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추기경 "개성공단서 아픔 극복 희망 봤다"
서울대교구 "평화통일은 개성공단 활성화에서 출발"
[류재복 대기자]
"남과 북이 함께 화합하는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1일 개성공단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환했다. 우리나라 추기경의 첫 방북이다.
염 추기경은 이날 오후 5시 20분께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 기자회견을 열어 "당초 조용히 개성공단에 들어가 방문하고서 조용히 오려고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염 추기경은 "서울에서 개성공단까지 60km 남짓한 거리"라며 "이 짧은 거리를 얼마나 멀게 살고 있는가 많이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서 "선의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며 진실로 노력한다면 평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염 추기경이 간단하게 소감을 밝힌 뒤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취재진 앞에서 방북 관련 보고를 했다.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염 추기경의 방북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들로 구성된 천주교 신자공동체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신부는 "오늘(21일) 방문은 교황님의 방한과 무관하며 개성공단의 신자공동체인 로사리오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사목적 방문이었다"며 "지난해 12월 개성공단 신자들을 방문하여 함께 성탄을 보내기로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현지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평화로운 통일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평화통일은 개성공단의 활성화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번 방문의 의의를 설명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개성공단에 들어가 신자공동체와 개성공단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북측 인사와의 접촉은 없었다고 밝혔다.
허 신부는 "개성공단이 남북한의 협력으로 통일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산가족의 아픔도 남북한이 더 큰 결단을 내려 해결한다면 우리 민족 공동체의 회복과 번영이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남북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우리 교회도 남북이 대화 협력을 확대해 나아갈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역할을 모색해 나아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추기경 방북 승인 의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아주 좋은 신호라고 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방북단은 이날 오전 8시 30분 CIQ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공단에 들어간 뒤 약 8시간 가까이 머무르고 돌아왔다. 염 추기경은 이날 일반 사제복인 클러지 셔츠 차림으로 황인국·임병헌·정세덕·김훈일 신부, 서울대교구 관계자 등과 함께 레저용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방북했다.
한편, 이번 방북은 오는 8월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 전에 북한을 사목 방문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서울대교구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