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개천에서도 용나야! <사회특집>
나는 이렇게 아들 스펙조작에 가담했다 (한겨레 기고문)
얼마 전 어느 ‘목동 엄마’가 현직 교사와 짜고 가짜 스펙을 만들어 아들을 유명 한의대에 합격시켰다 들통이 난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직후다. 모처럼 식구들이 다 모여 저녁을 먹고 있는데 대학 1학년인 아들 녀석의 카톡이 계속 울려댔다. 아들이 열어보더니 “야! 스펙 조작해 한의대 들어간 학생이 우리 고등학교 선배네. 애들이 카톡방에서 난리야”라고 전해줬다. 그 말을 듣더니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헐~. 학생 대신 시를 써줘 상을 받게 한 교사는 우리 학교 선생님인데”라고 놀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시인 교사를 안다. 그가 등단할 때 낸 시집이 한동안 내 책상에 꽂혀 있기도 했다. ‘참 희한한 인연이군’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까지 거든다. “난 그 엄마를 본 적이 있어.”
지난해 봄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강당에서 진학설명회가 열렸는데 문제의 그 엄마가 ‘난 이렇게 한의대를 뚫었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는 것이다. 외모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거기 온 아줌마들이 다 펑퍼짐한데, 그 아줌마는 날씬한 데다 하이힐까지 신으니 다들 기가 죽었지. 게다가 파워포인트까지 써가며 강연을 하더라구.” 내용인즉슨 자기 아들이 중학교 때 취미로 곤충을 길렀는데, 그 경험을 생명과 의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연결시켜 스펙을 만들었고, 그걸로 한의대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엄마는 ‘아이가 겪은 경험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입시와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자료를 모으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아이고, 그런 걸 언제 다하고 앉아 있나”라고 한숨을 쉬는데,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더란다. “전 우리 애 대학 보내려고 다니던 직장도 1~2년 휴직을 했어요. 아이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데 직장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월가 탐욕에 분노하는 ‘열혈소년’으로 둔갑한 아들
그 엄마는 경찰 조사에서 “강남에서는 다들 이렇게 하는데, 왜 나만 문제 삼느냐”고 억울해했다고 한다. 그 몰염치 때문에 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식 둔 부모라면 누군들 반칙을 저지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나부터 찔리는 구석이 있다. 지난 여름이다. 아들이 종이 몇 장을 불쑥 내밀면서 “아빠, 자기소개서인데 좀 봐줘”라고 하는 것이다. 몇 줄 읽지도 않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송국 피디가 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한다는 녀석이 기껏 내놓는 스펙이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여러번 봤다는 것밖에 없었다. 원서 마감은 보름 앞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우리 부자는 여름밤 무더위 속에서 모기에 뜯겨가며 매일 다큐멘터리 한 편씩을 봐야 했다. 그것도 사회성 짙은 문제작 위주였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즐겨봤고 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꾸미기 위해서였다. 15일 만에 본 다큐멘터리를 15년에 걸쳐 본 것처럼 위장해 자기소개서를 한줄 한줄 채워나갔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인사이드잡>을 볼 때는 아이가 내용 자체를 아예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 수 없었다. 아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월가의 탐욕에 분노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기로 결심한 ‘열혈 소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부모가 링 안으로 뛰어들어 반칙을 할 수 여지를 열어놓았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수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장 모습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론 ‘꽝’이었다. 애초 우리 같은 ‘얼치기 부자 사기단’에 넘어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지 않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속여보려고 하고, 다들 속이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주는 제도가 입학사정관이구나 하는 씁쓸함은 남았다. ‘스펙 꾸미기’에 동원할 수 있는 돈과 권력, 정보가 있다면 더 그럴 듯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애초 아이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을 세우고 있다. 입학사정에 참여해 본 어느 역사학과 교수의 경험담이다. 다들 비슷비슷한 내용의 자기소개서를 따분하게 읽고 있는데, 한 아이의 체험 사례가 눈에 확 띄더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역사 유적지를 자주 찾았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비롯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 등등….” 부모의 경제력 덕에 얻은 경험이지만 이 학생을 안 뽑아 줄 수가 없더란다.
입학사정관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우리 교육이 과거식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일렬로 세우는 방식이라면 미래에 대처할 능력이 상실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제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 학생들끼리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자꾸 부모들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 편법과 반칙이 판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어릴 때 즐겨보던 프로레슬링 태그매치에서는 링 밖의 선수가 가끔씩 교대도 하지 않은 채 링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박치기왕 김일을 가격하는 반칙을 하고는 했다. 그때 우리는 하도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까지 글썽이고는 했는데 우리 입시가 그래서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내년부터는 학생의 외부 스펙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입학사정관제도가 바뀐다고 한다. 그래도 부모들이 힘과 돈을 가지고 끼어들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를 막아내지 못하면 “왜 나만 문제 삼느냐”는 목동 엄마의 항변은 계속될 것이다.
내년 고3 되는 딸…또 뭘로 자기소개서 채우나
우리 집 큰아이는 수시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수학능력시험을 평소 실력보다 잘 봤다. 그 점수로 정시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다. 그래서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딸에게 말한다. “너도 그냥 수능 성적만으로 대학에 들어가라.” 하지만 정시로 뽑는 인원은 20~30%밖에 안 된다. 수시 철이 되면 또다시 자기소개서를 쓰게 될 것이다. 난 또 무슨 말을 지어내 그 넓디 넓은 자기소개서를 채워야 할지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서울대 총장 "2017년부터 수시 우선 선발제 폐지"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은 2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시 우선 선발제도 자체를 2017년부터 없애겠다"고 밝혔다. 성 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문위 국감에서 수시 우선 선발제가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 출신 학생에 편중돼있다는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의 지적에 이같이 답했다.
성 총장은 "다양한 학생을 뽑기 위한 취지인 수시 우선선발제도로 특목고, 자사고 출신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공연한 오해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말썽의 소지가 있는 수시 우선 제도 자체를 폐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신 의원이 "오늘 처음 밝히는 것이냐. 언제부터 폐지하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성 총장은 "2016년에는 대교협 승인을 받아야하고 2017년까지 무조건 없애겠다"고 확인했다.
서울대는 지난 2005년 수시 모집 일반전형 1단계 합격자 중 학업 능력과 개인 특성을 평가해 거른 일부 학생들에게 2단계 면접·구술고사를 면제해주고 바로 선발하는 우선선발제도를 도입했으나 특목고·자사고 편중으로 인한 '특혜'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교육현장의 학부모, 학생들은 수시로 ‘대학못갈 아이들이 부모의 세력으로, 돈으로 가고 정작 들어갈만한 실력있는 학생들도 가난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며 서울대의 이번 조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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