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유지VS해체 갈림길에 섰다.-유럽 ‘反EU’ 급진세력 대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단일 통화인 ‘유로화’가 현재와 같은 국제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올해 영국,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핀란드,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 유럽 8개국이 일제히 총선을 치르게 되면서 유로화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유럽 각국에서 유로화와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극우 극좌파 신생 정당들이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다 유로존 유지 및 유럽연합(EU) 탈퇴 여부가 핵심 이슈로 등장해 유럽의 경제와 정치 지형도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존에 속하지 않는 영국에서도 EU 탈퇴 여부가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새해 벽두부터 유로화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5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9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심리적 저항선인 유로당 1.2달러가 무너진 것이다. 미 CNN은 이날 유로화 가치 하락이 △달러화 강세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Greece와 Exit의 합성어) 우려 △유럽중앙은행(ECB)의 미국식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 등 세 가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유로화의 추락은 1월 25일 그리스 총선에서 현재의 긴축정책 종식을 공언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승리해 재정 개혁 정책을 포기한다면 독일 정부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사실상 용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최근 보도로 촉발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나서 “그리스는 구제금융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 매입을 통한 전면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을 밝힌 것도 유로화 약세에 불을 지폈다. 독일 정부는 파문이 확산되자 “독일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반대한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안그룹 회장은 5일 “유로존이 2015년에 심각한 ‘정치적 리스크’를 맞고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유럽 총선이 ‘EU와 유로존’의 운명뿐 아니라 20세기를 지배해 왔던 각국의 전통적인 중도 우파-중도 좌파 정당들의 몰락을 불러와 정치 지형도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유럽 8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지만 최대 관심은 영국 총선(5월)이다.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재집권에 성공하면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EU,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파 영국 독립당(UKIP)이 1위를 차지했던 충격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는 4일 BBC에 출연해 “총선 결과에 따라 UKIP와 연정 협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스에서 총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급진 좌파 시리자는 긴축정책 포기와 유로존 탈퇴, 국가 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카스텐 브르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가 재정 개혁을 거부하고 유로존을 탈퇴하는 사태가 현실화하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전염돼 유로존 붕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에서도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27%)에 올랐다. 포데모스가 승리하면 장기 독재를 해 온 프랑코 총통 사후 40여 년간 스페인을 지배해 온 중도 우파 국민당(PP)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의 양당 체제가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와 핀란드에서는 극우 정당들의 돌풍이 거세다. 덴마크 인민당(DPP)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21%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로버트 페스턴 BBC 경제 담당 에디터는 “2015년 유럽의 정치 지형도는 그리스 재정 위기가 촉발된 2010년보다 더 위험하다”며 “각국의 극우-극좌 정당뿐 아니라 전통적 주류 정당들까지 고통스러운 개혁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고 지적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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