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전작권 재연기 합의
<국제,국방,안보특집>
한국과 미국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안보협의회(SCM)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재연기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특히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키로 하면서 구체적인 전환시기를 확정해 명시하지는 않아 일각에서는 사실상 무기 연기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양국은 이번 SCM에서 전작권 전환이 이뤄질 때까지 한미연합사령부를 용산기지에 잔류시키는 한편 한국군의 대화력전 전력이 보강되는 2020년께까지 미 2사단 210화력여단을 현재 있는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 잔류시키기로 합의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미 국방부(펜타곤)에서 열린 SCM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15개 항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북한 핵·미사일을 포함한 역내 안보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미국군 주도의 연합군사령부에서 한국군 주도의 새로운 연합방위사령부로 전환하는 것을 대한민국이 제안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양국이 제시한 전작권 전환의 조건은 ▲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 전작권 전환 이후 한미 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구비 및 미국의 보완·지속 능력 제공 ▲ 국지도발과 전면전 초기 단계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 능력 구비 및 미국의 확장억제 수단과 전략자산 제공 및 운영 등 3가지다.
양국은 이들 3가지 조건에 대해 매년 SCM에서 평가한 뒤 양국 통수권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전작권 전환 시기를 최종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3가지 조건 중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능력이 전작권 전환의 핵심조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은 전작권 전환의 목표시기와 관련,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군의 '킬 체인'(Kill chain) 및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 시기인 2020년대 중반을 제시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가 조건에 합의하면서 조건을 충족하는 시기를 2020년대 중반으로 예상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2020년대 중반은 2025년일 수도, 2024년이나 2026년이 될 수도 있고, 2022년이나 2027년이 될 수도 있다"며 "(킬 체인과 KAMD 등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이 갖춰지는 시기를 2020년대 중반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7년 전작권 전환시점을 '2012년 4월 17일'로 최초 결정한 이후 2010년에 '2015년 12월 1일'로 한 번 늦춘 바 있어 이번이 두 번째 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가 된다.
양국 장관은 이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는 한편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전략동맹 2015'를 대체하는 새로운 전략문서를 내년 10월 제47차 SCM 때까지 완성하기로 했다. 한미는 연합사의 용산미군기지, 미 2사단 210화력여단의 동두천 캠프케이시 잔류에도 각각 합의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로 당초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과 함께 사라질 예정이던 연합사도 유지됨에 따라 한국 국방부 및 합동참모본부와의 유기적 협조를 위해 연합사 본부기능은 기존 용산기지에 남도록 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210화력여단의 잔류와 관련, "심화된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대화력전 수행 전력을 한국군의 대화력전 능력 증강계획이 완성되고 검증될 때까지 한강 이북, 현재의 위치에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민구 장관은 2020년께까지 차기다연장의 전력화를 비롯해 한국군의 대화력전 능력 증강을 완료하기로 미측에 약속했다.
이밖에 양국은 작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45차 SCM에서 서명한 '맞춤형 억제전략'에 따라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동맹의 '포괄적 미사일 대응작전 개념 및 원칙'도 정립했다. 이는 핵무기 혹은 생화학무기 등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탐지, 방어, 교란, 파괴하는 작전개념이다.
한미는 이 작전개념을 토대로 핵·미사일에 대비한 작전계획도 수립, '작계 5027'에 반영키로 했다. 한미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일 정보공유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3국 정보공유 MOU 체결을 위한 실무논의도 지속하기로 했다. 이 밖에 ▲ 북한의 침략과 군사적 도발 불용 ▲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준수 촉구 ▲ 사이버 위협 관련 정보 공유 활성화 ▲ 미국 우주작전 교육에 한국군 참여 ▲ '이슬람국가'(IS)와 에볼라 등 초국가적·비전통적 안보위협에 대한 협력 등의 내용도 SCM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문제는 증액되는 국방비
한국과 미국이 전작권 전환 시기로 새로 정한 ‘2020년대 중반’이란 개념이 모호하다. 국방부 당국자는 2022년께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들어 “2022~2027년의 어느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 정한 2015년 12월 1일과 비교하면 7년에서 길게는 12년이란 시간을 더 번 셈이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북한의 위협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군의 정보와 전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전작권 전환 시기를 다시 연기하자는 논의는 북한의 상황 변화 때문에 시작됐다. 한·미 양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2011년 12월)으로 북한 체제의 불안전성이 커졌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2012년 12월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현실화됐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미국에 재연기를 요구했고,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정한 시기와 조건’에 전작권을 전환키로 합의했다.
이미 ‘추가 연기’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차례의 국방장관회담과 네 차례의 고위급 협상을 통해 최종 결론에 다가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때 미 측은 목표 시점을 명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특히 용산기지 일부와 210화력여단 잔류에 따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등을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결국 “양측이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는 선에서 봉합됐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남은 셈이다.
문제는 군 전력 증강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이다. 당장 킬체인과 KAMD에만 앞으로 17조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북한 장사정포의 천적인 차기 다연장로켓(천무)을 들여오는 데도 2020년까지 수조원이 필요하다. F-35와 한국형 전투기를 도입하는 보라매사업(KFX) 등은 40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탐지 장비인 인공위성과 글로벌호크, 이지스 구축함까지 포함할 경우 60조원을 훌쩍 넘는다. 올해 국방부 1년 총예산(35조7056억원)의 1.7배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합의와 관련해 “미 측에 추가로 제공하는 대가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초 예정된 시기보다 7~12년이 늦어지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미 측이 ‘대가’를 요구할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 내에선 이미 “괌기지 군사력 증강 비용의 일부를 한국 측에 부담시켜야 한다”(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목소리까지 있다.
또 북한 미사일과 관련해 정보 공유를 강화키로 한 만큼 미국 미사일방어(MD)망 편입 또는 고고도 미사일방어 시스템인 사드(THAAD) 배치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을 전작권 전환 평가 조건에 포함시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미 측이 요구한 부분이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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