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빈 기자/스포츠닷컴]
1. 유언비어 의존
일부러 침몰시켰다, 일부러 구조하지 않았다, 잠수함이 침몰시켰다 등등 유언비어가 SNS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 모여서 농성을 하고 서명을 하고 길거리에 자기 이름으로 노란 깃발을 다는 사람들 가운데 저런 유언비어에서 자유롭게 냉철한 이성에 근거하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옛날 광우병 사태 당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에도 광우병 시위에 참여하던 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말해서 앞으로 10년쯤 뒤에 정말 광우병 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진보 진영 전체가 사기를 친 것이 된다.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과학이 뭐 그리 중요한 거냐?”는 것이더군요. 대중을 우습게 보고 관리와 조작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나오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나 진보진영은 현재보다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면서 정치사회적인 신뢰자산을 쌓아가는 집단입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주어야 한다는 거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인정받으려면 신뢰의 축적이 필수적입니다. 대중에게 장기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사실적인 근거가 탄탄해야 하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자신이 먼저 엄격해져야 합니다.
그냥 대충 무책임하게 내질러보는 방식으로는 우선 당장은 효과를 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걸 가리켜 언 발에 오줌 누기, 봉사 제 닭 잡아먹기,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합니다. 후유증이 무섭다는 얘기에요. 보따리 장사 식으로 터뜨리고 튀는 방식은 이명박의 장기인줄 알았는데 요즘은 진보 진영의 유일한 무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유언비어의 희생자들입니다.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뜨리고 사람들 그리고 그 유언비어를 사실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뜨리는 사람들보다 그 유언비어를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합니다. 유언비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가장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유언비어를 만들고 유포하는 사람들은 그 유언비어의 근거가 별로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유언비어를 만들고 퍼뜨리면서도 그 유언비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유언비어에 근거해서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주식시장에서 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조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은 그 루머에 따른 주식매매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유언비어의 최종 소비자 집단은 사회적인 열위집단으로 추락하기 쉽습니다. 엉터리 근거를 믿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음모론의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 호남 지역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유포되는 유언비어를 철석 같이 믿고 있는 것을 보면 절망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것은 몇몇 그룹의 정파적 이익 때문에 또다시 호남이 정치 사회적 부담을 짊어지는 결과가 되는 셈입니다.
호남은 현 정부에 대해 느끼는 소외감 때문에 그런 유언비어를 수용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호남의 그런 취약점을 악용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행위는 정말 야비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 결국 이 문제를 더욱 키워보자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설혹 세간에 유포되는 그 의혹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게 과연 세월호 비극의 발생과 대응, 수습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세월호 사건의 근본 원인이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청산하지 못했던 관피아 등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대통령이 사고 당시 자신의 근무 위치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그렇게 몇십 년 누적되어온 적폐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새정치연합의 주류 세력이 이 문제를 어떻게든 확대시켜서 집권 세력을 흔들고 그러한 권력의 공백을 활용해보겠다는 의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랜 적폐의 척결과 개선책 마련에 대한 전국민의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소재인 세월호 비극이 이런 정파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국민적 분열과 무한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혹 박근혜 대통령을 흔드는 작업이 효과를 본다고 해서 그것이 대한민국과 대다수 국민들 그리고 야권과 진보진영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새정치연합의 일부 정치인들도 일시적으로 반사효과를 누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대안세력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무책임하고 무분별하고 무능력한 세력으로 영영 낙인찍힐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만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야권과 진보진영 나아가 호남 등 야권 지지세력 전체가 그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 피해가 크다고 봅니다.
3. 지금 진보진영이 놓치고 있는 것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를 위한 최적의 시간대(Golden Time)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깊은 상처가 되었지만, 지금 세월호 특검법 처리와 수습 대책 마련에서도 야권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월호 사건 수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여당과 야당, 유족들 그리고 국민여론 사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약수를 찾아내 그것을 기초로 진상규명과 후속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이었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투입하는 사람과 시간, 조직, 예산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나머지 국민들과 대한민국 전체는 그 문제에서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지만 과연 그 문제가 그렇게 목을 맬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의문입니다. 이 문제는 선악, 시비, 우열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결코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협상의 상대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죠. 설혹 다수파라 해도 이 문제를 그렇게 일도양단 식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법인데, 상대적으로 소수인 야당과 진보진영이 그렇게 선악 이분법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그냥 망하는 것이죠.
사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핵심 사안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 사건으로 300여 명이 입건되고 100명 넘는 사람들이 구속된 것으로 압니다. 언론이 눈에 불을 켜고 캐내야 할 의혹이 없나 뒤지고 있습니다. 설혹 수사권 기소권 없어도 이런 의혹이 제기되면 수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국민적 공감대를 유지하고 확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권은 이렇게 하지 못하고 대한민국 전체가 이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변수는 줄이고 선택지는 최대한 넓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권이 이 문제에 접근해온 방식은 변수는 극대화하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 즉 선택지는 점점 줄여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쾌락으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대로처럼 넓지만, 나중에는 바늘 끝보다 좁아진다’고 했습니다. 꼭 육체적 쾌락이 아니더라도 정치 사회적 이슈의 해결에서 과학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놓치고 감정적인 반응에 의지할 때도 마찬가지 결과가 됩니다. 야권과 세월호 유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고 나중에는 정말 바늘 끝보다 좁아질 것입니다. 그때 세월호 사건의 또 다른 비극이 터져나오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중국 속담에 ‘밤이 길면 꿈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마틴 루터 킹이 말하는 ‘I have a dream’의 그 꿈이 아닙니다. 일종의 사건, 문제를 말합니다. 세월호 사건도 오래 끌면 끌수록 이런저런 말썽과 문제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최근 세월호 유족이나 야당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는 대리운전 기사 폭행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런 사건은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상당한 훈련을 받은 활동가들이라 해도 몇백 명의 집단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긴장감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탄탄한 대오를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유족들은 훈련받은 활동가들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상상할 수 없게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 때문에 들고 일어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른바 강철대오(?)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정서도 일종의 자원이기 때문에 유한합니다. 아무리 슬프고 분노에 가득 찼다 해도 그게 무한정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월호 유족들을 이렇게 길고 지루한 싸움에 끌어들였다는 것 자체가 실책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탈출구가 없다고 봅니다. 처음에 잘못된 포지션을 잡으면 나중에 갈수록 수습이 어려워집니다. 최대한 빨리, 현재 상황에서 얻을 것 얻고 그 이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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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빈 기자 chb05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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