 해석됐던 말러의 교향곡 제9번에서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 대신 아름다운 '정화'의 빛을 전해주며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 29-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서울시향은 기술적인 면을 논하는 단계를 이미 훨씬 넘어선 기량을 보여줬다.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은 관현악의 웅장함뿐 아니라 실내악적인 섬세함까지 요구되기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매우 두려운 작품이다.
때때로 목관악기 주자는 극도의 여린 소리로 매우 긴 음을 소화해내야 하며, 금관악기 주자는 목관악기에나 어울릴 만한 섬세한 솔로를 선보이는가 하면, 현악기주자들은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갑작스럽게 고음으로 뛰어오르며 아슬아슬한 연주를 해내야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을 준비하는 리허설 시간의 대부분은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데 소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이미 오래전에 그 단계를 뛰어넘은 듯,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능숙한 앙상블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말러 교향곡 9번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헤쳐 이 교향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첼로와 호른의 독특한 리듬으로 1악장이 시작되자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삶으로부터의 이별'을 음악으로 그려냈다. 때때로 이별에 저항하는 열정적인 주제가 현악기의 풍부한 음색으로 폭풍처럼 표현되기도 했지만, 1악장 클라이맥스 이후 세 개의 종소리와 장송행진 리듬으로 표현된 이별 의식은 말러가 1악장 자필 악보에 적어놓은 "오! 젊은이여, 사라졌구나!"를 떠올리게 했다. 정연하고 흔들림 없는 리듬으로 표현된 장송음악은 젊음에 집착하고 그리워하는 이별이 아닌, 젊음의 미숙함을 떠나보내는 즐거운 이별처럼 다가왔다.
비범한 해석으로 교향곡 1악장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은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2악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연주로 2악장의 풍자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서두에서 다소 과장된 제스처로 표현된 제2바이올린의 대범한 활쓰기는 죽음과 이별을 조롱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3악장의 연주는 경이로웠다. 3악장은 마치 바흐의 푸가 몇 곡이 동시에 연주되듯 여러 주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말러의 교향곡 악장 가운데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는 거침이 없었고, 복잡하게 얽힌 모든 성부가 낱낱이 들려올 정도로 명확했다. 말러 교향곡 9번 3악장의 짜임새를 이토록 명쾌하게 풀어헤친 지휘자가 있었던가! 정명훈의 지휘도 놀라웠지만, 그 믿을 수 없는 빠른 템포를 따라가며 3악장의 각 주제를 살아 움직이게 한 서울시향의 신들린 연주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엑스터시를 맛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4악장이 시작됐을 때는 이미 무대의 연주자나 객석의 관객은 말러의 음악 속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음악 삼매경' 그 자체였다.
이번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연주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와 함께 한 협연 무대도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기존의 관습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카바코스의 바이올린 연주는 매우 자유분방했다. 아마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공부해본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독특한 운지법과 운궁법을 선보이며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뒤엎는 그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카랑카랑하게 표현된 그의 바이올린 음색에서 고귀한 기품을 발견할 수 없다고 투덜대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즉흥연주처럼 생동감 넘치는 그의 연주에는 분명히 관객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특히 협연자와 오케스트라가 잘 맞춰 연주하기 어려운 이 협주곡에서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탁월한 감각으로 카바코스의 변화무쌍한 연주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내며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연주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서울시향의 이번 공연은 근래 보기 드문 영감에 찬 연주회였다. 교향곡 연주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 음의 여운이 아름답게 사라져갈 때까지 관객들을 긴 침묵으로 교향곡 연주에 동참했으며, 그 여운이 모두 사라졌을 때 '브라비시모'를 외치며 연주자들을 향해 열띤 환호를 보냈다. 청중에게 이토록 큰 영감을 전하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에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된 시간이었다.
herena88@naver.com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31 14:1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