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승복’ 말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
대통령직 파면 사흘째인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복귀하면서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 진실이 무슨 진실인지 참으로 의문스럽고 반드시 미진한 수사도 확실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헌재 재판 과정과 검찰,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과정에서도 정해진 법 절차를 거부했던 박 전 대통령은 파면되고 사저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헌법 준수의 의무’를 저버렸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사저로 함께 들어가 조율을 거친 뒤 사저 앞에서 대독 형식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주요 메시지 내용은 이미 청와대 관저를 떠나기 전 대체로 정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 의원은 입장 전달 후 “지금 말씀드린 게 어려운 표현이 아니다.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입장을 밝힐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짧게 “없다”고 답했다.
이날 발표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헌재 선고가 ‘진실’에 입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된다. 또한 ‘시간이 걸리더라도’라는 조건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이 가까운 시일 내 입장을 바꿔 헌재 선고에 승복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이날 입장 발표는 사과의 뜻을 담은 대국민 입장 표명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결집 유도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저 앞에서 자유한국당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조원진, 김진태, 박대출, 이우현 의원 등과도 환담을 나눴다. 이원종, 이병기, 허태열 등 전직 비서실장도 총출동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체로 웃는 낯이었지만 사저에 들어가기 전에는 잠시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김 의원은 “민 의원이 전한 대국민 메시지 외에는 사적인 내용이라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이 헌재 선고에 대한 불복 입장을 분명히 함에 따라 친박근혜계 의원 및 열성 지지층의 ‘불복 투쟁’이 거세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불복 투쟁은 추후 압수수색이나 대면조사 등 검찰 수사 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이 법적 투쟁 의지를 밝힘에 따라 검찰 입장에서도 엄정한 수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지난달 27일 탄핵심판 최후변론서에서 “어떤 상황이 오든 소중한 대한민국을 위해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입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이 관저를 떠나면서 청와대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직접 사저 복귀 의사를 한광옥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기 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직원 500여명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박 전 대통령은 직원들에게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인사했다. 일부 직원은 눈물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저에서는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과 윤전추 선임행정관 등 4명이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복귀하면서 청와대 참모들의 거취 문제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까지도 박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소개한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대한 개편도 이뤄질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검찰의 수사도 외면했고 자신이 국회에 말한 거취로 임명한 특검수사도 거부했으며 자신이 취임선서를 하면서 말했던 ‘헌법준수’의무를 지키지 않아 파면되면서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고 분노하게 했다. 도대체 박 전 대통령의 헌법해석은 오로지 자신과 그들만을 위해 법 위에 군림했던 것인지 정상이 아니었다.
정치권, "박 오만방자한 태도 소름돋는다" 비판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사실상 불복하는 입장을 보인 것과 관련해 정치권이 입을 모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관선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자신의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였다"며 "충격적이고 유감스럽다"고 비난했다. 윤 대변인은 "여전히 헌재의 탄핵 인용에 불복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충격적이고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국민과 헌법질서의 명령에 순응하고 존중하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도 과한 일인지 답답하다"고 밝혔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도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사저 복귀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박 전 대통령이 헌재 판결에 승복해 국민 통합에 기여할 것을 기대했지만 역시 허망한 기대였다"며 "'진실은 밝혀진다'고 운운하며 끝내 헌재 결정에 불복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논평했다. 장 대변인은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고 헌재 결정에는 모든 국민이 승복해야 법치국가 국민의 자격이 있다"며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해놓고도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박 전 대통령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도 "스스로의 입장 표명도 없이 대리인의 입을 통해 분열과 갈등의 여지를 남긴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조영희 바른정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추혜선 대변인도 "사저에 들어서면서도 스스로의 입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고, 타인을 통해 ‘언젠가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방자한 태도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파면을 당하고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만큼 검찰은 당장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진행해주기 바란다"며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결백을 위해서라도 모든 사법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