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같은 선수들…대표팀에서 내칠 각오도 돼 있다"
"'원팀(One Team)'은 별것 아니다. 못하면 아웃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올림픽의 영광은 잊었지만 경험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의 대업을 떠안은 홍명보(44) 축구 대표팀 감독은 사령탑 취임 이후 치른 여섯 차례 A매치에서 단 1승(3무2패)에 그치면서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홍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 전패를 하더라도 월드컵 본선에서 이기면 된다'는 게 홍 감독의 굳건한 의지다.
스승인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에게 한때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듯이 지금의 시행착오가 결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태극전사들이 좋은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게 홍 감독의 생각이다.
홍 감독은 '삼바축구' 브라질과의 평가전(12일·오후 8시·서울월드컵경기장)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25명의 태극전사를 선발했다.
명단 발표 이후 축구 팬들은 홍명보 감독이 그동안 강조해온 선수 선발 원칙인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출전'이 다소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비난하고 선수단 파벌을 조장했다는 의혹을 받은 기성용(선덜랜드)에게 너무 일찍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동안 홍 감독에게 호의적인 팬들 사이에서 점차 반대 의견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홍 감독의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 사령탑 취임을 100일을 갓 넘긴 홍 감독은 "올림픽의 영광은 잊었지만 경험만은 잊지 않았다"는 한 마디로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했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감독 경력에 큰 영광을 맛봤지만 이미 기쁨은 잊었고, 이제 그때의 경험만을 살려 월드컵 무대에서 전성기를 펼쳐보이겠다는 게 홍 감독의 의지다.
특히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오로지 한국 축구를 위한 마음만 남겨놓았다고 강조했다.
홍 감독은 "2009년 청소년 대표팀 감독 때부터 한솥밥을 먹어온 구자철(볼프스부르크),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등은 자식과도 같은 선수들"이라며 "내가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 이런 선수들을 내칠 수 있어야 하는 데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대표팀 사령탑 이야기가 나왔을 때 고사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면서 고독하고 힘든 일상을 겪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며 "그때 '이제 자식과도 같은 선수들을 자를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대표팀 사령탑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선수선발 원칙에 대한 솔직한 심경도 털어놨다.
그는 "이번 대표팀 선발을 놓고 원칙에서 물러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지만 원칙은 바뀔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단 특정 선수에 대한 혜택이 아닌 대표팀을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홍 감독은 "개인적으로 팀에서 6개월 이상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면 뽑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K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와 해외에서 주전 경쟁을 펼치는 선수를 놓고 기량을 따질 때 해외파 선수가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며 "지동원(선덜랜드)은 주전은 아니어도 매 경기 벤치 멤버에는 포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전경쟁에 어려움을 겪는 왼쪽 풀백 윤석영(퀸스파크 레인저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홍 감독은 "이번에 왼쪽 풀백을 3명 뽑았는데 모두 성향이 다르다"며 "박주호(마인츠)는 수비에 치중하는 성향이고 김진수(니가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오버래핑이 좋은 윤석영을 선발해 3명을 비교해 보겠다는 의미에서 선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해외 무대에 나가면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달라진 문화 및 언어와도 싸워야 한다"며 팬들이 너그러운 시선으로 해외파 선수들을 응원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편, 홍명보 감독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박주영(아스널)과 기성용에 대해선 "선수들 스스로가 헤쳐나갈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겠지만 이 역시 선수들 스스로 팬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게 홍 감독의 지론이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상태를 묻자 "이번에 런던 출장 때 박주영과 만났다"며 "팀에서 어떻게 하든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겨울 이적 시장에서 자신이 새롭게 뛸 수 있는 팀을 찾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주영도 유럽 무대에서 끝을 보려고 한다"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 감독의 '선발원칙'에 따르면 박주영에게 남은 시간도 이제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또 기성용에 대해선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난 뒤 솔직히 생각지도 않은 기성용 SNS 파문 등이 터져서 솔직히 지치고 버거울 때도 있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홍 감독은 "물론 그것도 내 몫이라는 것을 잘 안다"며 "기성용과 만나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고 당부했다. 선수 본인도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이들이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며 "뽑아서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아웃될 수 있다"는 경고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04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