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재정산 사태 후폭풍
연말정산 소급,-국세청 '멘붕'
유래없는 연말정산 소급적용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연말정산 관련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언제, 어떻게 돌려줄지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들도 고심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회사에서 원천징수해 정부에 납부할 세금에서 환급부분을 미리 빼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며 "회사는 어차피 원천징수해서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미리 정산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각 회사가 직원들로부터 떼게 되는 원천징세액과, 연말정산 소급적용으로 인해 환급해주는 금액을 회사에서 상쇄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직장인들 입장에선 특정 달에 월급에서 떼이는 원천징세액을 환급액만큼 덜 떼이게 된다. 연말정산 시행기관인 국세청은 '멘붕'에 빠진 모습이다. 담당 부서인 원천세과는 '호떡집에 불난 듯' 바쁘다. 연말정산 관련 문의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급적용의 실현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는 국세청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급적용을 했던 적이 없어 갈피를 못잡겠다"며 "이제 하루 전에 큰 방향, 얼개가 나왔을 뿐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고에 오류가 있으면 납세자 본인이 직접 수정 신고해야 되는데 초법적인 문제"라며 "말처럼 쉽게 환급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연말정산 신고를 수정하려면 여러 절차가 필요해 납세자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국세청은 이미 보유한 자료를 활용하는 등 최대한 납세자의 편의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원칙적으로는 이미 징수한 세금을 절차 없이 환급할 수 없다.
'유리지갑' 월급쟁이 1인당 납세 200만원 넘었다
"나라에서 겉으로는 출산을 장려한다고 하면서 결국엔 이번 연말정산을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다둥이 아빠들을 상대로 사실상 증세를 한 것 아니냐. 이제는 화내기도 지쳤다."(직장인) "연말정산 논란으로 영세 자영업자까지 비난받아야 하나. 정확한 조사를 통해 정직하게 장사하고 정직하게 세금 내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자영업자)
연말소득 후폭풍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임금근로자의 세금이 최근 200만원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반대로 영세하다는 이유로 제도적으로 혜택을 받는 자영업자는 늘어나면서 직장인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연말정산을 통해 2013년 소득분에 대해 최종적으로 세금을 낸 납세 근로자는 1105만명이며 과세대상 근로자의 납세 총액은 22조2873억원이다.
이는 2012년 19조9712억원보다 11.6% 증가했다. 이에 따른 1인당 납세액은 201만6000원으로 1년 전(189만5000원)보다 12만1000원(6.38%) 늘었다. 1인당 세금 증가율이 납세총액 증가 폭보다 작은 것은 과세대상 근로자가 51만명 증가한 영향으로 보인다. 또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받지는 못하고 추가 납부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받은 근로자는 938만명이다. 이들은 1인당 48만3000원을 돌려받았다. 반면 세금을 추가로 납부한 근로자는 433만명으로 1인당 39만2000원을 토해냈다. 지난 2012년과 비교하면 환급 혜택을 받은 근로자는 51만5000명 줄고, 추가 납부자는 78만3000명 늘었다.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증세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간이과세 제도로까지 번지고 있다. 간이과세는 연간 매출규모가 4800만원 미만인 영세 소상공인에게 부가세를 간편하게 낮은 세율로 낼 수 있게 한 것이지만 그동안 각종 체납과 탈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제도이기도 하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2013년 기준 간이과세제도가 적용되는 간이사업자는 177만9011명을 기록, 전체 사업자 가운데 31.7%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 2010년 182만8101명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으로 상승한 것이다. 원래 부가세는 매출세액(매출액×10%)에서 매입세액(매입액×10%)을 뺀 금액으로 산출한다.
하지만 간이과세제도는 매출액에 업종별 부가가치율을 곱하고 여기에 다시 10% 세율을 적용해서 구한다. 이를 통해 산출한 세율은 0.5~3%로 일반 부가세율인 10%보다 크게 낮다. 기본적으로 간이사업자 수가 확대된 것은 경기불황 때문이다. 문제는 카드 매출전표와 현금영수증 외에는 수입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이들 자영업자의 매출이 실제로 4800만원이 안 되는지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금 증가율 ‘부자의 3배’… 중산층 분노 이유
최근 2년 새 중산층의 세금 부담 증가율이 고소득층의 3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세금도 세금이지만 “왜 우리만…”이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연말정산에서 유독 중산층의 분노가 컸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2일 통계청의 ‘2014년 가계 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소득 중간층(40~60%)인 3분위의 2013년 세금 납부액은 평균 101만원이다. 2011년 84만원에 비해 20.2% 증가했다.
반면 최고소득층(상위 20%)인 5분위의 세금 납부액은 같은 기간 626만원에서 667만원으로 6.5%(41만원) 증가에 그쳤다. 중간층의 세 부담 증가율이 고소득층의 3.1배다. 고소득층의 세 부담 증가율은 최저소득층(1분위) 증가율 7.7%에도 못 미쳤다. 물론 세금 액수 자체는 소득이 많을수록 크다. 하지만 돈의 실질 가치는 부자일수록 작아진다. 게다가 소득 상위 60~80%(4분위)의 세금 증가액은 2년 새 34만원으로 최상층 증가액과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
가구주 특성별로 살펴봐도 월급쟁이 가장(家長)의 세 부담이 많이 늘었다. 상용근로자는 2011년 세금을 평균 279만원 냈는데 2013년에는 309만원 냈다. 2년 사이에 10.7%(30만원) 늘었다.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5.1%(11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샐러리맨 소득은 ‘유리지갑’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3개월 미만의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 자영업자는 연말정산 대상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소득의 절반가량을 숨긴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등을 통해 파악한 자영업자의 소득적출률(전체 소득에서 숨겨진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 47.0%다. 소득적출률은 2007년 47.0%에서 2011년 37.5%까지 낮아졌으나 2012년 39.4%로 높아진 뒤 2013년 껑충 뛰었다.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지하경제 양성화’에 총력을 기울였던 해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거나 가짜 세금영수증 등으로 빼돌린 소득은 지하경제로 흘러든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세 불공평의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인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 근로자 중에서도 소득계층 간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번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듯)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분노는 언제든 분출할 수 있다”며 “지하경제 양성화 성과를 평가한 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근로자 세 부담은 어디까지 늘릴 것인지 등을 풀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라고 지적했다.
연말 재정산 사태, 사회적비용만 20조 날릴 판
‘13월의 서민증세’로 연말정산 후폭풍을 겪는 정부와 여당이 사상 초유의 연말재정산을 추진하면서,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세금 자체를 뺀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으로만 20조원을 날리게 생겼다. 우리 국민들이 납세의무를 다 하기 위해 자비로 부담하는 납세협력비용은 한해 10조원에 달한다. 올해 연말정산이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지게 되면 이 규모 역시 2배로 커지게 된다.
22일 국세청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납세협력비용은 9조8878억원으로, 직전 집계였던 2007년 7조6300억원보다 2조2600억원가량 증가했다. 이는 총세수(180조원)의 5.5% 수준으로 국민 한사람이 세금 1000원을 내려면 관련 비용으로 55원을 지출한다는 의미다. 납세협력비용(Tax Compliance Costs)이란 증빙서류 수수 및 보관, 장부기재, 신고서 작성·제출, 세무조사 등 세금을 신고·납부하는 도중에 납세자가 지게 되는 세금을 제외한 경제적·시간적 제반비용을 말한다.
납세협력비용을 줄이면 납세자에게는 세금이 감소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감세효과가 있다. 국세청도 납세협력비용은 제2의 세금이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국세청은 연말정산간소화시스템 확대, 전자세금계산서 도입, 신고·납부제도 개선 등 납세협력비용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국세청은 지난 2008년 최초로 납세협력비용을 계산했다. 이후 2013년에는 국회의 예산지원을 받아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표준원가모형을 토대로 2008년 개발한 ‘납세협력비용 측정모형’에 근거한 제2차 납세협력비용을 재차 통계내기까지 했다.
이때 국세청은 1·2차에 걸친 납세협력비용 추계결과를 기초로 세금 1000원당 55원인 납세협력비용을 내년까지 47원으로 향후 5년간 15%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이번 연말재정산으로 목표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두 번의 연말정산으로 인한 납세협력비용은 약 2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올해 한 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인 376조원의 5.3%에 해당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국세수입을 221조5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어 총세수 대비로는 약 9%다. 다시 말해서 우리국민 1인당 세금 1000원을 내기 위해 종전의 2배 가까운 90원을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요 세목별로 납세협력비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득세가 4조388억원으로 40.9%를 차지,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이어 부가가치세 2조7644억원(28.0%), 법인세 2조6494억원(26.8%) 순서다. 소득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납세협력비용이 가장 많이 투입된다는 점은 서민들이 연말정산을 받기 위해 본인의 소득 및 지출 항목을 신고하면서 치러야 하는 개인 돈이 최대로 쓰인다는 뜻이다. 세목별 세수대비 비율도 소득세 9.34%, 법인세 5.89%, 부가가치세 5.14% 순으로 소득세가 1위였다. 특히 소득세가 높은 이유는 소득세 납세인원 가운데 영세납세자의 수가 다수인 까닭이라는 게 조세연구원의 분석이다.
현재 정부는 연말정산 보완대책으로 연금보험의 공제한도는 유지하되 세액공제율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출생·입양에 대한 세액공제(30만원 한도)가 재도입되고 자녀세액공제는 지금보다 자녀별로 5∼10만원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대안이 국회에서 확정되면 지난해 소득분까지 오는 5∼6월경 월급 통장에서 소급적용을 받아 환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추가 연말정산에 납세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국민 개개인의 납세협력비용 부담이 2배로 늘면서 환급을 받더라도 실제로는 ‘증세’나 다름없는 결론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부실한 세수 추정으로 근로소득자 전원을 혼란에 빠뜨린 개정세법 전부를 원천무효로 돌린 뒤 시간을 두고 세법 개정안을 재논의,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세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국가전복세력, 건전하지 못한 야당일부 세력 이외에는 아무도 반대할 국민이 없다. 하지만 정권이 성공하려면 국민에게 정직하고 겸허해야 한다. 잘못이라면 인정하고 반성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감추고 잔머리 쓴다고 해결될 일이던가? “연말 재정산 사태” 정부와 정치권(여,야)의 책임이지 국민 책임은 아니지 않는가?“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