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훈 검사 투신자살, 검찰내부 들끓어
국정원의 사법 방해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의 유족에게 수사팀 관계자가 애도의 뜻을 표현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 관계자는 7일 "(고인에게) 다시 한번 큰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안타까움과 침통함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고인을 미리 체포해서 신병을 확보하거나 비공개로 조사할 수도 있지 않았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사 당시에는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라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가 있어서 예상할 수 있었다면 아마 다른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故 변창훈 검사
압수수색 과정에 대한 변 검사 유족의 반감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의해서 한 것"이라면서도 "압수수색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라며 말을 흐렸다. 이 관계자는 끝으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라며 철저하게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팀은 변 검사 사망 이후 고인의 '비극'을 방지하기 못한 것에 크게 상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무일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는 전날 변 검사 빈소를 찾아 조문한 바 있다. 문 총장은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며 "고인과 가족분께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식장 안에서 문 총장은 붉어진 얼굴로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대동한 대검찰청 간부들도 고개를 숙인 채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변 검사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현직 지청장은 문 총장 바로 뒤에서 술기운에 못 이겨 고성을 지르는 등 슬퍼하는 심정을 그대로 뱉어냈다고 한다. 유족들은 검찰·언론에 반감을 표하고 있는 상태다. 유족은 전날 조문하러 온 검찰 관계자들을 향해 "억울하다"라고 외치며 애통함과 서운함을 표했다.
같은 조직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들로 인해 변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는 생각에서 온 원망이었다. 유족들은 검찰에서 온 화환도 거절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의 조문도 받지 않겠다는 게 유족 입장으로 알려졌다. 빈소를 찾은 기자들을 향해서도 "누가 이곳에 오라고 했느냐"라며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유족을 향해 조문객들 모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검찰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당초 내세웠던 검찰개혁 공약과 달리 오히려 검찰을 정치적 사건의 한복판으로 등 떠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분위기다. 7일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수사를 주도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7·23기) 등 수사팀에 대한 문책론이 나왔다. 국정원 소속 정치호 변호사(42·38기)가 지난달 30일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고 자살한 데 이어 변 검사마저 목숨을 버린 데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선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수사팀에 대한 인사 조치를 법무부에 건의하거나 윤 지검장 스스로 거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수사팀 외에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줄줄이 언론에 새나가며 ‘망신 주기’ 수사를 했고 그 결과 수사 대상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과정이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식으로 창피하게 수사할 거면 차라리 경찰에 수사권을 주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인사가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8월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2013년 ‘댓글 사건’ 수사팀이었던 검사들은 진재선 검사(43·30기)가 공안2부장, 김성훈 검사가 공공형사수사부장(42·30기)으로 발령 나며 사실상 공안 라인을 점령했다. 댓글 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한 라인업을 구축한 것이다. 이들을 지휘하는 2차장에도 공안통 대신 윤 지검장과 가까운 특수통인 박찬호 차장검사(51·26기)를 앉혔다. 게다가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댓글 수사팀 출신인 박형철 대통령반부패비서관(49·25기)과 친노 정치인인 백원우 민정비서관(51)이 점령했다. 적폐 청산 수사 과정에서 야당 역할을 하며 균형추가 될 인사가 없는 실정이다.
한편, 국정원 수사팀은 7일 “해오던 대로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변 검사의 자살로 인해 수사 흐름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는 자세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것은 변 검사의 진술로써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날 변 검사의 빈소에서 유족들은 “검사들 조문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두고보자”며 오열했다. 변 검사의 모친은 “사람 죽여 놓고 축하한다고 꽃을 보내는 거냐”며 국정원장 명의의 화환을 부쉈다. 또 조문을 온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유족들은 “무슨 적폐 청산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박 장관은 조문을 마친 뒤 곧바로 빈소를 빠져 나갔다. 경찰은 변 검사의 죽음을 투신자살로 최종 결론지었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