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정연설, “대북 압박작전”, ‘빅터 차’ 주
한 미 대사 낙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이 아주 조만간(very soon)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의 압박작전을 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견지해 왔던 대북 압박과 제재를 결코 늦출 의도가 없다는 발언이다. 이어 “나는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었던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정권처럼 국민을 잔인하게 압제하는 독재정권은 없다”며 김정은 체제를 비난했다. 이날 그의 북한에 대한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비핵화와 인권 문제였다. 지난해 유엔 총회 연설처럼 ‘화염과 분노’ 같은 격한 용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트럼프의 메시지는 강경했다.
한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비난 톤이 조금 내려갔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남북 관계와는 무관하게 기존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트럼프는 “방어 측면에서 핵무기를 새롭게 정비하고 현대화해야 한다”며 “또 핵을 사용할 일이 없길 바라지만 침략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강하게, 더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보호무역주의도 재차 강조했다. 그의 연설 상당 부분은 경제 관련이었다.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나쁜 무역협정을 고치고 새로운 협정들을 협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강력한 우리 무역규정의 이행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FTA 재협상은 물론 관세·비관세장벽을 동원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강력한 대북정책을 재천명한 가운데 빅터 차(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막판에 낙마했다. 이미 한·미 간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까지 오간 상황이었다.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빅터 차 내정자의 지명 여부를 묻는 한 한국언론의 질문에 “그(빅터 차)는 더 이상 백악관의 (주한 대사) 후보자가 아님을 확인한다(I confirm he’s no longer the White House nominee)”고 답했다.
워싱턴의 외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내정자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는 등 특수 상황을 제외하곤 아그레망이 오간 뒤 인사가 철회된 경우는 거의 없다”며 “특히 주한 대사와 같은 주요 포스트가 뒤집힌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철회한 가장 큰 이유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꼽았다. WP는 “아그레망이 신청된 후인 지난해 말 빅터 차가 NSC팀과 비공식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타격’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반면 NSC는 북한 핵시설 또는 미사일기지만을 골라 폭격하는, 이른바 ‘코피(bloody nose) 전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지명철회 배경에 대북 선제공격을 둘러싼 이견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자 워싱턴에선 "후임으로 더한 강경파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며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30일(현지시간) 낙마 소식이 전해진 지 몇 시간 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안주와 양보는 단지 침략과 도발을 불러들일 뿐"이라고 대북 강경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이러한 관측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WP)는 31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국정연설에서 평소의 위협적 레토릭(수사)을 쓰진 않았지만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며 "더욱이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입장차로 차 전 내정자가 지명 철회됐다는 사실은 대북 공격에 준비돼 있지 않은 인사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주한 미 대사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아그레망(임명동의) 절차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지명이 철회된 이례적인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공격을 얼마나 심각하게 검토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한미 간 군사적 협력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한국이 피하고 싶어하는 전쟁을 위협하는 미국의 전략은 한미 간 균열을 시도하려는 북한의 이간질 전략이 먹혀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WP는 분석했다. WP는 "갑작스러운 차 전 내정자의 지명철회는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과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 동의 없이 군사옵션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를 한국 정부 내에 증폭시킬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외교 해법 언급을 하지 않은 것 자체가 대북 전쟁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복수의 관계자들을 인용, "한국 정부는 아직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이번 결정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로,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차 전 내정자보다 더 매파인 인사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소식통도 "이번 낙마는 후임자 선정이라는 관점에서도 여러 가지를 걱정하게 한다"며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차 전 내정자도 안된다면 어떤 사람이 적임이라는 건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CNN 방송은 이번 낙마 사태와 관련, 내막에 정통한 익명한 인사를 인용해 "일명 '코피 전략'(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에 대응해 북한을 정밀 타격하는 것)을 둘러싼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간 힘겨루기 사이에서 차 전 내정자가 애꿎게 볼모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차원도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북미 간 핵 충돌 우려가 고조되는 이때 중차대한 주한 미 대사 자리를 비워두는 것은 여러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당혹스러운 조치"라며 "미국의 안보이익을 해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닷컴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