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올림픽 개회 선언했지만, 펜스 만
찬장서 중도 퇴장
문 대통령, 평창동계올림픽 개회 선언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제23회 동계올림픽 대회인 평창올림픽 대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라는 일성으로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시작을 전 세계에 알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강원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열린 '평화올림픽을 향한 위대한 여정의 문'을 여는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함께 입장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하얀색 롱패딩을 맞춰 입고 개막식장 4층에 마련된 VIP박스에 도착했다. 정면에서 봤을 때 기준으로 김 여사 오른편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가 앉았다.
특히 문 대통령 부부 뒷줄엔 북측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착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을 처음 만났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바로 뒷줄에 있는 김 제1부부장을 향해 다가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마주보고 밝게 웃으며 악수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김영남 위원장과도 악수했다.
문 대통령은 참석한 국내외 귀빈과 함께 선수단 입장 마지막 순서로 공동 입장한 남북 선수단을 박수로 환영했다. 특히 문 대통령 부부와 김영남·김여정은 단일팀 입장 때 다같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응원했다. 김 위원장은 두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용평 블리스힐스테이 웰니스홀에서 개회식 사전 리셉션을 주최하고 환영사를 했다. 이 자리엔 각국 정상급 내외 및 IOC, 유엔 등 국제기구 대표, IOC 위원 및 국내 주요인사 등 200여명이 자리했다.
펜스 미부통령, 만찬장에서 중도 퇴장
한편, 이에앞서 각국 정상(頂上)급 만찬에서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중도 퇴장했다. 북측 인사와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펜스 부통령은 6·25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당시 받은 동성무공훈장을 집무실에 걸어놓을 정도로 북한 문제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등과 함께 헤드 테이블에 앉기로 돼 있었다.
청와대가 이날 오전 기자단에 공개한 좌석 배치도에서도 펜스 부통령 부부 좌석은 김영남 자리와 대각선 맞은편이었다. 펜스 부통령은 앞서 우리 정부에 북한 대표단과 동석(同席)할 가능성이 있는 행사에 좌석이나 사진 촬영 위치가 가깝게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자신의 뜻과 달리 만찬 자리 배치가 이뤄지자 퇴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이 리셉션 전 손님맞이 행사인 '리시빙(receiving)' 행사를 끝낼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을 기다리다 6시 11분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20분 가까이 펜스 부통령을 기다린 셈이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도착한 것은 문 대통령이 리셉션장으로 입장한 직후다. 이때까지 두 사람은 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은 리셉션장 앞에서 그들끼리 기념 촬영을 했다. 리시빙 행사에서 문 대통령과 김영남이 악수하고 기념 촬영한 곳과 같은 장소였다.
그사이 문 대통령은 리셉션 환영사에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두 손안의 눈뭉치는 점점 더 커져 평화의 눈사람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메인 테이블에는 문 대통령 내외에 김영남 위원장, 한정 상무위원 등만 있었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이 환영사를 마칠 때까지 입장하지 않았다. 환영사를 마친 문 대통령은 바흐 IOC 위원장의 건배사가 끝난 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있던 다른 방으로 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을 리셉션 행사장으로 안내했고, 세 사람은 오후 6시 39분이 돼서야 리셉션장으로 입장했다. 행사 사회자가 펜스 부통령, 아베 총리에게 박수를 쳐달라고 하자 펜스 부통령이 손을 들어 답례를 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테이블에 앉았지만 펜스 부통령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정상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6시 44분 부인과 함께 리셉션장을 나갔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김영남과는 악수는 물론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이 테이블을 돌며 인사할 동안 김영남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열린 개막식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 대표단과 한 화면에 잡혔다. 정부는 개막식 귀빈석에서 문 대통령 부부 왼편에 펜스 부통령 부부를, 뒤편에 북한 대표단 김영남·김여정의 자리를 배치했다. 개막식에서도 펜스 부통령은 북한 대표단과 별도의 인사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펜스 부통령은 지난 7일 일본을 찾아 아베 총리와 회담을 한 뒤 "불량배 국가(rogue nation) 북한에 맞서기 위해 미·일이 협력하겠다"고 했었다. 문 대통령이 주도해온 '대화 노선'과 확실히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됐다. 평창올림픽 첫 공식 행사에서 펜스 부통령이 북한 대표단을 철저히 외면함에 따라 '평창 이후'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북 대화를 중재하겠다는 문 대통령 구상은 타격을 입게 됐다.
한편, 김영남 위원장은 옆자리에 앉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눴다고 윤영찬 수석은 전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거기서 건강에 좋다는 인삼을 가져가 부친에게 드린 적이 있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조선 음식이 건강식이라 유럽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고 했다.
문대통령, 김영남, 김여정 접견예정
한편, 문대통령은 10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과 만난다. 문 대통령은 전날 방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본관에서 접견한후 오찬을 함께할 예정이다. 북측 참석자는 김영남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확정됐다. 우리 측에선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이 배석한다.
접견에는 북한의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위원장과 함께 김여정 부부장이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인격으로 참석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김일성 주석 일가인 '백두혈통' 중 처음으로 남측 땅을 밟은 김여정 부부장이 어떤 메시지를 들고 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영남과 김여정은 사실상의 김정은 특사단으로, 김영남과 문 대통령과의 대화에 김여정이 배석함으로써 간접적인 남북 정상 간 대화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김여정 부부장은 남북관계 전면 개선에 대한 의지를 담은 김정은의 구두친서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북한은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전면적인 비핵화를 언급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과 당장 비핵화 문제 접점을 찾기보다는 일단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비핵화를 논의할 후속 대화 기회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접견은 사실상 '정상급' 회담이지만 회담 명칭을 정상회담으로 할지 정상급 회담으로 할지는 미정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