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최경위 자살,유서 남겨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를 받은 서울경찰청 정보1부실 최 경위가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최 경위의 시신은 이날 오후 고향 집 주변인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장천리 도로변에 세워진 자신의 차량에서 발견됐다. 경찰 발표로는, 숨진 최 경위의 차량 안에서는 개인 노트북과 함께 무릎 위에서는 A4 용지 14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는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내용과 자신을 유출범으로 몰아간 검찰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최 경위는 유서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했을 뿐 문서를 유출한 적이 없다"며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최 경위는 "특히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보도한 모 언론사가 원망스럽다"며 "최초 보도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최 경위의 시신이 옮겨진 경기의료원 이천병원 현장에서는 현재 최 경위가 남긴 유서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유족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최경위 유서전문
‘정윤회 동향’ 문건 등 청와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최경락 경위(45·사망)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나는 문서를 유출한 적이 없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48·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유출한 것 같은데, 나한테 덮어씌우는 것”이라며 박 경정을 문건 유출자로 지목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반면 박 경정은 검찰 조사에서 “내가 정보1분실에 옮겨놓은 상자에서 문건을 꺼내 복사했다는 최 경정이 유출 문제를 알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다양한 증거를 들이밀며 자신을 옥죄는 동시에 동료 경찰관과도 서로 범인이라고 맞서면서 심적인 부담이 커지자 최 경위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사건을 언론에선 권력형 비리와 같은 게이트 수사보다 더 큰 이슈로 다루고 있고, 그 주범으로 지목된 상황이 최 경위에게 큰 압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 경위가 남긴 유서 내용에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받은 압박감이 묻어 있다. 그는 “‘BH(청와대)의 국정 농단(정윤회 동향 문건으로 추정)’은 저와 상관없다. 단지 세계일보 A 기자가 쓴 기사로 인해 제가 이런 힘든 지경에 오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박 경정이 정보1분실로 보낸 상자 안의 문건을 꺼내 최 경위와 함께 복사했다고 진술한 한모 경위(44)에게는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나는 너를 이해한다”면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모종의 회유가 있었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이어 “이제 내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 차원의 문제”라며 “이제라도 우리 회사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고 적었다.
최 경위는 11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 과정에서 “대통령민정비서관실 파견 경찰관이 한 경위에게 ‘자백하면 불입건해준다’고 제의했다고 한다”며 ‘청와대 회유’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자백’을 해놓고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 경위는 법원에서 “청와대로부터 회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청와대 역시 “수사를 의뢰한 뒤 피의자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경위가 이를 유서를 남기면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고, 청와대 회유설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미 최 경위가 세계일보 A 기자에게 여러 건의 문건을 넘긴 정황을 파악해 구속영장 청구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검찰은 4월 ‘비위 청와대 행정관 징계 없는 원대 복귀’라는 기사의 근거가 된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 등 3건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휴대전화 기록을 복원해 물증을 발견했다. 다만 정윤회 동향 문건은 물증은 아니지만 제3자의 진술과 관련된 정황 증거가 여러 개 있어 이 또한 최 경위가 넘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최 경위의 자살이라는 돌발 변수에도 검찰 수사는 빠르게 종착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에선 “(문건 작성과 유출 경로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사건 초기 박 경정이 “청와대 밖으로 문건을 빼돌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검찰은 그동안 휴대전화와 녹취파일 복원, 한 경위의 조사에서 문건 유출 경로를 상당 부분 파악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과 친분이 두터운 박지만 EG 회장을 15일 불러 ‘배후 의혹’까지 조사한 뒤 이르면 22일경 수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의 전개추이가 파장이 크게 번질 것으로 보인다.
박지만 오늘오후 검찰 출석예정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등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박지만 EG회장이 15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다. 박 회장의 한 측근은 "오후 2시 30분 출석한다.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변호인 없이 혼자 출석해서 조사를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청와대에 문건 유출을 알려준 것 말고 잘못한 게 없다. 미행설도 정윤회씨가 시사저널을 고소했던 사안이고 박 회장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데 대질하는 것도 우습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검찰은 박 회장이 출석하면 지난 5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를 만난 경위와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의 사후 처리 과정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박 회장의 측근은 "세계일보 측에서 문건이 유출됐다고 하고 그 안에 박 회장 관련 문건도 있다고 해서 만난 것일 뿐"이라며 "(처리 과정은) 기사에 나온 게 대충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지난 5월 12일 박 회장과 접촉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100여장을 전달했으며, 박 회장은 청와대 내부에 심각한 보안사고가 발생했다는 우려와 함께 청와대에 이를 알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당시 박 회장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 유출된 문건을 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정 비서관 등은 '받은 적이 없다'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을 상대로 세계일보에서 받은 문건을 어떤 형태로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확인하고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어떤 조처를 했는지 등도 살펴볼 방침이다. 당시 박 회장이 본 문건은 자신과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 등 가족과 측근의 동향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의 작성·유출 경로로 의심하는 이른바 '7인회'와 박 회장의 관련성도 확인할 계획이다.
청와대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주도하는 '7인회'가 '정윤회 문건'을 작성, 유포했다고 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감찰 결과를 검찰에 제출했다. 조 전 비서관 등 '7인회' 멤버로 알려진 인사들은 모두 박 회장과 친분이 있지만 모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정윤회씨가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와 관련해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정씨가 시사저널 기자들을 고소한 이 사건과 관련해 박 회장은 진술을 거부해왔다. 검찰은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박 회장이 자신을 미행한 오토바이 기사를 붙잡아 정씨가 시켰다는 자술서를 받아낸 사실이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박 회장과 정윤회씨의 대질조사 필요성을 낮게 보면서도 수사 상황에 따라 대질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스포츠닷컴&추적사건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