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올림픽과 평화’ , 그러나 전운 감도는
한반도
'코피전략'에 워싱턴 조야 우려 팽배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백악관의 '코피전략', 즉 대북 선제타격 구상에 반대하다 낙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31일(현지시간) 워싱턴 조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일단은 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내면서 '화염과 분노'로 상징되는 군사공격 경고는 '허풍'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대해 제한적 타격을 가해 경고의 메시지를 주겠다는 백악관의 '코피전략'에 반대한 차 내정자가 전격 낙마하면서 백악관이 대북 선제타격을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음이 사실상 확인됐다.
실제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허버트 맥매스터 보좌관이 이끄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는 수준에서의 제한적 대북 타격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 사안에 밝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북핵과 미사일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한 만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이나 상징적 장소 등을 코피 터뜨리듯이 제한적으로 때릴 경우 북한이 반격하지 못하는 자위적 차원의 타격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0일 "차 내정자가 광범위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북한에 제한적 타격을 가하는 방안, 즉 '코피전략'으로 알려진 위험한 개념을 놓고 미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들에게 우려를 제기했다"고 했던 것도 백악관의 이러한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북 군사공격을 앞두고 한국 내 미국인들을 대피시키는 '비전투원 소개 훈련' 문제를 놓고 차 내정자가 회의적 반응을 보인 것이 결정적인 낙마 이유로 작용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에 대해 워싱턴 외교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서의 제한적 대북 타격이나 전면전을 염두에 둔 타격이나 모두 한국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조야의 100명에 95명은 대북 타격을 반대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주한 대사로 보내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미 국방장관실 선임보좌관을 지낸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날 공영방송 NPR과의 대담에서 "차 내정자가 북한에 대한 군사 타격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내쳐졌다면 매우 걱정되는 일"이라며 "그것은 백악관이 이 옵션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런 정책에 찬성할 수 없는 인사를 대사로 보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차 내정자의 우려에 공감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북한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제한적으로 코피를 터뜨리기 위해 타격한다는 점을 어떻게 북한 정권에 설득하겠는가. 그게 걱정"이라며 "만약 미국이 공격하고 북한이 억지 차원에서 대응한다면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도 큰 인적·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너선 크리스톨 세계정책연구소(WPI) 연구원도 CNN 기고에서 차 내정자의 낙마를 "어리석은 결정"이라며 "그의 내정철회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미국에도 필요하지 않은 코피전략을 백악관이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WP는 '북한에 맞서 트럼프가 재앙을 각오한다'는 기사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일한 차 내정자는 그의 매파 성향으로 유명하지만 자기가 볼 때도 백악관이 너무 강경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지금은 비판받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대안으로서 북한에 대해 무력사용을 위협해왔다"며 "무력만이 김정은 독재정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맥매스터 보좌관
또 맥매스터 보좌관이 이러한 주장의 주도자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미라 랩 후퍼 신미국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은 WP에 미국의 대북 타격에 "김정은이 반격하면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가장 재앙을 초래하는 충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피 작전(Bloody Nose Strike)이란 무엇인가?
코피 작전(Bloody Nose Strike)이란 본보기 식으로 적 핵심시설 일부를 정밀 타격해 겁을 주는 군사 행동을 말한다. '코피 작전'은 북한의 상징적 시설 한두 곳을 정밀 폭격한다는 계획인데 북한 핵·미사일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미국의 군사행동 의지·능력을 확인시키는 것이 목표다. '목을 따지 않고 코피를 터뜨리는 수준의 공격'으로 북한이 겁을 먹게 해 핵 포기 협상에 나서게 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북한이 섣불리 보복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에서는 "다양한 탄도미사일과 장사정포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은 반드시 보복 공격에 나설 것이며, 최악의 경우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피 작전'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임박하지 않았더라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예방 타격(preventive strike)'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적의 공격 징후가 보일 때 타격하는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과는 다르다. 미 정부나 미군이 코피 작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하거나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미국의 폭격 대상이 거론되고 있다. 영변 핵시설,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 화성-15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을 생산하는 평양 산음동 미사일 공장, 함남 신포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잠수함 기지 등의 일부 시설물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핵·미사일 핵심 시설은 즉각적인 북한의 반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비(非)군사적 상징물이 우선으로 검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1968년 나포해 평양 보통강에 전리품으로 전시하고 있는 미 해군 푸에블로호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 B-1B 폭격기나 F-22·F-35B 스텔스 전투기 등에서 JDAM(합동직격탄) 등을 투하해 이 시설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이 스텔스기들은 북한의 레이더망을 뚫고 침투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군 소식통은 "코피 작전은 폭격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은밀히 들어가 폭격을 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김정은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정밀폭격 외에 EMP(전자기)탄, 마이크로웨이브탄 등으로 북한 미사일 전자회로를 망가뜨려 발사를 못 하게 하는 방안도 '코피 작전'의 일부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피 작전'이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려면 김정은이 확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복 공격에 나서지 못해야 한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미·중 간에 양해가 있다면 미국이 실제 '코피 작전'에 나설 수도 있다"며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않고 퇴로(退路)를 터주면 김정은이 보복 공격 없이 비핵화 대화에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측에 대한 반론도 많다.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은 31일(현지 시각) 디펜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김정은과 북한인들이 보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상당히 큰 도박"이라며 "더 스마트해지자"고 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도 "(코피 작전은) 적이 이성적일 것이란 전제로 짠 것인데, 김정은이 예측 불가능하고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 과연 긴장의 고조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사정포는 총 340여 문으로, 시간당 최대 1만5000여 발의 포탄을 우리 수도권에 퍼부을 수 있는 것으로 군 당국은 분석한다. 한국민뿐 아니라 한국 내 거주하고 있는 23만명 미국인이 직접 피해를 보게 된다. 또 백령도·연평도 등 서북도서와 DMZ(비무장지대) 등에 대한 포격 도발, 잠수함정 침투 어뢰 공격, 수도권 등에 대한 테러, 대규모 사이버 공격 등에 나설 수도 있다. 외교소식통은 "동맹국인 한국이 공격받는 것과, 한국 내 미국인이 피해를 보는 것 모두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재앙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 전체, 난연(難燃·Flame Resistant)전투복 지급
한편, 주한미군은 전체 병력 2만8500여명에게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難燃·Flame Resistant) 전투복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것은 북한과의 실질적인 무력 충돌에 대비한다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제재·압박의 무게중심이 경제제재와 첨단 전략무기를 동원한 엄포용 무력시위에서 대북 군사 옵션 사용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한미군 소식통은 1일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전장(戰場)에 투입하는 병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지급하는 난연 전투복을 주한미군이 입는다는 것은 한반도 상황을 전장과 다름없이 여기거나, 앞으로 유사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전략무기 등을 동원한 무력시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전쟁 대비태세”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난연 전투복 지급은 일반 전투복에 비해 적잖은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작금의 한반도 위기상황 탓에 비용 문제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 해병대 장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대응사격에 나서 북한의 도발을 격퇴했다.
당시 병사들의 방탄모와 전투복은 포격에 따른 화염에 그슬리거나 불타 눌어붙었다. 난연 소재가 아닌 탓이다. 전투는 대부분 화염 속에서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화염에 의한 화상 피해가 가장 크고 파편상이 그 다음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전장 지역에 파견하는 미군 장병에게 급조폭발물(IED)이나 적 포탄 사격에 대비하기 위해 난연 전투복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부 수색정찰대에는 노맥스·케블라 혼방 섬유로 제작된 방염(防炎) 전투복을 필수로 보급하고 있다. 국군은 비용 문제로 항공기 조종사에게만 난연 전투복을 지급한 상태다.
육군 관계자는 “지난해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올해부터 K-9 자주포 승무원에게 먼저 난연 전투복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는 시계(視界) 제로(0)인 상태다. 주한미군의 난연 전투복 지급 결정과 함께 미국이 대북 군사 옵션 사용을 검토하는 듯한 징후가 여러 차례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미군이 전쟁을 조용히 준비 중이라고 보도한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헬기를 동원한 병력 및 장비 급파 훈련이 실시됐다고 했다. 또 네바다주에서는 적지 침투를 가상한 낙하산 강하 훈련도 진행됐으며, 이번 달에는 병사 1000여명을 해외에 신속 파병할 때 필요한 동원센터 구축 훈련도 한다고 전했다.
특히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엔 더 많은 특수부대를 한반도에 급파하기로 했다며, 이는 이라크전쟁 파병 초기 단계와 유사한 형태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이 표면상으로는 병력 재배치로 보이지만 훈련 시점이나 범위를 고려하면 북한과의 물리적 충돌에 조용히 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달 16일 공군 전략폭격기 B-52 6대를 추가로 괌에 배치했다. 지난달 11일 괌 배치가 확인된 B-2 스텔스 폭격기 3대와 이미 괌에 배치된 초음속 폭격기 B-1B 랜서를 합치면 미국의 3대(大)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인근에 집결한 것이다.
스포츠닷컴 국제팀, 국방안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