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경제시대, “자원개발 대박”옛말, 수출비상
국제유가, 배럴당 56달러도 붕괴
국제유가가 5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하락에도 불구,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매도세가 지속됐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월물 선물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1.90달러, 3.3% 하락한 배럴당 55.9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 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월물 선물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배럴당 79센트, 1.2% 내린 71.06달러에 마감됐다. 유가 하락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OPEC이 감산 의향을 보이지 않는 점이 매도세를 부추겼다.
압달라 살렘 엘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유가 목표치를 설정해두지 않았다고 밝혔고, 수하일 알마즈루이 아랍 에미리트(UAE) 에너지 장관은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진다해도 감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며 긴급 회의까지 최소 3개월은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리비아가 지난 주말 원유 수출 터미널에 불가항력을 선언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도 불구, 과잉 공급과 글로벌 원유 수요 감소 전망은 유가에 하방압력을 가하고 있다. 유가 하락은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편 주가에는 악재가 되고 있다. 유가는 지난 한주간 12% 급락했다 .
자원개발 ‘대박’ 시대 옛말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분기 석유개발사업으로 매출 2401억원, 영업이익1214억원을 올렸다. 매출의 2분의1은 고스란히 이익으로 돌아오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SK이노베이션은 같은 기간 주력사업인 석유 정제부문에서 226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석유개발사업이 버팀목이 됐다. 그런데 최근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석유개발사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석유 및 가스 판매 단가도 떨어져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보통 자원개발 사업은 유가가 8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유가가 하락하면서 대우인터내셔널, SK이노베이션 등의 ‘어닝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유가는 15일(현지시간)에도 급락세를 이어가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가격이 배럴당 55.9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날보다 1.90달러 떨어진 가격으로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다. 두바이유 가격도 60달러선 밑으로 주저앉아 배럴당 59.56달러로 마감했다. 올 여름까지만해도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가 반년만에 40%가량 하락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내년 WTI가 5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석유개발사업은 영업이익률이 높아 단기간 내에 사업이 위기에 처하지는 않겠지만, 저유가가 장기화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생산 중인 원유와 천연가스 비중이 4대6에 달한다. 이중 천연가스 가격은 유가에 직접적으로 연동되지 않는다. SK이노베이션은 “달러 강세로 원화 환율이 전분기 대비 약 60~70원 상승해 석유개발사업의 실적 악화가 일부 상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가스전을 직접 개발한 대우인터내셔널도 유가 하락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가스 판매단가를 국제유가 및 미국 물가지수 등에 연동해 놨는데, 최근 유가는 물론 물가지수도 하락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내년 미얀마 광구 생산량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회사 전체 순이익이 10% 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아울러 2011년 15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 셰일오일 생산광구 지분 23.7%를 인수한 석유공사, 멕시코만 앵커광구와 미국 유전개발업체 패러렐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 오만8광구와 베트남11-2 광구 등의 지분을 가진 LG상사 등도 국제유가 하락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유가의 구렁-전자·車 등 수출 타격 확산
조선·플랜트 업체에 이어 국내 수출기업들도 ‘저유가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 중동 등 산유국 경기 침체로 수출이 타격을 입고 있어서다. 현지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사례마저 나오고 있다. 저유가 덕분에 거시경제 전체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유가 급락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산유국 수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카자흐스탄 알마티 가전공장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TV, 세탁기, 냉장고 생산라인 중 TV를 제외한 생산라인 일부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카자흐스탄 공장을 TV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로 원유 판매 의존도가 높은 카자흐스탄 내수시장이 가라앉은 탓”이라고 전했다. LG전자 카자흐스탄 공장은 직원 400여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공장이어서 생산 물량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저유가 충격이 해외 생산에 타격을 줄 정도로 후폭풍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가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동부대우전자도 최근 러시아 수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환(換)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는 “수출대금을 루블화로 받은 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 수익률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은 ‘비상구 찾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일단 제품 단가를 높이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수요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고민이다. 막상 수출해도 대금을 받기가 쉽지 않다. 서방국가들이 금융 규제의 일종으로 러시아 주요 6개 은행과의 여신 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기업과 종합상사들은 중국 등 제3국 은행을 통한 금융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중동 수출시장도 비상이 걸린 것은 마찬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 판매대금 감소로 재정이 악화되면서 전자제품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줄이고 있어서다. 국내 대형 전자업체의 중동 영업사원은 “그동안 중동 내수시장을 지탱해온 버팀목 중 하나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각국 정부가 뿌린 보조금”이라며 “보조금 축소로 70인치 이상 대형 TV 등 고가 가전제품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도 저유가 충격의 사정권에 들었다. 쌍용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러시아에 판매한 자동차 대수가 2만2599대로 전년 동기 대비 27%나 감소했다. 한국GM이 러시아에 반제품(CKD) 형태로 수출한 자동차 부품은 이 기간 2만6332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8% 줄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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