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제의 거부해오던 北, 결국 대화제의로 급선회
대통령, 취임 이후 北에 끌려다니는 대화·지원 거부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북한이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특별담화문을 통해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 개최를 제의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유지해온 '원칙있는' 대북 대응기조가 효험을 발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회담제의와 노력을 비판만 해오던 북한 측이 그동안의 태도를 180도 바꿔 이례적으로 당국간 회담을 기습 제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끈기를 갖고 대화를 촉구해 온 대북기조가 마침내 북한을 움직이게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북한에 대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고립과 쇠퇴의 길을 버려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돼 남북 공동 발전의 길로 함께 나가자"고 일관된 메시지를 거듭 발신했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호응이라도 하듯 박 대통령의 추념사가 있은지 1시간30분여 만에 조평통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6·25 전쟁 전몰군인들을 포함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날에 맞춘 북한의 '아이러니컬'한 회담제의였다.
박 대통령은 중앙보훈병원을 위로방문하고 청와대로 돌아오는 길에 북한의 대화제의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지난 3월27일 개성공단 입출경 채널로 사용된 남북간 군 통신선을 차단한 뒤 4월8일 북측 근로자 5만3천명을 출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개성공단을 사실상 가동중단시킨 지 두 달 만에 남북대치 국면에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박근혜정부는 4월25일 개성공단 사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 개최를 포함해 여러 차례의 대화노력이 무위에 그쳐 '다음 수'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으나, 이번에 북한의 '역제의'가 나오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28일 개성공단 기업인과 관리위원회 관계자들에 대한 방북 허용 의사를 표시하며, '성동격서' 식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해 왔던 터여서 더욱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야권과 시민단체 일부가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촉구했지만, 정부가 '당국간 회담'이 우선이라며 단호한 '원칙의 배수진'을 친 것이 결과적으로는 상황 반전에 도움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과정에는 우리가 북한 당국에 대해 신뢰를 확인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사태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출입기자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북한이 진짜로 입주한 우리 국민을 생각했더라면 하루아침에 공단에서 인원을 철수시킬 수는 없다"면서 "그래 놓고 지금 와서 정부는 상대하지 않고 민간을 상대로 자꾸 오라는 식으로 하면 누가 그 안위를 보장할 것이냐"고 말했다.
북한 주장대로 기업인과 공단 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의 방북을 통해 공단이 정상화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해결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 북한이 당국 차원의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개성공단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오찬간담회에서 "계속 조마조마하게 하고,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가 나서서 미수금 전달하고, 끝까지 우리 국민 다칠까봐 조마조마해서 빼내도록 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금강산에서는 우리 국민이 믿고 갔다가 사망까지 했다"며 "이런 일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신뢰가 쌓일 수도 없고 점점 악화한다"고 북한의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거듭 촉구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이런 원칙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틈을 보이지 않자, 북한이 대화를 역제의해야 하는 '외통수'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뚝심있게 밀어붙인 승부수가 향후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06 16:2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