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통제 불능", PC방 흡연방치에 곳곳서 무용론 확산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김보경 김아람 기자 = 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PC방.
PC방 유리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벽 곳곳에 붙어 있는 "이 시설은 금연시설입니다. 흡연 시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무색하다. PC방 내부가 뿌연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김모(31)씨는 "금연정책으로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으로 나뉘었던 공간이 모두 금연구역이 됐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흡연구역이 된 느낌"이라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재떨이 대신 종이컵을 쓰고 있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PC방 등 공중이용시설의 전면 금연정책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난 이날 오후 연합뉴스가 금연으로 지정된 시설의 금연 실태를 확인한 결과, 다른 곳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봉천동의 또 다른 PC방에서도 대부분 손님이 함께 게임을 하는 초등학생들은 안중에도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금연정책 시행 이후 재떨이는 모두 폐기했지만, 그 대신 종이컵이 등장했다. 일부 손님들은 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컵이나 컵라면 용기에 담뱃재를 털기도 했다.
이곳에는 PC방 내 소파와 대형 재떨이를 설치한 1평 남짓한 흡연실이 마련됐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흡연은 흡연실뿐만 아니라 금연공간인 PC 앞에서도 아무런 제한 없이 이뤄졌다.
이 PC방의 직원 김모(30)씨는 "손님들에게 금연이라고 말씀은 드리고 손님들도 알고 있지만, 신경 안 쓰는 분위기다"라며 "어떤 손님은 단속 나오면 자기가 벌금 내겠다고 우기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중랑구 묵동의 한 PC방은 금연을 알리는 알림판을 아예 설치하지도 않았다. 이날 오후 2시께 PC게임 중인 10명의 손님 중 8명이 종이컵을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손님은 "거리에서도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데 PC방에서까지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라며 "게임을 하면서 담배를 안 피울 수 없어 이제 그냥 눈치 안 보고 피운다"라고 말했다.
금연대상으로 지정된 음식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식당 주인들은 "취객이 많아지는 늦은 밤이 되면 손님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며 하소연했다.
종로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한 이모(57)씨는 "초저녁은 그나마 괜찮지만 손님들이 취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금연이라고 말을 해도 안 통한다"라며 "손님과 싸울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종이컵을 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흡연을 고집하는 손님을 위해 비공식적인 흡연석을 만든 맥줏집도 있었다. 흡연석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마련됐고 유리벽을 세워 비흡연석과 구분했다.
맥줏집 주인 이모(54·여)씨는 "장사도 안 되는데 금연정책 하게 되면서 손님이 더 없다. 처음에는 금연이라며 담배 피우는 손님 막고 쫓아내고 그랬는데 손님이 없어지니까 이제는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로 강남역 인근에서 자주 술을 마신다는 회사원 류모(36)씨는 "음식점 10곳 중 7곳 정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종이컵을 달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갖다준다"라며 "단속이 지금보다 몇 배 강화되지 않는 한 제도 정착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으로 지난달 1일부터 150㎡ 이상의 식당·술집·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면 1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PC방은 지난 6월부터 금연구역에 포함됐지만 6개월의 계도기간이 적용돼 올해 말까지는 위반 사실이 적발돼도 처벌받지 않는다. 다만, 계도기간이라도 고의로 법령을 지키지 않는 등 금연정책에 불응할 때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일부터 19일까지 PC방과 150㎡ 이상의 음식점을 대상으로 전면금연 단속을 벌여 1천452명을 적발했으며 이 중 663명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31 20:5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