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사태, 엄중 문책 불가피
검찰 수사에 따라 후폭풍…정부 초강수 배경도 관심
(광주·바르셀로나=연합뉴스) 전승현 장덕종 기자 = 정부가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에서 국무총리 사인 등을 위조한 혐의로 강운태 광주시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자치단체장이 국무총리 사인을 위조한 혐의로 고발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수사 결과에 따라 후폭풍이 예상된다.
◇ 정부, 강운태 시장 고발 '초강수'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관계자는 19일 "2019 세계수영대회 유치에 나선 광주시가 국제수영연맹(FINA)에 제출한 유치 의향서 중 정부의 재정 지원을 보증하는 서류에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인을 위조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최종 개최지 발표가 나면 유치 여부에 관계없이 강 시장을 공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광주시는 지난해 10월 FINA에 제출한 유치 의향서 초안에 '정부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버금가는 1억달러의 지원을 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포함했다. 이 문서에 들어간 김 전 총리와 최 전 장관의 사인을 정부 승인 없이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 4월 29∼5월 1일 FINA 현지실사단이 정홍원 국무총리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위조된 문서를 발견, 곧바로 광주시에 고발 방침을 통보했다.
이후 광주시는 FINA에 제출한 위조된 문서를 파기하고 대신 정부의 동의를 얻어 구체적인 액수를 삭제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지원문서로 대체했다.
광주시는 대회 유치 확정 때까지 고발을 미뤄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고발 방침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초강수를 뒀다.
◇ '위조', '단순 실수' 공방
강 시장은 개최지 선정 이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고발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강 시장은 개최지 선정이라는 중요한 시점에 정부가 고발 방침을 알린 데 대해 "정부가 이미 알고 있고, 문제도 해결됐는데 상식적이지 않은 행태를 자행해 개탄스럽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광주시는 실무자의 실수로 문서가 위조됐다고 밝혔다. 의향서 작성 대행 전문 업체가 사인을 스캔해 첨부함으로써 빚어진 실수라는 것이다.
강 시장은 "최종 제안서 이전에 제출한 의향서는 의미 없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고발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 앞으로 조사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윗선 지시·묵인 없었나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법적 책임 소재가 가려지면 후폭풍도 예상된다.
우선 피고발인인 강 시장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무총리의 사인을 위조한 실무자가 누구인지, 윗선과 교감이 없었는지 등이 밝혀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대회 유치를 목적으로 총리·장관의 사인을 위조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으므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광주시는 검찰수사와 관계없이 강도 높은 자체 감찰을 실시, 국내외 망신을 산 '공문서 위조'와 관련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적·도덕적·행정적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이와 관련,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를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U대회) 조직위 관계자들의 책임론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 "유치 결정 당일 날벼락"…유치단 당혹
광주시 공무원들은 대회 개최지 결정을 불과 5시간 앞둔 상황에서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당혹감과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한 공무원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며 "다 된 밥에 재 뿌린 격이 되는 것 아니냐"고 대회 유치 차질을 걱정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에 파견된 유치대표단의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광주시 안팎에서는 정부가 대회 유치 당일 '공문서 위조'와 고발 사실을 언론에 확인해주는 초강수를 둔 배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광주시 유관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회 유치가 확정된 후 언론에 보도돼도 될 내용이 대회 개최지 결정 몇 시간을 앞두고 공개된 데 대해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은 "바르셀로나 현지에는 경쟁도시인 헝가리 수상이 득표활동을 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개최지 결정 당일 고발 운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광주만 외롭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고 말했다.
◇ 유치 과정 문제 제기, 지원 중단으로 준비 차질 우려
광주시는 U대회 개최에 맞춰 건립 중인 수영경기장을 활용하고 10억∼20억원을 들여 싱크로나이즈드, 수구, 오픈워터 등 관련 시설을 건립할 방침이다.
200여개국 2만여명의 인원이 대회 기간 광주를 찾을 것으로 보여 관광객 유치 등으로 '적자 대회'를 극복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미 U대회 준비를 위해 수백억원을 투입할 예정인 데다 세계수영대회 준비까지 겹쳐 열악한 재정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더욱이 정부는 세계수영대회 등 일부 마이너 국제 스포츠 대회를 자치단체장의 '치적쌓기'라며 예산 지원을 엄격하게 심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아 정부 지원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서 위조까지 불거져 정부 지원을 요구할 명분도 약해진 형편이다.
강 시장은 "정부 예산 지원은 정부가 아닌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며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정부가 자동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20 00:4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