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파키스탄 10대소녀 ‘유사프자이’,인도 인권교육운동가 카일라시 공동수상
<국제특집>
"노벨평화상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는 10일(현지시간)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은 그간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의 영예를 안은 유사프자이는 이날 영국 버밍엄 에지배스턴 여고에서 수업을 마치고서 기자회견을 통해 "파키스탄의 젊은 여성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이같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또 자신이 받은 상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는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동수상자인 인도의 인권·교육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와 협력하고 싶다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시상식에 초청한다고 밝혔다. 2012년 탈레반에 피격돼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 영국에 정착한 유사프자이는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업하며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과를 보냈다.
유사프자이는 이날 오전 교과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을 통해 수상소식을 처음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유사프자이와 사티아르티의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축하 반응도 줄을 이었다. 영국 여왕은 노벨상 선정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이들의 수상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사회발전 위해서는 여성권리 확대만 한 도구가 없다"며 수상자 선정을 반겼다.
유사프자이와 유엔 교육운동을 펼쳐온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용기와 결단력, 비전을 가지고 교육 운동에 앞장섰던 두 사람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며 기뻐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수상자들이 헌신적인 활동으로 인류에 영감을 줬다고 칭찬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도 "유사프자이는 무기 대신 펜과 책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웠다"며 칭찬 릴레이에 가세했다.
주인공들은 누구?
말랄라는 10대 초반에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 치하에서 이들의 학교 파괴를 고발하다 총격까지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포기하지 않고 남녀차별 철폐와 교육운동을 펼쳐온 것으로 유명하다. 평화상은 물론 역대 전체 노벨상 수상자 중 최연소다. 사티야티는 사실상 노예상태로 노동에 내몰리는 어린이들을 구해 이들의 재활ㆍ교육에 애써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벨위원회는 두 수상자에 대해 “힌두ㆍ이슬람, 인도ㆍ파키스탄으로 다르지만 이들이 교육을 위해 또 종교적 극단주의에 맞서 함께 싸웠다는 점을 중시했다”고 밝혔다.
■최연소 수상 말랄라 유사프자이
지난해 7월 1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이날 16세 생일을 맞은 한 소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소개로 단상에 올라 전세계 지도자를 향해 어린이에 대한 무상교육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소녀는 “우리가 책과 펜을 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책과 펜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파키스탄 출신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다.
1997년 7월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말랄라는 빈국과 분쟁국 어린이의 보편적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다. 말랄라가 어린이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강조해 온 것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말랄라가 살던 스와트밸리는 2008년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탈레반에 점령됐고 탈레반은 이듬해 말랄라를 포함한 여학생들의 등교를 금지시켰다. 말랄라는 탈레반의 억압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자 이런 사실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세계에 알렸다. 말랄라가 불과 11세 때 일이다.
탈레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을 포함한 10대와 어린이들의 배울 권리를 전 세계에 호소해 오던 말랄라는 2012년 10월 하교하던 통학버스에서 탈레반의 총에 머리와 목을 맞아 중태에 빠졌다. 현지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위독한 상태여서 영국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이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의 바람 덕분인지 기적같이 살아났다. 하지만 두개골 복원을 위해 티타늄을 삽입했고, 귀에는 청력 회복을 위해 인공 달팽이관을 넣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여성과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는 말랄라의 활동을 전세계인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초교육 운동을 펴온 유네스코도 지난해 12월 파키스탄 정부와 함께 ‘말랄라를 위해 일어서자’라는 행사를 열어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말랄라 기금’을 발족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말랄라가 유엔본부에서 연설한 날을 ‘말랄라의 날’로 지정하고 유엔을 중심으로 모두가 교육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보편적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 공로로 말랄라는 지난해 국제어린이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말랄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 세계에서 5,700만명의 어린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1억2,000만명은 기초적인 문장 해독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말랄라와 같이 분쟁에 휘말린 국가에 살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교육보다 구호가 우선이어서 보편적 교육이 지구촌으로 확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인도 카일라슈 사티야티
“아동의 권리를 위한 우리의 싸움과 지금도 수백만의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곤경을 (노벨위원회가)알아 줘 기쁘다.” 인도의 아동인권 운동가인 카일라슈 사티야티(60)는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에 비해서 국제사회에서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동인권계에서 그는 평화적인 방식을 통해 8만명의 아동을 불법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 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벌인 운동으로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채석장, 성냥 공장, 카페트 공장 등에서 일하던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게 됐다.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1995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과 2002년 미국 미시간대의 월런버그 메달을 수상했고, 2006년 한 차례 이미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인도의 영자 일간지 힌두스탄타임스는 10일 노벨평화상으로 사티야티가 지명되자 “그의 이름을 오늘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는 뉴델리를 기반으로 비정부기구(NGO)를 조직해 수십 년 간 아동노동 착취에 반대해 온 아동인권 운동의 선구자”라고 전했다.
사티야티는 1980년대부터 아동권리 운동에 본격 투신했다. 1983년 아동인권 NGO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BBAㆍ아이들을 구하자)을 조직해 아동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였다. 불법 아동노동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러그마크(Rugmark)도 만들었다. 아동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만들어진 카페트에 ‘러그마크’로 인증하는 방식이다.
1998년 103개국, 1만개 단체가 참여하는 ‘아동 노동에 반대하는 세계인 행진’(GMACL)을 조직해 당시 국제노동기구(ILO) 회의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국 정부에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아동노동 관행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이듬해 ILO로부터 아동을 위험한 직업과 착취로부터 보호한다는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사티야티는 동시에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공장이 아닌 학교라고 역설해왔다. 그는 BBA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해 아이들이 최소한의 교육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마을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 왔다. 인도의 11개 주 356개 마을에서 BBA의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역시 이날 수상자 발표 성명에서 “지금도 전세계에서 노동에 내몰리는 아동이 1억6,80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노벨 평화상, 가장 논쟁적인 상“
파키스탄 언론 "말랄라 뭘 이뤘나 서방이 영향력 강화 위해 준 것"
중국 반체제 류샤오보 선정 땐 노르웨이, 중국 정부 반발에 홍역
역대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지목된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는 자서전 『나는 말랄라』에 이렇게 적었다. “남동생 쿠샬은 누나가 뭘 했다고 세계적 주목을 받는 건지 궁금해한다.” 9일(현지시간) 노벨 평화상 발표를 보며 이런 의문을 품은 건 쿠샬만은 아닐 듯하다. 말랄라가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벨 평화상의 선정 기준과 과정의 모호성 때문이다.
평화의 아이콘 격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도 받지 못한 노벨 평화상을 두고 미 언론인 제이 노르딜링거는 『평화라고 그들은 말한다』에서 “노벨 평화상은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논쟁적인 상”이라 말했다. 간디는 다섯 번이나 후보로 지명됐으나 정작 수상자로 발표되기 며칠 전 암살됐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노벨 평화상이 “국가 간 우애를 위해, 군 병력 폐지·축소를 위해, 평화 증진을 위해 최대 또는 최고의 노력을 한 사람이나 기관”에 주어지도록 했다. 물리학상처럼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평화’라는 추상성 속에서 1901년부터 수여된 노벨 평화상은 평화보다 논란을 더 많이 불러왔다. 타임지가 2011년 선정한 역대 노벨상 논란 10가지 중 7건이 노벨 평화상이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 일부가 전쟁을 조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노벨 평화상이 아니라 ‘노벨 전쟁상’이라고 불러야 한다”(허핑턴포스트)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에 대해서는 “테러리스트에게 평화상을 줄 수 없다”고 항의하며 선정위원이 탈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선정 과정도 논란을 부른다. 노벨 평화상 심사·선정은 노르웨이 국회가 임명하는 5명의 위원들이 한다. 임기는 6년이고 재선이 가능하다. 각국 전문가 1000여 명의 추천을 받아 선정 범위를 좁혀나가는 방식이다. 현 위원장인 토르비에른 야글란은 노르웨이 노동당 총리 출신 정치인이다. 선정위원회가 정치적 결정을 해왔다는 비판이 이는 이유다. 2009년 집권 1년차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했을 땐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이 “노르웨이가 미국에 아첨하는 거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마저 “과분하다”며 “내 업적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앞으로 실천에 나서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듬해인 2010년 노벨위원회는 중국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해 중국이 노르웨이와 교역 협상을 중단하고 양국 관계를 급랭시키는 역풍을 맞았다. 이후 노벨 평화상 선정위원회가 안전하면서도 안일한 선택을 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2년 유럽연합(EU)이 “지역 평화에 기여했다”며 선정된 것을 두고는 “최악의 노벨 평화상”이라는 비판과 함께 오슬로에서 대대적인 반대 시위까지 열렸다. 유럽 경제 위기에서 EU의 역할 회의론이 한창이던 때 EU에 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었다.
내년 1월 노르웨이 의회는 5인 위원 중 3명을 교체하는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선정위의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모니터는 11일 “선정위원회 구성은 노르웨이 의회 여야 구도를 그대로 반영해왔다”고 지적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는 “노벨 평화상 선정 과정은 언제나 그래왔듯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11일 항변했다. 그러나 말랄라 선정을 두고 파키스탄 내에서조차 “말랄라가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파키스탄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준 것”(파키스탄 옵서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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