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 박대통령 수사 가속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법정구속됐다. 이 부회장의 혐의는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내용이다. 삼성 창립 이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달 28일 수사 기간 만료를 앞둔 특검은 이 부회장 신병 확보를 발판 삼아 수뢰 혐의를 받는 박 대통령 조사에 남은 역량을 쏟아부을 전망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7일 오전 5시35분께 이 부회장을 구속했다. 지난달 19일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나서 영장을 재청구한 끝에 결국 이 부회장의 신병을 확보했다. 함께 청구된 박상진 대외담당 사장의 영장은 기각됐다. 이 부회장을 심문한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라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다만 박 사장에 대해선 "피의자의 지위와 권한 범위, 실질적 역할 등에 비추어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 5가지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승마 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2015년 8월 최씨가 세운 독일 회사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1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가량을 송금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삼성은 최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38·구속기소)씨가 세운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천800만원을 후원 형식으로 제공했다.
또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주요 대기업 중 최대인 204억원을 출연했다. 특검팀은 코레스포츠에 보낸 35억원에는 단순 뇌물 공여 혐의를, 재단·사단법인인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과 동계센터 후원금 16억2천800만원에는 제3자뇌물 공여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실제로 최순실이 지배한 코레스포츠와 동계센터,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넘어간 돈은 총 255여억원이다. 뇌물수수죄는 실제 돈이 건너가지 않아도 약속만으로도 성립해 특검팀은 삼성이 건네기로 한 430억원 전체에 뇌물 공여 및 제3자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팀은 코레스포츠 지원금 35억원과 정유라(21)에게 제공된 명마 구입 대금 집행에는 특경법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이번에는 최씨 지원을 위한 자금 집행을 정상적 컨설팅 계약 형태로 꾸민 행위가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처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추가했다.이 부회장 측은 최순실 일가 지원이 박 대통령의 사실상 강요에 따른 것이며 '피해자'라는 주장을 펴왔다. 이날 법원은 결과적으로 삼성의 최순실 일가 지원과 박 대통령의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사이에 대가성이 있다는 특검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 정석 판사, 19시간 검토 끝에 구속영장 발부
삼성전자 이재용(49)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결정을 내린 한정석(39·사법연수원 31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판사는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부터 19시간여에 걸친 검토를 거쳐 17일 새벽 5시 35분께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한 판사는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를 마치고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과 대구지법 김천지원, 수원지법 안산지원을 거쳐 2015년부터 다시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 중이다. 법관 인사에 따라 이달 20일 제주지법 부장판사로 전보될 예정이다.
지난해 2월부터 영장 업무를 맡은 한 판사는 현재 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 3명 중 한 명이다. 앞서 첫 구속영장은 조의연 부장판사가 기각한 바 있다. 한 판사는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청구한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구속영장을 심사해 발부했다. 한 판사는 당시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반면 최씨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학사 특혜 의혹과 관련해 특검이 청구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의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이는 이대의 정씨의 '학사 비리' 수사와 관련해 영장 청구가 기각된 첫 사례였다.
창업 79년만에 첫 총수 구속, 충격의 삼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은 역대 삼성그룹 총수 중 첫 사례다. 그만큼 이번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는 헌정사상, 정치경제사상 전대민문의 국정농단 사태라는 것을 반영한다. 삼성은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부회장까지 총수 3대에 이르는 동안 여러 번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한반도 구속까지 된 적은 없었다. 1938년 대구 '삼성상회'에서 출발해 79년간 글로벌 기업으로 커오면서 겪은 숱한 위기 중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시련을 맞은 것이다. 이 부회장의 조부인 이병철 전 회장은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지만 검찰에 불려가지는 않았다.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 55t을 건축자재라고 속여 들여와 팔려다 들통났다. 세간의 분위기는 험악했고, 삼성과 박정희 정권이 밀수로 번 돈을 나눠 가지려 했다는 의혹까지 일었다. 이 전 회장은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과 경영 은퇴를 선언, 위기를 모면했다. 대신 그의 차남이자 밀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 역시 수차례 의혹의 중심에 섰지만 구속된 적은 없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할 당시 다른 대기업 총수와 마찬가지로 불려와 조사를 받았다.
이후 불구속 기소돼 1996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10월 사면받았다. 2005년 이른바 'X파일' 사건이 터졌다. 삼성 임원진이 정치권·검찰에 대한 금품 제공을 논의한 것이 녹음파일 형태로 폭로된 것이다.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이건희 회장은 서면 조사만 받았고 무혐의 처분됐다.
삼성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재 8천억원을 사회기금으로 내놨다. 이어 2007년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이건희 회장 지시로 금품 로비를 하고 자신 명의의 비밀계좌로 50억원대의 비자금이 관리됐다는 내용이었다. 곧 '삼성 비자금 특검법'에 따라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출범, 삼성 비자금과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을 훑었고 이건희·재용 부자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당시 삼성전자 전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등을 통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으로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최종 처분은 불기소였다. 이건희 회장은 배임·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기소 직후인 2008년 4월 자신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지배구조 개선방안 등이 포함된 '경영쇄신안'을 내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법원에서 일부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지만 약 1년 뒤 사면됐다. 이처럼 삼성 총수 일가는 검찰과 여러 차례 악연을 맺었지만 대규모 변호인단을 동원한 치밀한 방어 전략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철통 방어'도 이번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이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삼성은 네이팜탄을 맞은 충격의 분위기로 돌변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