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박영수 특검팀은 대통령 자리에 있는 박근혜와 최순실(61·구속 기소)에게 433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뇌물공여)로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영장실질심사는 18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도움을 받기 위해, 삼성전자가 최순실 소유의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213억 원 지원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운영하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 원도 뇌물에 포함됐다.
특검은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 원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뇌물로 판단했다. 특검은 SK,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들이 두 재단에 출연을 한 것도 대가성 있는 뇌물인지 조사할 방침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는 삼성의 재단 출연을 ‘제3자 뇌물’로 볼 수 있는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열사 합병이 확정되고 석 달이 지나 재단 출연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을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볼 수 있는지가 논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법원에서 잘 판단해 주리라 믿는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특검은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66)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63),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대한승마협회장·64)은 불구속 수사할 방침이다.
특검이 고민한 이재용 사법처리 수위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놓고 고민이었다.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특검과 수사진은 “400억원대의 뇌물을 주라고 지시했다는 증거가 있는데도(최지성 미래전략실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만 했다고 주장하는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박 특검은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며 16일 오전 영장 청구를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철(대변인) 특검보도 “그동안 사실관계 파악과 법리 적용에 대한 (수사팀 내)이견은 없었지만 신병 처리 여부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영장 청구가 이날 이뤄졌다”고 말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진술을 검토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금요일에 조사를 마치고 월요일에 영장을 발부했으면 근무일 기준으로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은 만큼, 특검팀이 이 부회장 처리를 놓고 장고(長考)를 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팀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는 일종의 ‘정공법’이라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여론 환경과 향후 다른 대기업 등에 대한 수사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삼성 측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만난 사람은 이 부회장 단 한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핵심 당사자이자 지시의 최정점에 있는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는 특검팀이 스스로 모순을 범하게 된다는 의미다.
검찰 한 간부급 관계자는 “일반적인 경영 행위가 아닌 승계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대기업도 승계 당사자를 제쳐놓고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 미래전략실에서 알아서 결정해 지시했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외에 그룹 2~3인자인 최지성(66)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63) 차장(사장) 등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초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팀이 이 부회장 외에 최 실장과 장 차장 등에 대해 일괄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일부라도 영장을 받아내 ‘타율’(발부율)을 높이는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특검팀은 이 부회장만 청구하면서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외과수술식’으로 잘 진행된 부패범죄 수사의 경우 보스에 대한 혐의를 입증해 처벌할 수 있다면 굳이 지시를 받은 부하들까지 함께 처벌하지 않는다”면서 “특검팀이 ‘부하’(최 실장 등)까지 처벌할 필요는 없을 만큼 ‘보스’(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가진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를 통해 SK·롯데·CJ 등 향후 진행될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에서도 밀리지 않겠다는 특검팀의 장기적인 안목도 엿볼 수 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강요·공갈’의 피해자 성격이라고 주장한 삼성 측의 주장 등 여러 쟁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 영장실질심사 단계부터 시작해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되고 있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