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대 고가 아파트에서 벌어진 하우스푸어?의 폭행촌극
매매가 20억원을 호가하는 서울 송파구 잠실의 최고급 L아파트 부녀회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7일 오후 8시 아파트 지하 4층 회의실에서 시작된 부녀회 회의는 30분도 되지 않아 부녀회 간부 3명이 회원 1명을 끌고나가 손찌검을 하면서 끝나버렸다. 피해자는 밤새 분을 삭이다 8일 오전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는 “간부 3명이 내 멱살을 잡아 밀어 넘어뜨렸고, 발로 밟기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51)씨는 “부녀회에서 아파트 상가에 있는 부동산들을 퇴출시키는 안건을 통과시키려 했는데 이를 내가 반대하자 폭행했다”고 했다. 이날 부녀회에서 퇴출이 논의된 부동산은 두 곳으로, 그동안 아파트 매매와 전세금을 두고 부녀회와 마찰을 빚어왔다고 한다. 부녀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싼 가격에 거래를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부녀회가 아파트 가격 담합을 위해 부동산 퇴출을 논의했는데, 이에 반대하자 폭행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8일 오후 이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부녀회 소속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남들 보기엔 돈 많은 아줌마들이 싸운 우스운 일이겠죠. 근데 무조건 때린 사람들을 욕할 일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다 흥분할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강남 사모님’들이 멱살까지 잡고 싸운 이유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아파트에서 부동산 퇴출이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말에도 부동산 한 곳이 주민들과 마찰을 빚다 스스로 문을 닫았다. 그때 문 닫은 부동산 자리를 쪼개 새로 부동산 두 곳이 들어섰다. 이번에 퇴출이 논의된 그 부동산들이다. 오래전부터 부녀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부동산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아파트 값이 널뛰기했기 때문이다.
교통과 쇼핑 등 최상의 주거 환경 덕분에 이 아파트 값은 2006년 분양 직후부터 치솟았다. 분양 당시 8억~9억원이었던 이 아파트 67평형은 2010년에 최고 25억원까지 거래되며 정점을 찍었다. 60평, 67평, 76평이 전체 400세대 중 90%에 달하는 이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아파트값이 18억~20억원일 때 입주한 이들이다. 2010년까지만 해도 아파트엔 연예인 등 유명인들도 꽤 입주한 상태였고, 서울 송파구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집에 거주한다는 자부심에 주민들 모두 만족했다.
그런데 2011년부터 아파트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해엔 거래가 거의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고, 경매로 67평 아파트 한 곳이 12억원에 넘어갔다. 수억원의 대출금을 받아 18억원 이상에 아파트를 구매한 주민들에겐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수억원의 융자가 있는 집은 전세로도 잘 나가지 않았다. 최고의 조건을 갖춘 이 아파트에 공실(空室)이 있는 이유다. 주민들의 분노는 부동산중개업소로 향했다. “부동산중개업소가 일처리를 똑바로 하지 않아 생긴 일”이란 불만이었다.
부녀회가 강한 결속력으로 뭉쳐 부동산의 아파트 거래에 개입하기 시작한 게 바로 2011년,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서부터다. 아파트 가격이 한창 오를 때는 부녀회 존재 자체가 미미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부녀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대출금 때문에 속앓이 하는 사람들로 안다”며 “싼값에 아파트를 내놓는 사람은 ‘공공의 적’이라는 말까지 퍼졌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원래 있던 부동산중개업소가 문을 닫았다. 새 중개업체 두 곳이 들어왔지만 아파트 값은 여전했고, 상황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분위기는 더 흉흉해졌다. 한 주민은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아파트 값이 뛸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그것도 문제가 생기면서 시원찮고, 오히려 싱크홀(sink hole)이 발견되었다면서 잠실역 주변이 무너진다는 말만 돌았다”며 “아파트 값이 더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주민들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7일 밤 부녀회 회의에서 폭발했다. 이날 밤 회의에 참석한 한 주민은 “폭행을 당한 A씨는 76평 아파트 소유자”라며 “하지만 실제 거주하는 곳은 다른 곳이고, A씨의 집은 지금 공실이다. 매달 관리비만 수십만원을 내는데 은행 이자까지 생각하면 손해가 너무 크니까 싼값에 아파트를 팔려고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부동산중개업소를 퇴출시키려는 부녀회 간부들에게, 싼값에라도 빨리 아파트를 처분해야 하는 A씨가 “부동산 문을 왜 닫게 하느냐”며 항의하면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사실 때린 사람들이나 맞은 A씨나 전부 아파트 값이 떨어져 속상한 상황은 다를 바가 없다”며 “결국 남들 보기에 부자들이어도, 실제론 똑같은 처지의 강남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끼리 벌인 촌극”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조사를 마친 경찰은 가해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가뜩이나 심란한데, 이상한 사건 때문에 안 좋은 소문만 더 나게 됐다”며 혀를 찼다.
이를접한 시민들은 경제상황이나 경기변동 요인을 몰라서 집값이 떨어진다고 매매와 계약으로 이루어져 자기책임을 져야 할 일이 “폭행사건”으로 얼룩져 추한 졸부의 모습을 드러냈다“며 혀를 차고 있다. ”수억씩이나 떨어져 엄청나게 속은 상하겠지만 그것도 자기책임들 하에 이루어진 계약일텐데 그렇다고 폭행사건이 일어나느냐?“며 이들에 대한 동정론은 거의 없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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