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검찰출석 / 한화직원,수개월간 ‘청와대 문건’받아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10일 검찰에 출석했다. 정씨는 이날 오전 9시47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나와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또 그 불장난에 춤 춘 사람들이 누군지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정에 개입했느냐는 질문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연락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연락한 적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의 고소인 신분 등으로 정씨를 조사할 계획이다. 정씨는 지난달 28일 세계일보가 문건 내용을 보도한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의혹을 부인하고 세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는지 판단하려면 보도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해야하는 만큼 정씨에 대한 조사는 비밀회동설을 다룬 청와대 문건 내용의 진위를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검찰은 유출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을 바탕으로 이른바 정씨와 '십상시'라 불리웠던 사람들 사이에 정기적 모임이 있었는지, 정씨가 비선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벌인 진실게임도 검찰의 조사 대상이다.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이 문건을 상부에 보고했던 조 전비서관은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주장한 반면 정씨는 "박 경정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문건 조작 및 지시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이날 정씨와 조 전비서관의 대질 조사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검찰은 현재 관련자 통화내역 등 여러 물증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비밀회동설이 허위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이 대포폰, 차명폰을 사용해 만났을 가능성도 염두을 두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앞서 세계일보는 문건의 사진과 함께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문건을 근거로 정씨와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이 정기적으로 만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경질시키려 하는 등 국정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씨가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지난 8월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박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면서 정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지만 비공개 소환이었다. 정씨는 청와대 현직 비서진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이번에는 일단 의혹을 첫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 3명에 대한 고소인 자격으로 조사받는다. 국정개입 의혹의 파문에서 그의 비중을 감안하면 외적으로는 문건 진위 수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검찰 수사상황과 정씨의 주장 사이에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 없어 조사 자체는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에 대한 정씨의 입장을 조사할 계획이다. 청와대 비서진들과 강남 중식당 JS가든 등지에서 비밀회동을 했는지, '십상시'로 거론된 청와대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는지 등이다. 정씨는 파문이 확산되자 언론인터뷰를 통해 의혹을 적극 부인했다. 그는 "증권가 정보 '찌라시'를 모아놓은 수준"이라며 "10인이 회동해 국정을 논의하고 내가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것은 완전한 낭설이자 소설"이라고 말했다. 검찰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 직원, 수개월간 ‘청와대 문건’ 받은 듯
검찰은 9일 문건 유출 혐의로 최모 경위와 한모 경위 등 경찰관 2명을 체포하고, 한화그룹 계열사 직원 A(44)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전날에는 외부 유출 정황이 뚜렷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100여건을 청와대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았다. 문제가 된 ‘정윤회 문건’ 외에 다른 문건까지 폭넓게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설 정보지(찌라시)를 강하게 성토한 점을 감안하면 ‘찌라시’에 대한 대대적 수사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건 유출 수사를 특정 지점, 특정 문건에 한정 짓지 않겠다는 게 검찰의 기본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두 곳의 언론사로 해당 문건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보도를 했든 안 했든 (문건을 빼돌린 경찰관은) 모두 공무상 기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 경위 등이 올해 2월 박관천(48) 경정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겨 놓은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문건들을 복사해 여러 경로를 통해 언론사 등 외부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작성자가 공직기강비서관실 또는 민정수석실(공직기강)로 돼 있는 ‘VIP 방중 관련 현지 인사 특이 동향’ ‘○○○ 비서관 비위 연루 의혹보고’ 등은 유출 정황이 확인된 문건들이다. 검찰은 올해 이러한 문건에 담긴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놓고 최 경위 등이 이를 유출했는지, 또 다른 연루자는 없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한화 직원인 A씨가 최 경위 등으로부터 수개월에 걸쳐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문건들을 넘겨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트북 분석 과정에서 또 다른 문서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업무 특성상 정보 담당 경찰관과 교류가 잦은 대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검찰은 A씨 외에 다른 대기업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이 경찰 정보관 등과 수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 이 과정에서 청와대 문건이 대거 유포되지 않았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 박 경정 3자대질 등을 통해 문건 속 ‘십상시 모임’이 실제로는 없었다고 잠정 결론이 내려진 만큼 검찰의 칼끝이 ‘찌라시’ 시장까지 겨냥할 수도 있다. 문건의 근거가 풍문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관련 소문이 처음 유포된 때부터 확대 재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검찰이 파헤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럴 경우 경찰과 대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의 유착 정도나 정보지 생성·유포 과정에서의 대기업 및 증권사의 관여 등이 드러날 수 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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