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요즘 여자 아이들에게는 '색깔 선택권'이 거의 없다. 태어나자마자 핑크색으로 뒤덮인 옷을 입고 핑크색 벽지가 발린 방에서 자란다.
또 기형적인 몸매의 공주 인형을 갖고 놀며 '공주님'이라고 불린다. 토마스 기차나 전투기라도 들고 다니면 "여자 아이가 무슨!"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여자 아이는 유전적으로 핑크색과 공주 인형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상황은 달랐다. 메이태그라는 유명한 자동세탁기 브랜드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아기가 실용적 관점에 따라 흰옷을 입었다.
여성의 성 정체성 형성에 깊은 관심을 둬온 미국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스타인에 따르면 성별 차이가 극대화된 것은 1980년대 마케팅 전략 탓이다.
그는 최근 국내 번역된 신간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원제: Cinderella Ate My Daughter)에서 대중문화와 상업 전략 때문에 여자아이들의 성 정체성이 왜곡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했다.
"핑크색 야구 배트를 만들면, 부모들은 딸에게 그걸 사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다른 색깔의 야구 배트를 사줄 거고요. (중략) 어찌 됐건 판매량이 두 배가 된다는 얘깁니다."(73-74쪽)
남녀 성에 맞는 색깔을 정해서 홍보하면 같은 상품을 한 번 더 팔 수 있다는 완구제조업체 관계자 이야기다.
저자는 또 '공주 문화'에도 화살을 날린다. 부모가 금쪽같이 소중한 딸을 '공주'라고 떠받드는 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디즈니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엄마들은 '아름다움'이 아닌 '영감' '동정심' '안전'을 공주의 특성으로 여겼다. 아이가 너무 일찍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심리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디어나 상점에서 홍보하는 인형과 공주는 아름다움과 섹시함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여자아이들이 주류 미디어를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아름다움과 섹시함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는 증거가 넘쳐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아름다움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행동을 중시하는 여성들은 야망이 적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주장한다. 의욕적이고 진취적인 여자아이조차 이런 문화에 끊임없이 노출되면 학업 성취도가 낮아지고 생각의 범위도 좁아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여성이 되는 과정은 매혹적이지만, 그 길은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소비자인 여자아이들을 동시에 상품으로 소비하겠다고 위협하는 늑대 같은 문화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며 "여자아이들이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나서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유치원생에 불과한 여자아이가 짙게 화장하고 요염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국내 미디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 어린 나이에 섹시함으로 무장한 아이돌이 넘쳐나는 우리 현실을 비쳐볼 때 진지하게 되새겨볼 만한 조언이다.
김현정 옮김. 에쎄. 336쪽. 1만5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31 11: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