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강달러 어퍼컷 ·엔저 훅’ 강펀치들에 휘청
<경제특집>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가 선언되기 무섭게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하면서 한국 경제가 ‘강(强)달러ㆍ엔저(低)’의 원투펀치에 휘청거리고 있다. 강달러는 자본유출과 주가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또 수입물가 상승으로 내수침체를 각각 불러일으킨다. 엔저는 우리 수출기업들에게 치명타다.
미국ㆍ일본발(發) 환율 변동성은 한국경제의 두 축인 내수와 수출에 커다란 악재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로 2차 엔저 공습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 개장 전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40원대로 내려갔다. 원/엔 환율이 940원대를 기록한 것은 2008년 8월21일 이후 처음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원/엔 환율이 100엔당 950원대가 되면 수출이 4.2% 줄고, 900원까지 내려가면 8.8%나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일본이 이제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게 된 셈이다.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8.9원 오른 달러당 1081.5원에 출발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80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3월25일 이후 처음이다. 원/엔 환율 하락은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의 하락, 즉 엔/달러 환율 상승 때문이다. 엔화 약세와 달러화 강세가 겹친 것이다.
그동안 달러당 110엔은 주요 지지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일본중앙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발표 이후 이날 단숨에 115엔선을 위협할 정도로 엔/달러 환율 상승세는 가파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엔/달러가 주요 저항선인 110엔 돌파 이후 다음 타깃인 115엔을 향해 랠리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원/엔 환율 하락으로 환율하락을 용인할지, 전격적으로 환율전쟁에 나설지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라며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자본유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을 돌파하면 자칫 위기 상황으로 보여질 우려 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엔저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에 정부가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들도 대응력을 강화하겠지만 주요국의 환율이 각국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환율조작국’이란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적인 개입을 통한 환율 방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엔저에 따른 경쟁효과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원/엔 환율을 적정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외환당국의 개입이 필요하고, 제프리 프랑켈 하버브대 교수도 기축통화가 아닌 경우, 자유 변동환율이 아니라 관리 변동환율 쪽으로 가는게 좋다고 강조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은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며 “글로벌 통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선진국, 신흥국 할 것 없이 환율과 금리의 민감도가 상당히 높아지기 때문에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술력 커진 중국, 가격 낮춘 일본… 수출 코리아 '샌드위치 신세'
대응 못찾는 우리경제
가계부채 부담에 돈 더 못풀고 외환시장 개입도 사실상 불가능
3일 증시는 크게 흔들렸다. 현대차 주가가 5.9% 급락하며 지난 2010년 10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도 각각 5.6%, 4% 급락했다. '자동차 3강'의 시가총액은 한 달 반 만에 20조원 넘게 증발했다. 한국 증시에 엔저(円低) 공포가 몰아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자동차업계가 엔저로 수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번졌기 때문이다. 이날 100엔당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84원 내린 951.73에 거래되며 지난 2008년 8월 9일 953.31원 이후 6년 만에 최저치까지 낮아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주력 수출품이 겹치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 경제로선 엔저는 엄청난 위협 요인이다.
*강한 달러와 약한 엔의 '이상한 조합' 수출과 내수 동시 충격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추가 금융 완화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습 공격'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이 양적 완화 종료를 선언한 상황에서 엔저를 위해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엔저는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우리 주력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달러가 강해지면서 수입 물가가 오르면 내수 회복세가 무뎌질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강한 달러와 아베노믹스가 만들어내고 있는 약한 엔화라는 '이상한 조합'은 한국 경제의 수출과 내수에 동시에 충격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출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지만, 이번처럼 엔화 가치가 덩달아 낮아지면 경쟁 상대인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커져 그 효과가 크게 반감한다. 특히 엔화 절하(엔화 가치 하락) 속도가 원화 절하 속도를 앞지르면 오히려 수출 경쟁력이 악화된다.
엔저 쇼크는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철강·조선 업종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 전지원 연구원은 "전기·전자 업종은 일본과 비교해 뚜렷한 경쟁 우위에 있어 엔화 약세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자동차·조선·철강 업종은 일본 업체와 비교해 대등 또는 열위에 있는 데다 글로벌 수요도 위축돼 있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 달러와 약한 엔화가 가져올 수출과 내수의 동시 둔화라는 이중고(二重苦)에 더해서 우리 수출 기업들이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일본의 가격 경쟁력 강화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인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과 일본,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치킨 게임' 양상
엔저 최고치…수출시장 ‘먹구름’
이번 추가 금융 완화는 일본 경제가 엔저 외엔 다른 해법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엔저가 예상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그동안은 지난 2012년 아베노믹스 등장 이후 시작된 이번 엔저가 1989년 이후 과거 3차례 엔저와는 달리 3~4년씩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해외 생산 기지 확대 등으로 수출은 크게 늘지 않고, 엔저로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일본 산업계에는 '엔화 약세 도산'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실제로 지난 4~9월 부도 기업이 150개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배 정도 늘어났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일본이 엔저를 더 강하게 지속하기로 한 것은 일본 기업이 더 오래 버틸지, 한국 기업이 수출 경쟁력 약화를 더 오래 견딜지 일종의 '치킨 게임'을 하자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 당국은 엔저에 대한 뾰족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계 부채 등의 위험 요인이 커서 일본처럼 돈을 더 풀 수도 없는 처지이고, 외환시장 개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비교해 간접 계산하는 방법으로 결정된다. 원화와 달러화를 교환할 수 있는 시장만 있고, 원·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엔저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해도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일본도 거의 실탄이 바닥나 추가 금융 완화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일본은행이 추가 금융 완화를 했지만, 규모는 기존 60조~70조엔에 10조엔 정도를 더하는 수준에 그쳤다"면서 "일본도 무제한 금융 완화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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