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죽기전 MB정권 실세에게 SOS요청,협박-- 사망의혹 열쇠는 마지막 조력자들 <사회특집>
*유병언 죽기전, MB정권실세 A씨에게 현정권과 딜 SOS요청,협박
18일 일요신문 단독보도에 의하면 지난 6월 12일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이 전 정권 실세였던 친이계 핵심 인사 A 씨를 상대로 구명로비를 펼친 정황이 드러나 국민들에게 “혹시나?가 역시나!다” 라는 충격을 주고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당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던 지난 5월 초경에 대한 사건제보다.
당시 밀항을 포함해 다양한 대책을 세우던 유병언은 A 씨에게 ‘SOS’를 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유병언은 과거 A씨를 후원했던 자료들을 무기로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했다고 한다. 궁지에 몰렸던 유병언으로서는 A 씨가 사실상 마지막 ‘히든카드’였던 것일까?
유병언의 공식적(?)인 도피는 검찰에 출석하기로 한 약속을 깬 5월 12일부터다. 그 전까지 유병언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수사 상황을 파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평소 ‘유병언 키즈’로 불리는 다양한 인맥이 동원됐다. 이와는 별도로 유병언은 밀항 브로커와도 접촉했다. 밀항 대가로 10억 원을 제의받았다는 한 브로커에 따르면 유병언 측으로부터 처음 연락이 온 것은 5월 초라고 한다(<일요신문> 1151호, 유병언 접촉한 밀항 브로커 인터뷰).
유병언이 A 씨측을 접촉한 것도 밀항을 수소문했던 시기와 비슷한 5월 초다. 유병언 측은 A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현 정부와의 ‘딜’을 위한 중재에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때만 하더라도 유병언이 밀항을 포함한 도피에만 ‘올인’했던 게 아니라 검찰 소환 시기를 조율하는 등 막후에서 탈출구를 모색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A씨를 향한 구명 로비 실패가 5월 12일 유병언의 소환 불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믿고 있었던 A 씨로부터 외면을 당하자 낙담한 유병언이 도피를 결심했을 것이란 얘기다. 유병언과 A 씨가 처음 만난 시기는 2008년 연말이라고 한다. 유병언이 먼저 A 씨 측에 만남을 제안했는데, 한 재일교포 사업가가 다리를 놔줬다는 전언이다.
이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유병언의 한 측근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사업가가 유 전 회장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A 씨와의 자리를 주선했다. A 씨와 고향이 같은 그 사업가는 유병언과 사진 때문에 친해진 것으로 안다”면서 “유병언이 정권 실세인 A 씨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을 나뿐 아니라 많은 구원파 신도가 들었다”고 귀띔했다.
유병언은 A 씨에게 물질적으로 상당한 후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병언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A 씨 측근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단, 불법적인 건 없었다. 유 전 회장도 어떤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A 씨도 유 전 회장을 편하게 대했을 것이다. 정치적 후원자로 보면 된다”고 답했다.
유병언은 A 씨와 가까운 또 다른 의원들에게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앞서의 A 씨 측근은 “A 씨 정도 되면 동료 의원들을 잘 관리해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유병언이 A 씨에게 힘이 됐을 것이다. 유병언은 A 씨 인맥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출판기념회 등에 후원금을 내곤 했다”면서 “그런데 유 전 회장은 통상 지인들을 행사장에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구원파 신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는 유병언 장남 대균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몽테크리스토’를 찾은 적도 있다. 강남 테헤란로의 한 고층 빌딩 3층에 위치한 몽테크리스토는 구원파 아지트나 다름없는 곳이다. 유대균을 비롯한 유병언 일가는 이곳에서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A 씨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A 씨는 몽테크리스토와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음식점(구원파 신도 소유)에서 자신의 지인들과 회식을 하기도 했단다. 몇몇 친이계 인사들이 몽테크리스토를 방문한 것도 A씨 추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A 씨와 유병언이 가깝게 지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던 유병언이 A 씨에게 손을 내민 이유도 이처럼 지난 정권에서 각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MB도 오세훈 전서울시장도 몽테크리스토를 방문한 명단에 들어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유병언에게 A 씨를 소개해준 재일교포 사업가가 움직였다.
앞서의 유병언 측근은 “유 전 회장은 A 씨를 통해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의 방향 등을 파악하려 했다. 또 자신과 현 정권 간 핫라인을 개통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면서 “유병언은 A 씨에게 ‘수사에 도움을 주기 곤란하면 밀항할 수 있는 조건이라도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A 씨 반응은 차가웠다고 한다. 유병언 일가가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을 듯하다.
또 A 씨가 지난 정권에선 승승장구했지만 지금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처지라는 점도 유병언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보인다. 유병언으로선 ‘번지수’를 잘 못 찾은 셈이다. 그러자 유병언이 돌변했다. 그동안 A 씨에게 제공한 금품 등을 적어둔 장부를 손에 쥐고 협박에 나선 것이다.
유 전 회장 측은 “나는 폭로하고 해외로 튀면 그만”이라는 말까지 하며 A 씨를 압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A 씨가 협박을 당한 게 사실이라면 과거 유병언으로부터 불법적인 자금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프닝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내용을 전해들은 한 야당 중진 의원은 “A 씨가 유 전 회장과 알고 지낸다는 소문은 이미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지난 정부 실세였던 A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병언이 A 씨에게 돈을 주고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헌상 2차장)은 세모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주인 유병언은 사망했지만 과거 세모그룹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선 단죄를 하겠다는 의지다.
유병언이 노무현 정부 시절 2000억 원의 부채를 탕감 받은 뒤 거액 대출을 받아 세모그룹을 헐값에 인수하게 된 과정, 이명박 정부인 2009년 해운법 개정을 위한 청해진해운의 정치권 로비 등이 주요 수사 대상이다.
특히 검찰은 이명박 정부 초기 유병언이 정권 실세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첩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A씨 역시 여기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병언 친인척이 2008~2009년 50억원대에 달하는 골프채를 구입해 유력 인사들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공개된 적 있는데 A 씨도 골프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A 씨와 관련된 구체적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우리도 A 씨와 유병언의 친분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다”고 일요신문에 귀띔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내용은 18일 금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도 일요신문 제보를 빌어 방송해 국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유병언 사망의혹 열쇠는--신비서, 신엄마, 김엄마, 양회정, 오갑렬, 이재옥등
마지막 조력자들
또다른 한편 18일 MBN뉴스보도에서는 양회정의 어릴적 친구라는 사람이 양회정의 친인척으로부터 검찰에 양회정이 자수하기전후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죽고싶다”는 심적토로를 한 사실을 제보했다.
이것은 양회정이 유병언 사망과 관련한 비밀을 알고 있음을 의미하며 검찰 조사후 양회정을 납치하다시피 데려간 벙거지 모자 두사람이 금수원 신도는 아니고 금수원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라는 내용도 함축하고 있다.
이제보는 제보자가 금수원이나 구원파의 어느 특정세력의 지시를 받지않은 순수성이 읽혀져 상당한 신뢰를 담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 뿐만 아니라 유병언 사망 시나리오에 양회정은 단순히 ‘시키는 데로 할 수 밖에 없는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설명했으며 24일 비밀팀이 유병언을 접촉 데리고 나갔다는 추정과 숲속의 추억 별장에 유병언, 신엄마, 신여인, 양회정 이외 그 인근에 금수원, 전남지역 구원파 조력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보하며 진정한 친구의 조언으로 양회정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것은 젊은 신여인의 진술이 사실인 점도 확인하고 있다.
또 놀라운 제보는 유병언의 도피중 지시에 의해 오갑렬에서 이재옥으로 금수원 조력 콘트롤타워가 바뀌는 시기가 있었으며 오갑렬의 든든한 조력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고 유병언의 사망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유병언의 ‘뉴욕 사진 전시회’때 반기문 부부가 방문,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이점도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점 역시 “혹시나?가 역시나!다” 라는 시사를 하고 있는데 유병언이 도피전 MB정권 핵심 실세에게 “나는 폭로하고 해외로 튀면 그만”이라며 협박한 '남팔고 이용하기식 로비'의 달인인 그의 발언에 상당한 파문의 의미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유병언의 추정사망시기 몇일 전 금수원내부에서 혈연파와 비혈연파간의 권력다툼의 조짐이 있었으며 이로써 유병언-오갑렬 통신망이 끊어지고 도피중인 유병언의 지시에 의해 금수원 조력 콘트롤 타워가 오갑렬에서 이재옥으로 바뀌며 유병언은 이재옥에게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비혈연파 간부들을 바꿔버리라고 명령한다.
이재옥마저 채포되자 사실상 유병언과 금수원의 연락이 두절된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5월 25일 이후 유병언에 대한 비혈연파의 배신이나 이들과 유병언의 입막음이 필요한 구원파 외부 제3의 세력과의 딜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으며 유병언 사망을 타살로 추정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1번 돈가방 사라짐과 함께,,,
즉 5월 25일 저녁부터 6월 2일까지의 시간에 유병언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겉으로는 종교적이지만 사실상 조직의 권력파워가 돈으로 움직이는 유병언과 구원파의 입장으로 볼때 유병언과 비혈연파의 차이점은 유병언은 국내든 국외든 도피하면서도 계속 자신이 재산,권력 모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지만,
비혈연파 구원파는 유병언과 달리, 유병언과 그 일가들만 없어지면 그 막대한 재산이 자신들의 것이 될수도 있으며 가족들과 함께 국내에서 계속 살아야 하고 또 자신들의 재산이 잘못된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유병언에게 투자했기에 차명재산으로 악용되었던 것 아니던가? 그럼 추정이지만 답은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머리 자르기와 재산지키기만 눈멀어 자신들의 속마음과 사정을 훤히 보고있는 국민들을 모르고 있다. 자신들의 사적 이익보다 국민의 국가구상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병언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다른 유류품들과 함께 '치킨소스'도 발견 되었다. 혼자 물떠먹고 육포와 열매만 따먹으며 도피하는 사람이 치킨소스를 왜 지니고 있었겠는가? 이것은 분명히 유병언 사망시 옆에 누군가 조력자인지, 제거자인지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들은 "왜 국회의 세월호 특위가 합의가 잘 안되는지의 답에 가까이 가고 있다"며 정치권과 정부에 불신을 키워가고 있으며 "검찰의 확실하고 적극적인 해명, 수사분발을 촉구한다"고 혀를 끌끌 차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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