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 내수시장
정부대책, 미시적 처방도 필요하다 <경제특집>
[권맑은샘 기자/스포츠닷컴]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일성으로 거시적인 일명‘최경환 노믹스’를 발표했지만 우리 경제를 미시적으로 뜯어보면 그리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미시적 관점의 총합적 요체는 내수시장에 있어 “공급과잉”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 겪는 것은 아니지만 각 경제주체들, 특히 정부의 처방이 주목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IMF본부에 내로라하는 미국의 경제정책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은 “세계 경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과잉인 상황이고, 저성장·저물가·저금리가 뉴노멀(새로운 정상 상태)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공급과잉 시대다.
우리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나긴 경기 침체로 곳곳에서 ‘소비자가 돈을 쓰지 않는다’며 아우성인데, 골목길엔 치킨집과 커피전문점 등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게 되면 경쟁은 치열하고 값은 떨어진다. 안정된 고소득 직종의 대표주자인 의사, 변호사 등 일명 ‘사(士)’자 직업의 파산도 늘었다.
어렵기는 골목상권만이 아니다. 중국이 철광석, 알루미늄 등 원자재뿐 아니라 완제품을 싼값에 대량생산하면서 한국 수출기업 실적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업실적 하락은 고용창출 악화로 이어지고, 감소한 가계소득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킨다. 가계가 소비를 하지 않다 보니 내수를 기반으로 한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내수시장에 비전이 없는 데다 비싼 인건비에 허덕이는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해 국내에 필요한 일자리 확충과 투자를 늘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투자하면 업어준다 외쳐도 기업들은 흉내만 낼 뿐 사내에 유보금만 쌓아놓고 눈치만 보고 있다. 대내외 ◆공급과잉으로 한국경제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영업의 고용구조와 인력수요 전망’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자영업 취업자는 559만4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취업자의 21.0%에 해당한다. 이는 적정 자영업 규모를 뛰어넘는다. 한국의 적정자영업 비중은 2008년 기준으로 16.3∼17.8%로 분석됐다. 도소매업은 23.0∼23.4%, 음식숙박업이 20.8∼21.6%다.
이 기준에 비교해 보면 2018년 전망치상 도소매업(32.8%) 음식숙박업(27.8%) 등이 여전히 ‘과잉’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자영업 난립을 막을 길도 막막하다. 자영업자 상당수가 구조조정과 은퇴로 생계를 위해 재취업시장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실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남성이 은퇴 후 1년 안에 자영업자가 될 확률은 11%였다.
문제는 이들이 전문성을 갖추는 등 완벽한 준비 없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로 몰리고 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치킨집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 결과 치킨전문점 5곳 중 4곳은 창업 후 10년 내에 문을 닫거나 휴업했다. 평균 생존기간은 겨우 2.7년이었다. 수요보다 치킨전문점 증가 속도가 빠른 탓이다. 전체 점포 수는 2002년 1만6000개에서 2011년 3만6000개로 늘었고, 같은 기간 1만 가구당 치킨 전문점 수는 9.6개에서 17.9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치열한 경쟁은 월스트리트저널이 ‘치킨집 버블’ 때문에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치열한 골목상권 경쟁구도는 당사자들이 더 절실히 느끼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진흥원이 2013년 전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 소상공인들은 주된 경쟁상대로 다름 아닌 주변의 소형업체(46.4%)를 꼽았다. 대형업체(19.0%)나 인터넷 또는 TV홈쇼핑(8.2%)보다 훨씬 많다. 업종별로는 미용업(60.9%) 이용업(59.4%) 음식점(53.5%) 등이 주변 업체와의 경쟁을 심하게 느꼈다. 지난해보다 매출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도 주변 업체와의 경쟁(41.8%)이 꼽혔다.
창업 동기를 묻는 질문에 82.6%가 ‘생계유지를 위해’라고 답할 만큼 가게 유지가 절실하지만, 가게 문을 열고 있어도 상당수가 빚에 허덕이고 있다. 1000조원의 가계부채 중 자영업자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43.6%나 달한다. 특히 가계부채는 자영업에 많이 뛰어든 베이비붐 세대에 집중돼 있다. 평균 부채도 근로자가계의 2배에 육박하는 1억원을 넘어 이들이 한꺼번에 연쇄 몰락할 경우 금융권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자 직업도 옛말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선호됐던 전문직 역시 공급과잉으로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서울고등법원 담당지역(인천·수원·춘천 제외한 수도권 및 강원도)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은 1145건이다. 이 중 의사 직종이 39.2%로 파산신청자 10명 중 4명이 의사일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병원도 늘었다. 의원·한의원·치과의 폐업은 2009년 2857개에서 2012년 3359개로 17.6% 늘었다.
교육 당국이 의대 인가 수를 획기적으로 늘렸기 때문으로 수요예측에 실패한 사례로 통한다. 2013년 말 보건복지부에 등록한 의사는 11만5127명이다.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216명으로 1980년 54명에 비해 390.4% 늘어났다. 같은 기간 인구증가율은 23.2%에 불과했다.변호사 업계도 한숨이 깊다. 2012년 1기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말 전국 변호사는 1만4000명을 넘어섰다. 2007년엔 7000명 정도였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2011년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건수는 1.8건이었다. 수임료 역시 건당 500만원 수준에서 200만∼300만원으로 떨어졌다.법률시장 개방으로 국내 변호사끼리만이 아닌 외국계 로펌도 경쟁 대상이 됐다. 개인 변호사가 아닌 소형 로펌들은 고사 직전인 곳이 적지 않다. 변호사 개업이 어려워 공직사회나 기업체에 ‘월급쟁이’ 변호사로 전향하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한 로펌 고위 관계자는 “기업 등이 직접 고용한 사내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로펌도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전반적인 가격 후려치기가 횡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휘청거리는 제조업 내수시장
세계적 철강 공급 과잉에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철강 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다. 세계철강업계에 따르면 2012년 세계 철강 수요는 11억1238만t, 공급은 15억4501만t으로 4억t 이상이 과잉 공급됐다. 이 가운데 절반은 중국에서 생산된 것이다. 활발한 철광석 광산 개발로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면서 제품 가격도 하락한 가운데 중국발 저가제품 대량 생산은 위협요인이다.
동부제철은 철강업 불황으로 유동성 위기를 맞아 최근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다른 분야 사정도 비슷하다. 화학 분야에선 타이어 업계가 천연고무 공급 과잉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베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재배면적 확대와 농장의 대형화, 재배기술 발달 등으로 천연고무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 약세로 타이어 가격 인상을 통한 매출 성장이 어려운 형국이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에 활황이었던 FPCB(연성인쇄회로기판) 역시 공급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인기를 타고 주요 업체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부품 가격이 떨어진 탓이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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