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청혼' 출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지금까지 이렇게 스케일이 큰 연애편지는 없었을 것이다. 배명훈(35)의 신작 '청혼'은 우주의 남자가 지구의 여자에게 우주에서 날려보낸 길고 긴 연서(戀書)다.
지구에 가면 중력을 견디지 못해 반쯤 기어다니는 우주 출신의 '나'와 우주에 나오면 멀미를 견딜 수 없는 지구 출신의 애인이 사귄다. 우주공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대치하는 궤도연합군의 작전장교 '나'는 금쪽같은 휴가에 170시간을 날아서 40시간을 지구 애인과 보낸 뒤 180시간을 날아 복귀한다.
이렇게 애달프게 사랑하지만 우주 출신과 지구 출신 사이에 메워지지 않을 깊은 골이 있다. 이것은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생기는 것과는 다른, 지구 출신끼리의 사랑에서도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심연 같은 것이다.
"우주공간에 떠 있는 일이 늘 조난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주위의 빈 공간에 비해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야.(중략) 조난. 그래, 그건 조난이야. 무언가에 깊숙이 잠겨버리고 만다는 뜻이야. 어둡고 고요하며 거대하고 또 막막한 무언가."(93쪽)
22일 전화로 만난 작가는 '희박한 밀도를 갖고 있는 우주라는 공간에 점 하나 찍힌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너무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그에 맞서 싸우거나, 기본적으로는 외로워지는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공간만큼 사랑하는 거'(62쪽)라고 말하고 싶은 걸 한 마디로 줄여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지구 애인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분명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이 필연적인 거리를 작가는 우주라는 광활한 영역으로 확장해 새로운 공간감으로 느끼게 한다.
작전장교인 주인공이 사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적과 여섯 번의 교전을 치른다. 서로의 위치를 탐지하고 공격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방어하는 과정은 사랑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닮았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상대할 때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거리는 우주 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이렇게 소설 속엔 전쟁과 우주, 사랑이라는 세 가지 이야기가 차곡차곡 맞물려 있다.
중편이지만 동화 같은 편집으로 260쪽 분량이 됐다.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에서 애인에게 편지를 쓰는 가만가만한 목소리가 중력이 점차 스러지는 것 같은 특유의 서정을 만들어낸다.
문예중앙. 1만3천800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23 06:0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