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머리 못깎은 검찰”, 우병우 영장기각 후폭풍
12일 검찰 조직은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영장 기각은 검찰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결국 검찰이 국정농단을 도운 셈입니다.” 평소 ‘소신 발언’으로 유명한 임은정(43) 의정부지검 검사가 이날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국정농단의 조력자인 우리 검찰’이라는 글 때문이다. 임 검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뇌부에 원죄가 있기 때문에 (영장 기각에 대해) 수뇌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검찰의 소극적인 수사를 비판했다. 이어 “검찰이 특별검사를 자처해 제대로 수사를 다시 해야 한다”며 진상 규명의 의지를 나타냈다.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날 새벽 또다시 기각되면서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의지나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우 전 수석) 영장 기각이 돼 안타깝지만 (수사에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며 “필요한 사람들은 다 체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는 법원이 기각 사유로 “혐의 내용에 관하여 범죄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검찰의 소명 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영장 기각은 처음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8월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 전 수석 수사 전담을 위해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출범했지만 시종일관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는 정황이 엿보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우 전 수석의 자택과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이지 않아 결과적으로 우 전 수석이 증거를 인멸하고 대응 논리를 구축할 시간을 벌어 줬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1월 6일에야 우 전 수석을 소환조사한 날 조사를 받을 그가 오히려 검사들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황제 수사’ 논란을 불렀다.
나흘 뒤 검찰은 부랴부랴 우 전 수석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결정적 증거 없이 ‘깡통 휴대전화’만 발견했다. 김남국 변호사(법률사무소 명헌)는 “당시 우 전 수석이 자주 쓰던 휴대전화나 개인 컴퓨터만이라도 빨리 확보했더라면 결과가 더 좋았을 것”이라면서 “초기 수사가 제대로 안 된 탓에 진술에 주로 의존하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 전 수석의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이 입증 자체가 쉽지 않은 죄명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우 전 수석의 범죄 혐의는 ‘그가 부당한 지시를 계속 내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은밀하게 이뤄진 탓에 소명이 쉽지 않다”며 “반면 우 전 수석 입장에서는 ‘사익이 아닌 국익을 위해 한 일’이라는 식으로 방어하기가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 측 변호인단이 선전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변호인들 모두 영장전담 등 판사 출신으로 지난해 퇴임해 ‘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검찰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부실수사론'을 정면 반박했다. 검찰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실세 수석'에 대한 초기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특검 수사도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검찰의 거듭된 수사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느냐는 비판은 향후 검찰 개혁 논의와 맞물려 적지 않은 후폭풍도 예상되고 있다. 다만 직권남용·직무유기죄가 원래 무리하게 적용할 경우 공직사회의 책임 있는 권한행사를 제약하고 복지부동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어 법조문도 이를 고려해 제정됐고 법리 적용·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대표적 범죄인 점, 법원도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힌 점 등에서 이번 우병우 영장기각 사태는 '구속 = 수사 성공' 도식에 매몰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12일 오후 기자들에게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검찰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사가 부실했다고 생각 안 한다"고 맞받았다. 그는 이어 "영장이 기각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건 법원 판단이고, 저희는 최선을 다했다. 그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지난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때에 이어 두 번째다. 영장이 또 기각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검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애초 지난해 윤갑근 고검장을 팀장으로 한 특별수사팀 당시부터 수사가 미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특검에서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뒤 보강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우 전 수석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검사를 포함해 50여명을 참고인 조사했고 지난달 말에는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해 임의 제출 방식으로 필요한 자료를 전달받았다. 특수본 관계자는 "작년 검찰 특별수사팀에서 수사한 개인 비리 관련 사건과 특검에서 들여다본 사건 등을 포함해 범죄 혐의가 있다는 부분을 다 모아서 구속영장에 반영했다"며 법원의 판단에 아쉬움을 표했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이 자신의 개인 비리 의혹이 불거진 작년 8월 이후 검찰·법무부 수뇌부와 여러 차례 통화한 것과 관련해 수사 무마 등을 위한 외압 행사가 있었는지도 살펴봤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특수본 관계자는 "충분히 조사했지만,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 통화내역 자체가 범죄를 추정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의혹 제기된 부분 필요한 조사는 다 했다"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지난 6일 우 전 수석을 피의자로 소환했을 때 관련 사안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 우 전 수석이 검찰 개별 수사팀에 압력을 넣은 단서나 정황은 없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구속영장 청구 사유서에도 관련 내용은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과 불구속 기소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영장 재청구는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도 많다. 특수본 관계자는 영장 재청구 여부에 대해 "향후 수사 상황과 수사팀 의견 등을 두루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우 전 수석 부실수사 논란이 그 배경에 관계없이 대선 이후 새 정부의 검찰 개혁 문제와 맞물려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조직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도 이와 맞닿아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부실수사 논란이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 이슈로 논의가 확산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부실수사 논란은 작년 '황제 조사' 등의 비판을 부른 검찰 특별수사팀 수사 때부터 쌓인 불신이 근저에 깔려 있다"며 "국정농단 수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해 명예회복을 벼른 검찰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한 시민은 “중이 제머리는 못깎았다.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인가? 정의검찰 사법정의는 사라지는가?” 라며 비아냥 거렸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