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300㎜폭우, 사망 4명 실종 2명 이재민 517명, 피해 눈덩이
지난 16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충북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물난리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번 비로 전국에서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으며, 517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또 주택 686동, 농경지 4천962㏊가 침수됐다. 피해는 폭우가 집중된 충남북과 강원에 집중됐다. 특히 시간당 최고 90㎜가 넘는 '물 폭탄'을 맞은 청주는 도심 속 하천이 범람, 인근지역 피해가 집중되는 등 도심 대부분이 타격을 입었다.
17일 청주기상지청에 따르면 지난 15∼16일 청주에는 302.2㎜의 폭우가 쏟아졌다. 우암산에는 274㎜, 상당구에는 260.5㎜의 강우량이 기록됐다. 증평 239㎜, 괴산 183㎜, 진천 177.5㎜, 음성 114㎜, 제천 86㎜, 보은 83㎜ 등 도내 다른 시·도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이번 비로 도내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사는 80대 여성과 미원면 옥화리에 사는 이모(58·여)씨가 토사에 매몰돼 숨졌다.
지난 16일 오전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는 다리를 건너던 A(83)와 B(75)씨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이날 오전 8시께 2명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보은군 산외면 동화리에서는 논에서 물꼬를 손보던 김모(79)씨가 사라져 경찰과 소방대원이 수색 중이다. 전날 오전 8시30분께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중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카니발 승합차가 도로 옆 2m 비탈로 굴러 떨어져 운전자 C(36)와 동승자 등 2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청주와 보은 등에서 이재민도 315명이나 발생했다.
괴산댐의 수위가 한때 최고수위(137.65m)에 육박하는 137.35m에 달하면서 홍수 경보가 발령돼 주민 54명이 칠성중과 주민센터로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충북선 열차도 폭우에 선로가 침수되면서 전날 오전 10시 30분께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운행이 중단됐다. 도심의 소하천 13곳이 범람해 그 주변을 중심으로 침수피해가 컸다.
청주 상당구 용암동의 아파트 단지 앞 소하천이 범람, 도로로 물이 넘쳤고, 청주 명암동 명암저수지도 위험 수위에 육박한 가운데 지대가 낮은 인접 명암타워 1층이 한때 침수됐다. 복대동 등 저지대를 중심으로 청주 시내 곳곳의 주택과 상가, 도로 등 침수지역은 여전히 물이 빠지지 않아 침수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비로 저지대 주택 침수가 잇따랐는데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 건수는 청주 211건, 증평 22건, 음성 6건, 괴산·진천 각 2건, 충주 1건 등 총 244건이다. 청주시 복대·비하동에 있는 석남천 범람으로 인근 상수도관이 파열되면서 가경·복대·강서동 일대 6만1천여 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농가들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이번 폭우로 6개 시·군 농경지 2천989㏊가 물과 토사에 묻혔다. 침수 2천782㏊, 매몰 102㏊, 유실 105㏊이다. 14개 축사의 닭 3만7천마리가 폐사하는 등 축사 45동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충북도와 각 시·군은 응급 복구에 나섰으며 피해조사지원단을 꾸려 상세한 피해 내용을 조사 중이다.
한편 지난 14∼16일 충북·남, 강원, 경북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사망 4명(청주 2명·괴산 2명), 실종 2명(상주 1명·보은 1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일시 대피했다가 귀가한 이재민은 충북 315명, 충남 142명, 강원 60명 등 517명이다. 17일 오전 국민안전처 발표에 따르면 전국 침수 피해 현황은 이날 오전 6시 현재 주택 686동, 공장·상가 16동, 학교 14개교, 차량 52대, 농경지 4천962㏊ 등이다.
청주 수해지역 쓰레기 산더미
충청도 일부 지역이 물폭탄을 맞아 피해가 크다. 17일 오후 청주는 여전히 먹구름이다. 전날 시간당 90㎜가 넘는 최악의 폭우가 쏟아졌다. 집중호우로 석남천이 범람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청주시 흥덕구 복대·비하동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복구작업에 속도를 냈다. 비가 그친 전날 오후부터 본격적인 복구작업이 시작돼 건물과 거리에 쌓였던 진흙은 상당 부분 제거된 상태였다. 배수작업도 원활해 예상보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삶의 터전과 보금자리를 한순간에 잃은 주민들의 표정은 좀처럼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진흙 뒤에 감춰져 있던 피해 흔적은 처참했다. 피해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거리로 내놓은 물에 젖은 옷가지와 가재도구 등은 사용할 수 있어 보이는 게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진흙 범벅이 된 가재도구를 연신 물로 씻어내는 한 주민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다. 주민들은 당장의 청소는 둘째치고,이번 비로 손해를 본 생각을 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입을 모았다.비하동에서 담배진열대 대리점을 운영하는 황모(43)씨는 전날 내린 폭우로 1층 창고가 모두 물에 잠겼다. 황씨는 "창고 안에 있던 담배진열대 10여개와 홍보물 등 4천만원 상당의 물품을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할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복대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모(45)씨는 전날부터 가족과 친지 등 7명이 모두 달려들어 가게 안 청소를 하고 있지만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한씨는 "식탁과 의자 등 집기류가 모두 물에 불어 못쓰게 됐다"며 "적어도 일주일은 장사를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한씨의 옆 가게도 사정이 비슷했다. 이곳에서 가정식 백반집을 운영한 하모(72)씨는 "얼마 전 이사와 도배고, 가구고 모두 새로 장만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하씨와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은 재해보험을 들지 않은 경우가 많아 금전적 손해가 더 큰 것으로 전해졌다.
상당구 내덕동 일대에서도 복구작업을 하는 주민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과거부터 상습 침수구역이었던 내덕동에는 청주시가 수난 방지를 위해 우수저류시설을 설치했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내덕동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이모씨는 "예전에도 비가 많이 오면 가게 문턱까지 물이 차곤 했지만 이번 비는 가게 안 방안까지 흙탕물이 들이닥쳤다"며 "내 평생 이런 수해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인 침수 피해 물품을 바라보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걱정이 있다.
대부분 재사용이 불가능한 쓰레기인데 제때 수거가 되지 않으면 악취는 물론 벌레가 들끌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씨는 "가뜩이나 물이 들어찼다 빠진 곳이라 어수선한데 악취에 벌레까지 날아다니면 가게에 손님들이 찾아오겠느냐"며 "시청에서 쓰레기 수거만큼은 서둘러 달라"고 당부했다. 청주에는 지난 15∼16일 이틀간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1995년 8월 이후 22년 만의 홍수였다.
폭우속 '사투' 도로보수원 사망
한편, 지난 16일 최고 300㎜의 폭우가 쏟아진 청주에서 피해 복구 작업을 하던 50대 도로보수원이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도로보수원 박모(50)씨는 지난 16일 오후 8시 20분께 청주시 오창읍의 오창사거리에서 폭우로 파손된 도로 보수작업을 마치고, 작업 차량에서 쉬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직원들과 인근에 있던 경찰관 등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으로 옮겼으나 심근경색으로 끝내 숨졌다. 박씨는 이날 오전 6시 비상소집령이 내려져 출근했다.
청주에 시간당 90㎜의 폭우가 쏟아지던 오전 7시 20분께 청주시 내수읍 묵방지하차도가 침수됐다는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해 양수작업을 했다. 작업이 늦어지면서 점심도 먹지 못 한 채 지하차도의 물을 빼느라 녹초가 된 상태에서 오후 5시를 넘어 도로사업소로 복귀해 간신히 요기를 했다. 그는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또다시 오창으로 출동해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그는 2001년부터 도로관리사업소 도로보수원으로 근무하며 차선도색 등의 일했다. 그러나 그는 무기계약직인 탓에 공무원법에 따른 공상처리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관리사업소는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가입한 단체보험을 통한 산재보험과 사망위로금을 신청할 예정이다. 유족으로 여중생인 딸과 어머니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의 동료 조모씨는 "어제 워낙 많은 비가 내리고, 피해지역도 많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작업을 했다"며 "박씨가 오창에서 작업을 마친 뒤 차량 의자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했다. 조씨는 "박씨는 평소 성실하게 일을 해 동료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폭우로 보수해야 할 도로가 너무 많아 숨진 동료의 조문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청주 폭우피해는 人災”-무예방·무대책·무대응“
“이번 피해에는 인재(人災)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어요.” 17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주민들은 저마다 불만을 토해냈다. 물에 젖은 물품들을 집 밖으로 꺼내놓으며 주민들은 피해가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안회경씨(64·여)는 “30년 넘게 이 곳에 살면서 이렇게까지 피해를 입은 것은 처음”이라며 “20여년 전 큰 비가 왔을 때도 발목 정도까지 물이 찼지만, 금방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 반대에도 우수저류시설을 만들더니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진 것 같다”며 “장마철 전 시에서 하수도 청소를 했는데 올해에는 그것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주민 역시 “우수저류시설이 없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피해는 없었다”며 “제구실을 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시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주민 불만도 잇따랐다. 이명우씨(47)는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컸지만, 누가 와서 보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며 “구청 공무원이 차를 타고 한 번 둘러보고 갔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지만, 돌리기만 하고 그러다보니 끊겼다”고 덧붙였다. 전병호씨(52)는 “재난 매뉴얼이 전혀 없다”며 “물이 들어차는데 대피하라는 말도 없었고 피해 현황 조사도 없어 지금 피해 주민들을 직접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재민들에게 처음 지급된 것이 수세미와 세재였다”며 “이재민들의 항의를 받고서야 물과 음식, 이불 등이 지급됐고 그 마저도 일일이 요구한 뒤에야 받았다”고 원망 섞인 말을 쏟아냈다. 최종근씨(60)는 “물이 들어차는데 대피하라는 말도, 어디로 가야한다는 말도 없었다”며 “지금 주위를 봐도 공무원은 보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주에는 지난 16일 290㎜의 비가 내리면서 침수와 인명 등 피해가 잇따랐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