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사학자 강덕상씨 인터뷰…"재해 와중 우연한 사건 아니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대형 재해 와중에 유언비어 때문에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일제의 침략사(史)와 조선의 저항사가 누적된 상황에서 일본내 무고한 조선인을 상대로 일제가 벌인 전쟁이자, 국가권력의 조직적 학살이었다."
재일 사학자 강덕상(82)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은 내달 1일로 다가온 간토(關東)대지진(1923년 9월1일) 발발 90년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지진 당시 일본의 군대와 경찰, 자경단이 조선인 수천명에게 자행한 학살을 이렇게 규정했다.
그러면서 강 관장은 일본의 올바른 역사교육 부재 때문에 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왜곡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90년 간 살아 내려왔고, 결국 최근 혐한시위의 뿌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강 관장은 일본 정부에 과거사 직시를 촉구하는 동시에 대학살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도 맹성을 촉구했다.
1960년대부터 간토대학살 관련 자료를 모아 연구한 강 관장은 2005년 한국에서 번역돼 출간된 저서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1975년 초판 발행)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세상에 알리는데 기여했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도쿄 미나토(港)구에 위치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 이뤄졌다.
◇"전쟁·내란때 발령하는 계엄령 발동…적은 조선인이었다"
강 관장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제의 조선 침략, 갑오 농민전쟁, 의병투쟁, 한일 강제병합, 3·1운동 등으로 이어진 일제 침략과 조선의 저항 역사 속에 일본은 조선인을 두려움의 대상이자 제거의 대상으로 여겼다"며 이런 심리가 대지진의 와중에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적 적대행위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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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사 연구 강덕상씨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연구해온 재일 사학자 강덕상(82)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간토대지진(1923년 9월1일) 발발 90주년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3.8.29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jhcho@yna.co.kr
강 관장은 간토대지진 직후 일제가 계엄령을 발령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전쟁과 내란 때 발동하게 돼 있는 계엄령을 자연재해 상황에서 발령해놓고 조선인을 적으로 삼았다"고 지적하고, "군이 학살의 최선두에 섰고, 경찰과 함께 학살을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강 관장은 저마다 편차가 큰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망자 수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수천명 수준인 것은 확실하며 6천여명이라는 당시 임시정부의 추산은 합리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진 발발 당시 도쿄(東京), 요코하마(橫浜) 등 간토지역에 거주한 조선인이 대략 2만여명이었는데, 살아남아 수용소에 모인 사람이 1만1천명이어서 차이가 9천명 정도라고 강 관장은 소개했다. 그러나 피신하거나 선량한 일본인의 보호를 받은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9천여명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혐한시위의 뿌리는 역사교육 부재"…"임시정부도 했던 사죄요구, 왜 안하나"
강 관장은 도쿄 한인타운인 신오쿠보(新大久保)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시위에 대해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며 혐한시위의 원인은 90년전 간토 대지진때 왜곡된 사실을 일본 측이 바로 잡지도, 사실을 정확하게 교육하지도 않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이후 90년 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일본 여성을 성폭행했다' 등의 유언비어가 거짓이었음을 자국민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사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적지 않은 일본인에게 '조선인은 경계 대상'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말라고 다음 세대에 교육해야 하는데 그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적개심이 대를 이어 내려올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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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관동대지진때 무고하게 희생된 조선인들
-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 소재 재일한인역사자료관(관장 강덕상)이 소장하고 있는 관동대지진(1923년 9월1일)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시신 사진이다. 관동대지진 발발 90주기를 맞아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오는 31일부터 12월28일까지 조선인 학살 관련 사진, 그림, 서적 등을 자료관 내에 전시한다. 2013.8.28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jhcho@yna.co.kr
실제로 학살이 일어난 지역 중 하나인 요코하마시의 교육위원회는 관내 시립 중학교 부교재 '요코하마 알기' 2013년판의 조선인 학살 관련 기술에서 '학살'을 '살해'로 변경하고, 학살의 주체에 대한 기술에서 일본 군대와 경찰을 삭제했다. 또 대다수 일본 주류 언론은 간토대지진 90주년을 맞아 일본 권력이 저지른 학살극은 외면한 채 당시의 지진피해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강 관장은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 인기도 일본 국민이 한일 과거사를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상누각'이라고 단언했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 음식을 듣고, 보고, 먹어서 즐겁지만 (역사에 대해) 머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일간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금새 애정이 증오와 환멸로 바뀌고 만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그는 한국 정부가 90년전의 대학살에 대해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강 관장은 "대학살 당시 임시정부는 일본에 항의하고 사죄를 요구했으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가 수립된지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왜 사죄를 요구하지 않느냐"라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제1의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29 18: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