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겨냥 영화 ‘암살’ 천만돌파 직전
815만명은 물론 광복절인 8월 15일을 뜻하는 숫자다. '암살'은 결국 이 숫자를 넘어 광복 70주년이 되는 날에 1천만 고지까지 넘을 전망이다. 14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날까지 966만명을 모았으며 이르면 임시공휴일인 이날 밤, 늦어도 광복절인 15일에는 1천만명 돌파가 확실하다. 독립운동가들의 암살 작전을 그린 이 영화는 무거운 소재인데도 '감동'을 무기로 기존의 천만 영화들보다 두드러지게 20대 젊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국적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을 중심으로 1천개 안팎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하는 것이 당연해진 요즘은 2003년 '실미도'(감독 강우석)가 처음 1천만명을 돌파했던 시대보다 '천만 영화' 내기가 수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계에서는 "천만 영화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통용된다. 영화를 기획할 때는 예측하기 어려운 개봉 당시의 사회적 상황, 시대적 흐름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은 예정된 일정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기 등으로 국민의 불안감이 이어지면서 단단한 구심점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본 정부가 그릇된 역사인식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면서 애국심이 고취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리라고는 '암살' 제작진으로서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명량'과 '국제시장'의 '대박 흥행', 올해 '연평해전'의 '깜짝 흥행'에 이어 '암살'의 흥행 성공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암살'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그 시기가 가장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큰 보상을 받거나 후대에 널리 기억되지 못한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감동적으로 다룬 점이 관객들에게 통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암살'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흥행몰이를 했다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CGV 리서치센터가 '암살'의 관객을 지난달 22일 개봉 이후 지난 12일까지 분석한 결과, 20대가 36.10%로 가장 많았고 30대와 40대가 각각 25%, 25.5%로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오히려 화려한 첩보액션을 보여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이 40대 관객의 비중이 34.7%에 달할 정도로 중년 관객의 호응을 받았고 20대와 30대가 각각 26%, 26.5% 비중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기존 '천만 영화'와도 다른 양상이다. 전 국민의 5분의 1 이상이 보는 영화가 되려면 극장의 주 고객인 20대 외에 30~40대가 고루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역대 최대 흥행작인 '명량'(감독 김한민, 1천761만명)도 20대 관객이 29.4%, 30대가 28.7%, 40대가 30.7%였고 2위 흥행작인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1천425만명) 역시 20대 29.4%, 30대 28.6%, 40대 30.7%로 고른 분포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암살'이 묵직한 주제와는 별도로 최동훈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오락영화로 완성됐다는 점이 통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소감
최동훈 감독은 2004년 '범죄의 재구성'으로 시작, '타짜', '전우치','도둑들', 그리고 '암살'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에는 공통 분모가 많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배역들의 숫자가 여느 영화에 비해 많고, 뚜렷한 안타고니스트(주적)가 존재하지 않는 점, 또 영화 속 멜로들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관객을 당황시킨다는 점, 그리고 런닝타임이 꽤 길다는 점 등이다. 최동훈 감독도 이런 공통점도 유쾌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동훈 :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육혈포가 아닌 총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증은 거쳤다. 안옥윤(전지현)의 모신나강, 염석진(이정재)의 마우저,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의 PPK, 영감(오달수)의 MP-28, 속사포(조진웅)의 톰슨 등이 그렇다. 중점을 뒀던 것은 화려하기보다는 바로 곁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였다. 길고 자세하게 보여주는 쪽을 선호한다. 악전고투하고, 힘겹게 이기고 나아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총을 들고 뛰는 신은 절실함이 느껴져서 가장 좋았다. ”
“총격신도 어렵지만, 자동차 액션은 더 어려웠다. 특히 이번에는 30년대 차종들이다 보니, 속도가 나질 않았다. 카메라 트릭과 편집을 많이 사용한 게 '암살' 속 자동차 장면이다. 상해 촬영장에서 무리하게 세게 밟아서 겨우 찍었는데, 세트장 관리인에게 쫓겨날 뻔 했다. 다행히 마지막 촬영이 O.K컷이 나왔다.”
“멜로는 원래 뜬금없다고 생각한다. 액션보다 멜로가 더 어렵다. 살다보면 멜로는 뜬금없이 온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사고' 같은 거다. 일반적으로는 차곡차곡 준비해서 멜로를 하는데, 난 불쑥불쑥 한다. 멜로영화를 대게 좋아하지만, 재주가 없다. -'타짜'엔 아귀, '전우치'엔 화담, '도둑들'엔 웨이홍이 있다. 그런데 이번 '암살'엔 오히려 타깃이 생각보다 불명확하다. 물론 영화 속에선 '타깃(타게트)'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지만…회색이거나 존재감이 옅다. 명확한 안타고니스트의 부재다.”
“이번이 다섯번째 영화인데, 그런 얘기를 매번 들었다. '타짜' 때는 아귀는 약하지 않나요, '전우치' 땐 화담은 약하지 않나요. '도둑들' 때는 웨이홍은 약하지 않나요, 였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주적이 세면 좋은데, 그보다는 그걸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암살'이라면 암살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두려움도 있지만, 춤도 추고, 기다리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곳에 영화적 시간을 많이 썼다.”
최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