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개헌논의 언급, 정치권 파장
<정치특집>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논의 불가피론'이 정국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을 방문 중인 김 대표는 16일 상하이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개헌 논의와 관련,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 터질 것이고,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9일 이후부터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실질적인 협상 국면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김 대표는 상당히 구체적인 개헌 구상까지 작심하고 드러내 주목된다.
'연정'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면서 직선 대통령이 외교·국방을 담당하고 국회에서 뽑힌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모델로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김 대표의 행보는 최근 '개헌 블랙홀론'을 통해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사실상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특히 여야 개헌모임 의원들이 제기하던 개헌론에 집권 여당의 '얼굴'이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적어도 국회 안에서는 개헌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이미 개헌모임에는 개헌안 발의요건인 재적의원 과반 의원이 참여한 상태다. 집권 여당 대표가 여권의 '정신적 지주'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소신 발언'을 한 대목 역시 심상치않다. 한동안 여러 측면에서 정치적 파장이 지속할 것임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김 대표가 굳이 박 대통령의 부재중에 개헌 언급을 한 점도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제10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차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고 있다.
아직 박 대통령의 직접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으나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 주류 측은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 지도부와 광역단체장 등 주요 포스트에서 비주류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자 개헌론을 고리로 본격적인 '친박 흔들기'에 나선 것이란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범친박계 일각에서는 아직 집권 2년도 안 지난 시기에 이상 기류가 발견되는 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 대통령의 여권 장악력에 실제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이다.
청와대는 일단 공식 대응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내부에서는 강한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친박 의원들은 익명을 전제로 김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 친박 의원은 "얼마 전까지도 지금은 개헌 시기가 아닌 것처럼 얘기하던 김 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게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것 아니겠느냐"면서 "헤게모니를 쥐려고 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론자들은 여야 소속에 상관 없이 김 대표의 개헌 불가피론을 환영하고 나섰다. 개헌추진 의원모임 공동회장인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87년 체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고 과반수의 여야 의원이 동의하는 만큼 바로 결단해야 할,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헌모임 소속 의원이 많긴 해도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 방향을 놓고 이해가 엇갈릴 가능성이 커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실제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분명히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반대하고 있고, 정치권의 오피니언 리더인 대권 잠룡들도 개헌 논의에 당장 착수하는 데 일사불란하게 동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겉보기보다 논의를 시작하는 작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실제로 친박이 아닌 비주류 정치인 중에도 김 대표의 개헌론에 제동을 거는 의견이 있다. 여권 잠룡 중 하나로 꼽히는 홍준표 경남지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개헌은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정권 말기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언급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란?
김 대표가 언급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이 직접선출한 대통령에게 국방통수권 등 외치 권한을 부여하고, 내치를 담당하는 국무총리는 의회가 뽑는 일종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절충된 제도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교·통일.국방 등 권한을 갖고, 국무총리는 행정수반으로 내치를 담당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은 조약체결·국방통수권·국회해산·정당해산 제소·계엄선포·긴급명령 등의 권한을 갖고, 총리는 행정부 통할·법률안 제출권·예산편성권·행정입법권 등을 행사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선거로 선출하고, 총리는 의회의 다수당 대표가 맡는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연립정부도 가능한 제도로 평가된다.
이원집정부제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프랑스, 핀란드, 아일랜드 등의 국가에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단임 대통령제를 대신할 수 있는 권력 구조형태로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었다.
이원집정부제는 정부와 국회, 특히 야당과의 대립을 최소화 하면서 비상시에는 신속한 국정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대통령이 수행하는 외치 부분에 대해서는 내각과 의회의 견제수단이 부족해 입법부의 기능이 축소될 수 있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더불어 대통령과 총리의 원만한 협조관계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도 제도적 한계로 지적된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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