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협력업체 포함 1만명, 투자자들 막대한 손실
재계는 암울한 소식이다. 한진해운이 결국 파산했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실업자만 1만명 이상, 상장폐지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해도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에 이르기까지 경영패착과 국가기간산업을 대하는 정부·금융권의 오판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16일 한진해운에 파산선고를 내렸다. 법원은 한진해운의 회생보다 청산가치에 손을 들어줬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한진해운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조 창업주의 3남인 조수호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다. 2006년 조 회장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에 나섰을 당시만 해도 해운업은 호황기였다.
당시 최 회장은 경기 호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배를 사기보다 용선료를 내고 장기로 배를 빌리는데 주력했다. 당시 용선료 시세는 1만3000달러 수준이었는데 한진해운은 이보다 3~4배 수준인 3만~4만달러의 용선료를 내고 배를 빌렸다. 대부분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이었다. 이는 나중에 두고 두고 한진해운의 경영을 옥죄는 덫이 됐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이어진 해운업 불황에 한진해운은 크게 흔들렸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운임이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장기계약을 맺은 선주들에게 비싼 용선료를 꼬박꼬박 지급할 수밖에 없어 한진해운의 누적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1년부터는 용선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부채비율이 1445%까지 상승하는 등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한진해운의 IT서비스를 담당하는 싸이버로지텍, 제3자 물류를 담당하는 유수로직스틱스 등 중견 알짜 부문만 남기고 2014년 회사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조 회장은 2014년 회사를 소폭 흑자로 돌려놓았지만 초대형 컨테이너선를 앞세운 글로벌 선사들의 치킨게임 앞에 역부족이었다. 조 회장은 글로벌 동맹으로 무장한 초대형선사들의 저가 운임 경쟁에 맞서 한진해운에 1조7000억원을 쏟아붓는 등 분전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한진해운의 사정이 나빠진 데에는 정부 규제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IMF 이후 정부가 해운사들의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 제한하면서 우리 해운사들은 배를 사기보다는 빌려쓰는 용선을 늘릴 수밖에 처지였다.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정부는 해운산업 구조조정 대상으로 현대상선보다 규모가 크고 점유율이 높은 한진해운을 지목했다. 현대상선을 제1국적선사로 끌어올리면서 한진해운의 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기겠다는 계획이었다.
현대상선이 인수한 한진해운 자산은 스페인 알헤시라스터미널과 일본·대만 터미널 관리 자회사인 한진퍼시픽 뿐이다. 롱비치터미널 지분 상당수는 글로벌 2위 선사인 MSC에게 넘어갔다.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선박 대부분도 해외로 매각됐다. 결과적으로 한진해운이 퇴출되면서 국내 해운업계의 선박 운항 능력은 반토막 났다.
한진해운이 운영했던 90여척의 선박이 빠져 국내 컨테이너선은 현대상선(66척)과 SM상선(2척)이 보유한 68척만 남은 상황이다. 한진해운이 점유했던 노선의 화주 수요도 다른 글로벌 해외선사가 나눠 갖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 사태가 국내 해운사에 대한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지며 한진해운의 노선과 영업망을 인수한 현대상선, SM상선 역시 물량을 확보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국적선사로 등극한 현대상선은 세계최대 해운동맹인 2M에 정식가입하지 못하고 전략적 협력만을 맺은 상태다. 한진해운을 대신할 새로운 국적 선사도 운항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예상돼 항만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논리에 치우친 당국의 오판이 한진해운을 파산으로 내몬 만큼 이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 기간산업 지원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강력한 국적 선사 육성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도 그렇고 국민들은 열받는 일밖에 없는 것 같다.
스포츠닷컴 경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