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아파트 화재 이재민들, 망연자실
10일 오후 5시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3동 경의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의정부아파트 화재 이재민 임시대피소에는 화재가 진압된 지 6시간이 넘었지만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몸을 피해 이곳을 찾는 피해 주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오후 6시 이재민 77명이 이미 자리를 잡았으며, 병원에서 돌아오는 경상자와 다른 가족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곧 100여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며 최대 200명을 예상,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의 긴박함을 말해주듯 주민들은 짐가방 하나 없이 잠옷 바람이거나 얇은 옷차림으로 대피소에 들어서 체육관 바닥에 깔린 스티로폼 매트리스에 앉아 망연자실했다. 의정부시는 화재 현장에서 100여m 떨어진 이곳에 주민들을 위한 임시대피소를 마련했다. 시와 적십자사는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이 당분간 지낼 수 있도록 응급구호물품 키트 150여 개, 매트리스 10개, 스티로폼 매트리스 80개와 담요 등을 준비했다. 대피소 옆에는 천막 4동에 간이 테이블 20여 개를 들여놓고 도시락을 준비한 식당도 설치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허탈함에 허기마저 느끼지 못하는 듯 식당을 찾는 발걸음은 드물었다. 이곳에 모인 이재민 대부분은 100여평에 달하는 대피소에 놓인 4개의 가스난로 주변에서 몸을 녹이거나 매트리스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앞날이 막막한 일부 주민은 어두운 표정으로 시에서 나온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불이 처음 난 대봉그린 아파트 2층에 사는 임모(37)씨는 "당시 아파트 근처에 나와 있어서 화를 면했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과 휴대전화밖에 건진 게 없다"며 허탈해했다. 아파트 옆 단독주택 주민 전모(68)씨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TV를 보다가 무심코 밖을 내다보니 불길이 보였고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며 "옮아붙은 불을 끄려고 했지만, 워낙 불길이 강해 슬리퍼만 신고 나와 전 재산이 타버렸다"며 고개를 떨궜다.
불이 옮겨붙은 해뜨는마을 아파트 5층에 사는 박모(57)씨는 "밖이 시끄러워서 내다보니 아파트 벽이 불길에 휩싸여있었다"며 "화재 경보가 울렸으면 미리 알았을텐데 그러지 못해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서 겨우 빠져나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아파트 주민 허모(41)씨도 "옆 아파트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눈높이에서 날라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대피했다"며 "그전까지 연기가 가득했는데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안전처의 발표와는 약간 다르다. 이들에게 시급한 온정의 손길이 요구되고 있다.
안병용 의정부 시장, 화재 이재민 만남
안병용 의정부 시장은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 사후 대책과 관련해 부상자 치료 비용을 보증 서고 이재민들이 당분간 지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10일 오후 6시 30분께 이재민 임시 보호소가 차려진 의정부시 경의초등학교에서 이재민들과 취재진을 만난 안 시장은 "치료비 보증이 필요하다는 병원 측의 호소에 따라서 치료에 대해서는 의정부시가 전액 보증을 서겠다"고 말했다. 또 "오늘과 내일 이재민들이 지내실 곳을 마련하기 위해 대피소 인근에 보온 텐트와 이불 등을 마련할 것이며 의정부 시내 찜질방 5개 티켓 300방을 사서 이재민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시장은 또 ▲장례비 지원 논의 ▲의정부 시내 숙박시설을 중장기 거처로 제공 ▲안전 조사 끝나는 대로 주민들이 불이 안난 집안에 우선적으로 접근 허용 등을 약속했다. 안 시장은 "경기도와 시가 잘 협의해서 도 차원의 협의체를 구성,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면서 "내일부터 이곳에서 매일 오전 11시 상황 브리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사고가 일어난 지 10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우리는 아직 시청 측 누구를 통해 이야기해야 할지, 어떤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는지 등을 전해듣지 못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안 시장이 "지금 담당자들이 다 나와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이재민들을 달랬지만 이재민들은 "우리가 시와 대화할 창구가 될 담당자가 누군지 지금 분명히 정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안 시장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기 위해 함께 대피소에서 밤을 새우겠다"며 주민들을 진정시켰다. 안 시장은 이날 밤 대피소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고 후 조치와 피해 보상 등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정말 주민들이 답답한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그러나 아직 사고가 완전히 수습되기 전이고 정확한 피해 규모가 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한편, 피해 건물 주민들은 주민공동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해뜨는 마을' 아파트 주민 박대용씨는 "불이 마지막으로 옮겨 붙은 해뜨는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피해 건물별로 주민 대책위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주민 일부는 "소방 헬기 바람 때문에 오히려 불이 빨리 옮겨 붙었다"며 이를 의정부시 관계자들에게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가족 위로, 빠른수습 지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10일 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을 방문해 빠른 수습을 지시했다. 또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추병원과 의정부성모병원을 잇따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어 피해 주민 임시 거처가 마련된 경의초등학교로 이동, 자원봉사자 등을 격려하고 이재민들이 목욕과 식사 등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몇가지 또 오락가락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 대한 정부의 공식집계와 늦장발표로 또 일부 언론들이 오락가락 했다고 질타를 받게 되었다. 화재 첫날 초기에 거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사상자 발표를 101명으로 보도 했다가 오후 7시 '경기재난본부'의 공식 발표로 99명으로 수정했는데 이후 연합뉴스의 보도로 124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이유는 화재사상자의 특성상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아도 유독가스에 의한 '호홉기 피해증상'등의 악화로 중상자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망자는 아직 4명으로 변동이 없다.
화재사고,사건이나 재난사고는 특성상 언론사들로 하여금 '속보'경쟁을 당연히 유발하고 또 언론사들은 경쟁을 떠나서 사실을 신속하게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종합적인 보도가 아니면 일부의 정보 소스만으로 가끔 약간의 오차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지 어느 언론사나 '고의'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하지는 않는다.
이런 긴박한 상황이나 과정에서 정부 시스템의 오류가 들어나기도 한다. 물론 정부도 '고의'의 목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확인과정의 반복, 촘촘하고 세밀한 시스템일수록 이런 오류는 줄어든다.
세월호 초기 사태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화재사건,사고에서도 들어난 점들이 '발화지점'의 오류였다. 처음에는 1층 주차장의 우체통이었다가 경찰의 CCTV확보와 확인으로 4륜오토바이에서 발화했음이 드러난 것이었다.
또 대표적인 사례가 '화재 경보음' 문제였다. 초기 일부 언론들에서 '일부 주민들의 전언으로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것으로 오인했으나 국민안전처는 10일 오전 9시 25분쯤 대봉그린아파트와 해뜨는마을에서 화재경보음이 울렸다며 경보가 없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날 안전처에 따르면 화재가 처음 발생한 대봉그린아파트에서 피난한 주민 이 모씨가 경보음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화재가 번진 해뜨는마을 현장을 확인한 결과 7층에서 경보음 발신기가 눌린 상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동네에 거주하는 또 다른 피난 주민도 경보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안전처는 스프링클러 작동여부에 대해 화재가 발생한 대봉그린아파트(10층) 및 드림타운(10층)은 설치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머니 투데이 사진 캡쳐
안전처에 따르면 아파트의 경우 11층 이상이 스프링클러 설치대상에 해당된다. 해뜨는마을의 스프링클러의 경우,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화재초기에 불길이 외벽에 번졌기 때문인 것으로 들어났다. 그러나 화재가 내부로 확대되면서 작동했다고 안전처는 밝혔다. 또 이 아파트 1405호에서 스프링클러 작동한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안전처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합동감식을 통해 화재원인과 소방설비 작동여부 등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점들로 볼때, 언론들도 더욱 종합적인 사실확인 보도, 정부도 더욱 면밀하고 세밀한 재난안전 행정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 키운 주범-건물 외벽 마감재 '드라이비트'
화재 피해 규모가 커진 원인으로 다닥다닥 붙은 건물설계, 건조하고 바람이 심한 날씨, 화로같은 역할을 한 뻥뚫린 1층주차공간등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건물 외벽 마감재가 지목되고 있다. 10일 오전 9시20분께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는 다량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삽시간에 건물을 집어 삼켰다. 또 옆에 있던 오피스텔 건물 등 건물 3채로 옮겨 붙으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건조한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불고, 건물 간격 역시 1m남짓에 불과한 탓도 있지만 불에 취약한 스티로폼 소재의 외벽 마감재 역시 화재를 키운 큰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화재 건물 외벽 마감 당시 드라이비트 공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드라이비트(drivit)는 외벽 마감재 방식의 하나로 콘크리트 벽에 스티로폼 단열재를 붙이는 방식인데 시공이 쉽고 간편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공사비 역시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어 다가구주택이나 주상복합건물 등의 건물 외벽 마감재로 많이 사용된다. 또 방수성과 단열성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건축 공사업체 관계자는 "드라이비트는 대리석이나 화강암 등 다른 마감재의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며 "시공도 쉬워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 충격과 화재에 취약하다. 특히 화재 시 순식간에 번지고, 유해물질 등 다량의 검은 연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건물 내장재의 경우 반드시 불연성 소재나 난연성 소재를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건물 외장재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불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건물 외장재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물 외장재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고, 시공도 간편해 일반 공사현장에서 많이 사용된다"면서도 "화재에 취약하고, 각종 유해물질이 나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외부 마감재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는 상태"라며 "불의 확산을 막기 위해 불연성 소재를 사용하도록 관련 법규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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