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창당100일 만에 두동강, 13명 제살길 찾아 U턴
보수 후보 단일화를 놓고 내홍을 겪던 바른정당이 창당 100일을 앞두고 결국 두 동강이 났다. ‘진짜 보수’를 실현하겠다며 창당에 동참했던 의원 33명 가운데 2일까지 총 13명이 ‘보수 대동단결’을 명분으로 탈당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새로운 보수’를 위한 분당 실험은 사실상 좌초됐다.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국민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홍문표 의원은 “국민들은 친북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가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현 한국당)에서 탈당하면서 ‘친박(친박근혜) 인적 청산’을 강하게 주장했던 장제원 의원은 “보수 지지층에서는 일단 과거(친박계)의 잘잘못에 얽매이지 말고 보수가 분열하지 말라는 요구가 어마어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다고 집단 탈당한 뒤 경쟁 정당으로 몰려간 전례는 없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의원 16명이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압력을 넣겠다며 탈당한 적은 있다.
탈당선언하는 13명의 바른정당 의원들
하지만 보수 후보의 지지율이 1위 후보에게 20%포인트가량 밀리는 현재 상황에서 ‘보수 재집권을 위해 분열해선 안 된다’는 명분은 약하다는 비판이 많다. 결국 바른정당이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가치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모인 ‘이익단체’였을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탈당파 의원은 “바른정당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위한 ‘플랫폼 정당’으로 여긴 게 사실”이라며 “반 전 총장의 중도 하차 이후 급속히 원심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새 보수’를 내걸었지만 바른정당의 토대 자체가 취약했고, 대선 뒤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는 뜻이다.
이렇다 보니 대선을 불과 1주일 앞둔 중차대한 상황임에도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자리보존을 위해 집단 탈당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원들은 당장 내년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지역 조직의 근간인 기초·광역의원과 단체장이 흔들리면 3년 뒤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다. 장 의원은 “지방의원들이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지방 조직이 와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경우 바른정당이 보수 분열 책임론을 뒤집어쓸 것에 부담을 느껴 한국당에 합류했다는 해석도 있다.
황영철, 비난여론 일자 탈당 번복, 교섭단체 유지
한편, 바른정당 탈당파들이 ‘보수 대동단결’을 외쳤지만 자유 한국당에선 친박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이에 대해 홍준표 후보는 “이제 친박이 없어졌는데 무슨 감정을 갖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지게 작대기도 필요한 때가 대선”이라며 선을 그었다. 일단 탈당파들은 시·도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바로 홍 후보 지지 유세에 투입될 계획이다. 그러나 복당 절차는 대선 이후에나 이뤄질 예정이라 이들이 자칫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려 하는 '복당파' 의원들이 대선까지는 무소속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철우 자유 한국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3일 바른정당 소속 의원 12명(권성동, 김성태, 김재경,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장제원, 홍문표, 홍일표)이 자유 한국당 입당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다만, 자유 한국당 내부에서 일부 이견 등이 있기에 이들의 복당 여부는 대선 전까지는 결정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복당파' 의원들의 신분은 당분간 무소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들보다 나흘 먼저 바른정당을 탈당했던 이은재 의원 경우에는 한국당 입당이 허용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철우 본부장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입당 신청을 하면 절차를 밟기 때문에 대선까지는 그 결정이 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시·도당 입당 심사와 중앙당 의결 등의 절차 진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촉박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들의 자유 한국당 입당 여부가 바로 이뤄지지 않는 속내는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의 강한 반발 때문이라는 것이 정치권 분석이다.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은 지난 2일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복당 입장을 밝히자마자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내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권성동, 김성태, 황영철, 장제원 의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바른정당 탈당을 결의했던 일부 의원들 가운데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황영철 의원 경우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자청해 바른정당 탈당을 철회하고 잔류를 선언했다.
황 의원은 "바른정당 탈당의 입장을 철회하고자 한다. 생각을 깊이 있게 정리하지 못한 채 발표에 동참한 저의 부족함을 깊이 자책한다"며 "바른정당에 잔류하며 지난 번 약속한 대로 친박 패권주의 극복하는 보수 재건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황 의원의 잔류 선언에 따라 바른정당은 전날까지 원내의석수가 19석으로 줄었던 것이 다시 20석을 회복하면서 원내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