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기춘, 조윤선' 구속영장 발부
법원은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했다. 법원은 이들의 구속영장을 21일 모두 발부하면서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이라고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전날 오전 10시 30분께부터 총 6시간 넘게 진행됐다. 전날 오전 10시 30분부터 3시간가량 김 전 실장, 이후 4시 50분까지 다시 3시간 넘게 조 장관의 심문이 각각 이뤄졌다. 결국 두 사람은 세간의 예상대로 구속됐다. 이변은 없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타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구속할 수 있다. 이러한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 요소로 삼는다.
박영수 특검은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조 장관이 수석으로 재직하던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블랙리스트가 최초 작성됐고,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가 실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이를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중대범죄라고 강조하기도 했고 성 판사는 특검팀의 수사 진행 내용을 검토한 결과, 범죄 혐의 개연성이 소명됐고, 이들이 증거인멸을 시도했거나 장차 시도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검팀은 잇단 압수수색을 통해 혐의를 뒷받침할 정황을 다수 확보했다고 자신해왔다. 결국, 법원도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가담해 리스트를 지시·보고·관리해왔음이 충분히 소명된다고 봤다. 김 전 실장은 압수수색을 앞두고 자택에 설치된 사설 폐쇄회로(CC)TV 영상, 서류, 휴대전화 등에 든 정보를 상당량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점도 영장 발부에 참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조 장관 취임 직후 장관 집무실 및 의혹의 핵심 부서인 예술정책국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교체됐다. 이 때문에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련 증거를 없애려 했던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국민의 뜻을 짓밟은 권력의 뒤안길이다.
블랙리스트 수사, 박대통령만 남아
한편, 특검은 김기춘, 조윤선을 상대로 의혹의 최정점에 있는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밝혀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의 리스트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관리한 것은 초유의 일로, 최고권력의 지시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는 게 특검의 인식이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권력을 활용해 문화·예술계의 판도를 바꾸려고 한 정황도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27일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손경식 CJ 회장을 만나 'CJ의 영화·방송이 좌파 성향을 보인다'며 압박했다.
당시 CJ는 케이블 방송 채널을 통해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 영화 '광해'를 배급했다. 앞서 2013년 7월에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 회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VIP(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촉발한 미르재단 설립을 박 대통령이 밀어붙인 것도 한류 확산이라는 공식 목표와는 달리 문화·예술계의 판도를 바꾸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작성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문화·예술계에서는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작품이 잇달아 등장했다.
'문화 전쟁'에서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이 정세를 뒤집고자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거나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특검 수사의 관건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달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에 따라 특검이 다음달 초 추진 중인 박 대통령의 대면 조사는 대기업 뇌물수수 의혹뿐 아니라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도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