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전병헌 수석 사건’ 조직폭력배 핵심역할 확인
전병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59)의 측근들이 롯데홈쇼핑의 한국e스포츠협회 후원금을 빼돌리는 데 조직폭력배 배모 씨가 핵심 역할을 한 사실이 12일 확인됐다. 배 씨는 폭력조직 ‘구로구 식구파’ 소속으로 전 수석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에서 활동했다. 검찰은 배 씨가 전 수석의 측근 윤모 씨를 도와 ‘돈세탁’을 한 정황이 담긴 휴대전화 녹취파일을 확보하고 돈의 흐름을 쫓고 있다. 지난해 9월 검찰은 롯데홈쇼핑이 2015년 초 방송 재승인 심사를 받을 때 정·관계 로비를 한 의혹을 수사하다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57)으로부터 ‘전병헌 500’이라고 적힌 메모를 압수했다.
또 강 전 사장이 재승인 심사 문제로 당시 국회의원이던 전 수석과 전 수석의 비서관 윤 씨를 만났다는 내용이 담긴 롯데그룹 정책본부 보고서도 입수했다. 전 수석은 홈쇼핑 채널 재승인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었다. 당시 수사에서는 롯데홈쇼핑이 구입한 기프트카드를 전 수석 가족이 사용한 정황이 확인됐다. 하지만 기프트카드 사용 금액이 크지 않았던 데다 전 수석이 롯데 측에서 추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아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그 직후 국정 농단 사건이 본격화하면서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잠정 중단됐다.
전 수석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가 재개된 것은 올 1월 배 씨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이용일)에서 수사를 받으면서라고 한다. 검찰은 당시 도박 사건을 수사하다 배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검찰은 배 씨의 휴대전화를 살펴보다가 배 씨가 전 수석의 측근 윤 씨와 수상한 통화를 한 녹취파일을 발견했다. 녹취파일에는 배 씨가 평소 ‘동네(서울 동작구) 친구’로 알고 지내던 윤 씨에게 “‘돈세탁’한 현금 8000만 원을 차 안에서 전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배 씨의 휴대전화 녹취파일은 전 수석이 명예회장을 맡고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롯데홈쇼핑이 낸 후원금 3억 원의 비밀을 푸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됐다. 배 씨는 e스포츠협회에서 1억1000만 원을 빼돌려 돈세탁을 한 뒤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뺀 8000만 원을 윤 씨에게 돌려줬다. 돈세탁에는 배 씨와 관련된 업체 두 곳이 동원됐다. 롯데홈쇼핑이 e스포츠협회에 낸 후원금이 배 씨를 거쳐 다시 전 수석의 측근에게 흘러간 윤곽이 확인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배 씨와 윤 씨, 전 수석의 또 다른 측근 김모 씨를 업무상 횡령과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10일 구속했다. 또 배 씨를 상대로 자금세탁을 맡은 경위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배 씨가 향후 전 수석 사건의 실마리를 풀 ‘키 맨’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수사팀은 배 씨와 전 수석의 측근 윤 씨의 관계 등으로 볼 때 e스포츠협회 자금 횡령 건 외에도 배 씨가 전 수석 측 정치자금 관리에 추가로 도움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 수석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어떤 불법에도 관여한 바가 없다”며 측근 윤 씨 등과 선을 긋고 있다.
검찰, “전병헌 자녀 기프트카드 뇌물 의심”
한편, 전병헌(59) 청와대 정무수석의 ‘제3자뇌물’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전 수석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진술 등을 대부분 확보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검찰은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15일 전후 전 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전 수석의 제3자 뇌물제공 혐의는 이미 수수 관계에 있는 핵심 관련자들의 진술과 객관적인 증거 자료 등이 확보된 상태”라며 “본인이 문제의 돈을 직접 수수한 것은 아니지만 부정한 청탁을 받고 미르·케이재단 설립처럼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국이스포츠협회에 그 돈이 귀속되도록 요구한 것으로 제3자 뇌물제공이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2015년 당시 전 수석을 만나 한국이스포츠협회 후원을 요구받았다는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과 이 과정을 잘 아는 당시 전 수석의 비서관 윤씨(구속)의 진술을 받았다고 한다. 또 전 수석의 요구에 따라 3억원을 마련해 협회 쪽에 건넨 사실을 보여주는 롯데홈쇼핑 내부 기안·결재서류와 자금 흐름 등을 확인한 상태다. 검찰은 또 협회에 건네진 3억원과 별도로 롯데가 전 수석에게 건넨 것으로 보이는 ‘기프트 카드’도 뇌물로 보고, 전 수석을 소환해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앞서 자금추적 과정에서 롯데가 발행한 수백만원 어치 기프트 카드를 전 수석의 자녀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주변에서 사용한 뒤 포인트 적립까지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롯데와 이 자녀가 직접 연결될 수 없는 관계인 만큼 전 수석이 이 카드를 받아 자녀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전 수석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전 수석의 요구가 전형적인 제3자뇌물제공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의 기프트 카드도 뇌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주 구속한 전 비서관 윤씨 등은 ‘과정’ 확인 차원에서 한 것”이라며 “현직 대통령의 참모인데, 보좌진을 조사해 봐야 관련 여부를 알 수 있는 수준이라면 애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3자뇌물제공 사건으로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됐던 ‘미르·케이(K)스포츠’도 있지만,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에스케이(SK)텔레콤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원을 시주하도록 이 전 위원장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제3자뇌물제공은 직무와의 관련성이 있으면 인정되는 것”이라며 “어떤 금품이 공무원의 직무행위와 관련해 교부된 것이라면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주에 전 수석을 소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