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청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묻힌 동구릉의 건원릉, 태종 이방원의 헌릉, 세종 이도 무덤인 영릉의 조선초기 왕릉 신도비 3기와 해인사 관음암 내전수함음소(觀音庵 內典隨函音疏)를 각각 보물(1803-1806호)로 지정했다고 16일 말했다.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죽자 건원릉을 조성하면서 그의 조선 건국 과정과 생애와 업적 등을 담아 새긴 비석이다.
비문은 권근(權近.1352-1409)이 썼고, 비석 뒷면에 새기는 글인 비음기(碑陰記)는 변계량(卞季良.1369-1430)의 작품이다. 전서체 제목 글씨인 전액(篆額)은 정구(鄭矩.1350-1418), 비문 글씨는 성석린(成石璘.1338-1423)이 썼다.
용 모양 비석 머리 부분인 이수와 몸통인 비신(碑身)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조선 초기 왕의 신도비는 물론 여타 이 무렵 신도비의 전형이자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헌릉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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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는 세종 4년(1422) 이방원(李芳遠.1367-1422)의 무덤에 세운 것으로 이 비문 역시 변계량(卞季良)이 지었다.
전액은 권홍(權弘.1360-1446) 작품인 이 비문의 글씨는 누구 작품인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 초기의 서예문화와 그 경향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거북 모양 받침돌인 귀부(龜趺)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손상됐지만 이수는 원형이 잘 보존됐다.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는 1452년(문종 2)에 세웠다. 비문은 정인지(鄭麟趾.1396-1478)가 짓고 안평대군 이용(李瑢.1418-1453)이 썼다.
비록 비신은 표면이 심하게 부식됐지만 "겸 성균관대사성 신 정인(兼 成均館大司成 臣 鄭麟)"과 같은 중요한 부분이 남아 있고, 비신과 한 돌로 제작한 이수가 원형을 잘 간직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관리한다.
영릉 신도비 |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內典隨函音疏卷四百九十) 목판'은 고려 고종 32년(1245)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하여 완성한 경판이다.
내전(內典)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불경이고, 음소(音疏)는 음에 대한 해석을 뜻하는 것이다. 내용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여섯 가지 실천덕목인 육바라밀다(六波羅蜜多)를 설명한 데 대한 주석이다.
본문은 반야(般若)가 한역한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 10권에 대한 음의(音義)를 내용으로 하면서 끝부분에 '을사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는 기록을 통해 이 목판이 간행된 시기를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대장경목록에도 없이 인쇄본만 알려졌다가 이 경판이 발견됨으로써 대장경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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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16 09:3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