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살얼음판', 월급쟁이 소득증가율은 바닥
경기 동향 지표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12년 상반기 이후 처음으로 석달 연속 미끄럼을 탔고, 앞으로의 경기를 가늠케 해주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6개월 만에 하락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역대 최저치로 내려앉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에 진입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경기 선행·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동반하락
2일 통계청의 경기종합지수를 보면 지난해 11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3.2로 전월보다 0.1포인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8로 0.2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6~10월의 상승 흐름이 꺾였고,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월 0.2포인트, 10월 0.3포인트 하락에 이어 석 달째 떨어졌다. 선행·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동반 하락은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인 5월 이후 처음이다. 선행·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선행·동행종합지수에서 추세변동분을 제거한 지표로 각각 향후와 현재의 경기 국면과 전환점 예측에 활용되는 지표다.
이밖에 11월 광공업 생산은 전월보다 1.3%, 소매판매는 1.9%, 설비투자도 13.1% 각각 늘어난 반면에 서비스업 생산은 0.3%, 건설기성은 1.7%, 건설수주는 26.1% 각각 감소하며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10월까지 선행지수가 오른 것은 건설수주 호조와 유가 하락 영향이 컸는데 부양책에 힘입었던 건설수주는 민간으로 전이되는 힘이 약했고 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영향은 지연돼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경기 신호를 놓고 신중한 해석도 나온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하락은 찜찜하지만,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의 낙폭(0.1포인트)은 국면 전환을 말하기에는 소폭"이라며 "8~10월에 선행지수가 크게 올랐던 점이 아직은 유효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체감지표 '꽁꽁'…소비자 경기체감은 정권 교체기 이후 최악
불안한 경기 지표만큼이나 기업이나 소비자의 체감경기도 좋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기업경기실사시수(BSI) 조사에서는 1월 종합경기 전망치가 90.3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월(88.7)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보이며 석 달째 기준선 100을 밑돌았다. 100 아래면 어두운 경기 전망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결과도 비슷했다. 2천37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5년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83으로 전 분기(97)보다 14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3분기째 떨어지며 2013년 1분기(69)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추락했다.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실적 부진까지 겹친 탓으로 풀이된다. 소비자들의 경기판단도 어두웠다.
한국은행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경기판단 소비자심리지수(CSI)는 3개월 연속 하락하며 71까지 떨어졌다. 2013년 2월(69) 이후 최저다. 향후경기전망 CSI는 작년 8월(100)을 단기 정점으로 넉 달째 내리막을 타며 2012년 12월(85) 이후 가장 낮은 85까지 하락했다. 취업기회전망 CSI도 4개월째 떨어지며 2012년 11월(82) 이후 최저인 83까지 내려앉았다. 이처럼 일부 체감경기 지표에서는 2012년말, 2013년초 이후 최저 수준까지 하락한 항목이 나타났다. 당시는 정권 교체로 정책 공백이 있었던 시기였다. 소비자물가의 안정세는 긍정적이지만 디플레이션 우려도 부추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0.8%로 둔화했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2.6%까지 떨어지며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저치를 나타냈다. 기업들의 이달 제품가격전망치도 바닥을 기는 모습이다. 제조업의 제품판매가격 전망은 87로 2012년 12월(87) 이후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 "유가하락·재정조기집행에 기대"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나 유가 하락이 시차를 두고 내수 경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이 대한 기대도 크다. 선성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생산활동의 본격적인 개선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도 "유가 급락에 따른 구매력 개선효과가 내년 상반기부터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에 내년 예산의 58%를 집행한다는 정부 방침을 감안하면 내년 1분기에는 전기 대비 1% 안팎의 성장률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 원화 약세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이 내수에 시차를 두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달라진 소득공제제도로 환급규모가 9천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유가 하락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국내 경기는 당분간 뚜렷한 회복 모멘텀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책금리 추가 인하와 재정 확대 정책을 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급쟁이가구 소득증가율 전체평균 밑돌아
근로자 가구의 소득증가율이 전체 가구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흑자 규모 역시 전체 평균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정부가 자찬하는 고용 확대가 가계소득 증대 및 내수 진작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한국일보가 통계청의 분기별 가계동향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3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증가율(전년동기대비)은 각 4.0%, 2.3%, 2.1%에 그친 반면, 전체 가구 소득은 5.0%, 2.8%, 3.0%씩 증가했다. 월급으로 먹고 사는 가구가 사업소득, 임대소득, 금융소득 등에 의존하는 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것이다.
근로자 가구가 소득에서 쓰고 남은 흑자 규모는 지난해 1분기엔 전년보다 5.1% 늘었지만 2, 3분기엔 각각 1.2%, 1.6% 줄어들었다. 근로자 가구의 여유자금이 갈수록 줄면서 구매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반면 전체 가구의 분기별 흑자액은 각 7.3%, 2.2%, 1.6%의 신장세를 보였다. 근로자 가구의 소득증가율이 전체 가구 평균을 밑도는 건 이례적이다. 글로벌금융위기 국면이던 2009~2010년, 연 성장률이 2.0%로 곤두박질쳤던 2012년을 빼면 최근 10년간 근로자 가구의 소득은 다른 가구에 비해 더 빨리 늘었다. 2013년만 해도 근로자 가구의 소득증가율은 매 분기 평균보다 0.5~0.6%포인트 높았다.
근로자 가구의 형편이 급속히 악화한 건 최근 들어 소득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서비스업 위주로 취업이 이뤄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임금 수준 및 인상률이 낮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중장년층의 취업이 늘면서 근로자 가구의 임금상승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나이 든 정규직 근로자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도 한몫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출범 당시 ‘소득 증가를 통한 경제성장’을 강조했던 최경환 경제팀이 갈수록 기업 편을 들면서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임금 인상은 내수 증대의 원천인 만큼 정부가 전향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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