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가 양적완화 나섰다, 주춤하던 엔低, 다시 한국 덮친다 <경제특집>
日기업 수출단가 인하때 韓 전자·자동차 큰 타격
31일 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 발표로 한동안 잠잠했던 ‘엔저’가 다시 서울외환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고 원·엔 환율은 급락했다. 발표가 전해지기 전인 이날 오후 1시까지만 해도 966원81전이었던 100엔당 원화 환율은 오후 한때 956원89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단시간에 10원 가까이 낙폭을 키운 것이다.
최근 두어달간 서울외환시장은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원화의 강약을 조절해왔다. 엔저는 주춤하는 양상이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와 조기 금리인상설 등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띠면 원화와 엔화가 동반 약세를 이어가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이번 추가 양적 완화로 엔저는 또 한 차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원화가 엔화 약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단기적으로는 100엔당 950원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올해 100엔당 평균 990원대에서 2015년 평균 950원으로 하락하는 것을 전제로 내년 국내 총수출액이 올해보다 4.2%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만약 900원까지 내려간다면 총수출액은 8.8%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엔저 지속은 갈수록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제조업과 수출전선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중국의 경기 둔화, 유럽 경제 침체, 원고-엔저 등으로 간판 기업들의 수익성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이번 양적 완화로 보다 유리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그동안 수출 단가를 내리지 않던 일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기업들이 그동안 정부가 추가 완화정책을 펼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왔지만 이제 그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단가 인하를 결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로 글로벌 통화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엔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른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는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에서 각각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독일과 대만 등이 그렇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 조작이 어려워진 만큼 통화량 조절을 통해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미국과 일본, 유럽이 차별화된 통화정책을 펴는 가운데 선진국들의 통화 가치 차이가 벌어지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도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양적완화 종료후 다행히 신흥국 증시로 자금유입, 계속 주시해야
한편, 이에 앞서 미국이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예정대로 이달 끝내기로 했지만 우려했던 신흥국 자금이탈 조짐은 아직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일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한주간 신흥국 주식형 펀드로 13억200만달러가 순유입됐다. 지난달 중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고조되면서 자금유출이 시작된 이후 4주만에 순유입으로 돌아선 것이다. 선진국 주식펀드로는 191억4500만달러가 들어와 작년 9월 이후 최대 자금이 유입됐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의 진원지였던 서유럽으로도 두달여만에 돈이 들어왔다.
양적완화 종료는 이미 예고됐던 것인 만큼 시장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한동안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위험자산으로의 자금흐름을 재촉했다.
이미선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완화적인 스탠스가 확인되면서 신흥국과 하이일드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다소 회복되고 있다”며 “미 연준의 긴축 지연, 일본과 유럽의 적극적인 양적완화로 시장의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하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신흥국 증시가 자금유출로 하락세를 보인 만큼 저가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적어도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노상원 동부증권 연구원은 “미 양적완화가 종료된다고 해도 달러의 강세 속도가 완만하게 진행된다면 신흥국 자금의 급격한 유출에 대한 우려는 축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미국이 앞으로 경기와 물가수준 등에 따라 긴축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황재철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럽과 중국 등이 부진한 경기흐름을 지속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중앙은행(ECB, 연준 등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차이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변동성 확대 조짐을 먼저 나타낼 수 있는 외환시장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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