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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현장의 시민영웅들

posted Dec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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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현장의 시민영웅들

 

충북 제천시에서 아들과 함께 스카이작업차량 업체를 운영하는 이양섭(54)씨는 21일 오후 430분쯤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현장에 스카이를 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카이는 사다리 끝 부분에 버킷(bucket)이라 불리는 작업바구니가 있는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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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3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이씨는 화재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워 오르는 걸 보고 한 눈에 대형 화재임을 직감했다. 현장 부근에 사는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여러 명이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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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센터에서 21일 일어난 대형화재 현장에 스카이를 직접 몰고 와 시민을 구한 이양섭(오른쪽)·기현씨 부자.

 

즉시 이날 간판 설치 작업을 위해 스카이를 몰고 간 아들 기현(28)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 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5시다, 게다가 이동 거리를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530분은 되어야 화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급한 맘에 다짜고짜 작업 언제 끝나냐고 기현씨에게 물었더니 뜻밖에도 오늘 작업이 일찍 끝나서 (귀가하려고) 막 출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22일 기자들에게 아들이 평소엔 없던 조기퇴근을 했다는 말이 생명을 살리라는 계시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당초 예측보다 30분 이른 5시쯤 현장에서 합류한 이씨 부자는 버킷을 화재현장 8층 외벽 쪽에 붙여 베란다에 대피해 있던 3명을 구조했다. 이양섭씨는 시커먼 연기가 너무 짙고 넓게 퍼져 사람들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간신히 버킷을 댔다고 했다. 기현씨는 연기 탓에 아버지가 (버킷을) 올린 지 1분 정도 지나 다시 내리는 과정에서야 3명이 구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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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현장에서 시민 10여명을 비상계단으로 대피시킨

남성 사우나 이발사 김종수씨

 

건물 안에서는 3층 남성 사우나 이발소에서 근무하는 김종수(64)씨의 활약도 빛났다.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는 그는 화재가 건물 내부로 급속히 번지기 시작한 4시쯤 3층에 있던 손님 10여명을 비상계단으로 대피하도록 유도했다. 이날 제천서울병원 병실에서 그는 입구 쪽 계단에서 불길이 올라오는 걸 확인하고 비상계단으로 대피해야 할 거라 판단했다“(비상계단을) 못 찾고 헤매는 손님이 있을까 봐 5분 정도 대피 유도를 하다 연기를 마셨다고 했다.


난리통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던 손님에겐 야단을 쳐가며 비상구를 안내했단다. 그는 수 많은 사람을 구하고도 건물에 자주 오가던 분들이 숨졌다니 생전 모습들이 눈에 선해 잠이 안 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외에도 2층 계단 쪽에서 우왕좌왕 당황해 하던 여성 여러 명의 창문 대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이상화(71)씨와 중학생 손자 재혁(15), 사고 직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교통을 통제해 경찰차의 빠른 접근을 도왔다는 지찬규(56)씨 활약도 컸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건물 소유주, 시설직원들은 모두 무사히 탈출

 

어쩌면 그리도 세월호 같을까?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건물 소유주를 비롯한 시설 직원들은 모두 무사히 탈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황한 손님들이 제때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도한 직원도 있었지만 일부는 홀로 건물을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22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1일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29명은 모두 사우나와 헬스장 등의 손님이었다. 화재 발생 당시 스포츠센터 안에는 건물 소유주 이모(53)씨와 직원 7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가 소방당국에 진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그는 1층 주차장에서 불이 나자 홀로 소화전을 들고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거세진 불길에 결국 진화를 포기하고 8층까지 올라가며 대피하라고 소리친 뒤 다시 내려오다 검은 연기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7층 발코니로 대피했다. 이후 그는 헬스장 직원 등과 구조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씨는 그러나 1층 발화 지점과 가까워 피해가 가장 컸던 2층 여성 사우나 이용객에는 화재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알몸의 여성들이 있을 것을 우려해 문밖에서 대비하라는 소리만 질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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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안내 데스크에 있던 여성 직원 한 명은 불이 나자 서둘러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층 여성 목욕탕에서 손님들과 함께 있던 세신사 1명 역시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건물 구조를 잘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화재가 난 사실을 제때 알 수 없었던 2층 여성 목욕탕에 있던 20명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다른 층에 있던 일부 직원들도 이씨가 경매를 통해 건물을 인수한 뒤 지난 10월 영업을 재개하며 새로 채용돼 건물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대피를 돕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성 사우나가 있는 3층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이곳에서 오랜 기간 일한 이발사 김종수(64)씨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재 비상벨이 울리고 창밖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자 함께 있던 손님 10여명을 안전하게 유도,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했다. 김씨는 혹시 대피를 못 한 손님이 있을까 봐 3층에서 5분가량 더 머물다 연기를 흡입, 건물을 빠져나온 뒤 병원 신세를 졌다.

 

문 대통령, 유가족들 위로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전날 충북 제천 화소동 스포츠센터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숨진 피해자들의 가족을 만나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날 공식 일정이 없었던 문 대통령은 오전 현안점검회의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로부터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크다는 보고를 받고 오후에 제천을 들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제천서울병원으로 향해 현장에 있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시종 충북지사, 이근규 제천시장 등과 함께 유가족들을 직접 만났다. 문 대통령이 빈소에 도착해 손을 잡고 등을 다독이면서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용접할 때 일당 10만원짜리 안전사만 뒀어도 이런 사고는 안 났을 것이다'라는 한 유족의 말에 "안전 관리하는 사람만 있었어도 됐다는 말이죠"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을 만난 문 대통령은 그의 손을 잡고는 "황망한 일이 벌어졌다"면서 "기운 내십시오"라고 말했다. 한 유족으로부터 '(사망한) 언니가 평창올림픽이 잘 돼야 대통령도 잘 된다고 한 열혈 지지자였다'는 말을 듣자 문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도착한 것을 안 유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일어나실 필요 없습니다. 앉아계십시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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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사연이 없게 힘써달라' 등의 요구사항을 들은 문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문 대통령의 방문에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던 일부 유족은 고성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한 여성은 문 대통령을 붙잡고 "사람이 죽었습니다"라며 오열했고 다른 유가족은 "수사 어떻게 되어가나요, 결과 좀 알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다른 유가족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사람이고 뭐고 없었다""화재가 났으면 구조를 해줘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제천서울병원을 떠나 다른 희생자들이 안치된 세 곳의 장례식장을 더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했다.

 

제천서울병원 방문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직접 사고현장에 들르기도 했다. 민방위복과 등산화를 착용한 문 대통령은 오후 2시께 사고현장 근처에 도착해 유리 파편이 널린 길을 걸어서 화재가 났던 곳으로 향했다. 문 대통령은 이상민 제천시 소방서장 겸 현장 통제반장으로부터 사고현황을 보고받았다. 보고를 들은 문 대통령은 건물 정문 방향으로 향해 전소된 차량들이 있는 1층 내부에서 작업 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이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건물 맞은편 공터에 제천소방서 긴급구조 통제단과 현장지휘소 등이 있는 텐트로 이동해 소방관들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악수하면서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과 밥차 봉사대가 있는 곳도 들러서 "고생하십니다"라고 인사했다. 문 대통령은 현장 관계자에게 "부상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돌아가신 분들 장례 절차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라고 물으면서 각별히 사고 수습상황을 챙겼다.


스포츠닷컴 사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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