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들의 비판언론 탄압’은 이러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에서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조 전 사장은 12일 열린 탄핵심판 4회 변론기일에서 이 같이 말했다. '언론의 자유 침해'는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 5가지 유형 중 하나다. 그는 세계일보 사주인 한학자 통일교 총재측 관계자가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해임하지 않으면 압력을 가하겠다고 해 불가피하게 당신을 해임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고 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해임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조 전 사장은 "한 총재측이 '본인은 해임 뜻이 없지만 전화를 받아 어쩔 수 없다'며 '이해해달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한 총재측에게 전화한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면서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중 1명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최근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이미경 CJ부회장을 그만두게 하는 것을 보고 김 전 수석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문체부에 종교단체가 등록돼 있고 실제로 김 전 차관의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김 전 실장은 통일교의 한 단체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기 때문에 한 총재와 전화할 수 있는 사이라고 추정했다"고 했다.
그는 또 김 전 수석이 2015년 1월 연락해 와 식사를 했다고 밝혔다. 조 전 사장은 "홍보수석이 아닌 교육문화수석이 이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것은 청와대가 교육부와 문화부를 통해 압박하려고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며 "교육부는 선문대 등 13개 학교, 문체부는 통일교재단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 전 사장은 또 문건이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의 '입'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 전 비서관이 박동렬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에게 얘기했고, 박 전 청장이 박관천 전 경정에게 얘기한 것"이라며 "진원지는 결국 안 전 비서관"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현일 세계일보 기자는 ‘정윤회 문건’을 취재·보도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겪은 언론자유 침해 사례를 공개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 조현일 세계일보 기자
"취재원, 국정농단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말해
조 기자는 이날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정윤회 문건’ 등 박근혜정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논쟁을 일으킨 문서를 취재원이 세계일보에 제공하게 된 경위 등을 밝혔다. 조 기자는 “취재원이 진보 언론은 과하게 보도할 것 같고, 메이저 언론은 보도가 아닌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 같다는 게 취재원의 말이었다”며 “세계일보가 쓸 것은 쓰는 곳이라는 게 우리 판단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이어 “취재원이 걱정이 돼 정말 문건을 보도해도 되느냐고 하자 취재원이 ‘이게 나랴냐. 나라가 이 지경인 걸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정윤회 문건 취재 과정에서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만류한 일 역시 공개했다. 조 기자는 “박 전 행정관이 ‘정윤회를 건드린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모두 날아갔다. 당신은 3년은 검찰에 불려다닐 것이고, 검찰·국세청·청와대 모든 수석실이 달려들 것이다’고 경고했다”고 했다. 실제 청와대 관계자 등은 세계일보가 2014년 11월28일 ‘정윤회 문건’과 비선실세 의혹을 보도한 직후 검찰에 조 기자 등을 고소했고, 검찰이 즉각 수사에 나섰다.
이른바 ‘십상시’가 세계일보 관련자들을 고소한 것을 두고 조 기자는 “기사에서 십상시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본인들이 벌떡 일어나 명예가 훼손됐다며 고소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걸 보고 코미디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또 “권력 비판에 강제 수사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정윤회 문건의 입수 경위와 취재원 등을 캐물었지만, 조 기자는 “언론윤리상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 문서 입수시점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도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청와대 문서를 입수한 사실이 있다”고만 했다.
“국정원, 기자 미행 경고”
문건 보도 이후 조 기자는 검찰뿐 아니라 국정원이 계속 기자를 미행 중이란 경고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조 기자는 “지난해 9월 사정당국 관계자에게서 ‘국정원 소속 지인과 대화하던 중 국정원이 당신을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세계일보에 대한 탄압 사례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조 기자는 “세계일보 관련 4개 계열사가 세무조사를 받았고, 건강보험공단 등은 청와대의 질타를 받고 세계일보 광고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은 세계일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려고 했으나, 언론탄압 여론 확산을 우려해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기자는 정윤회 문건의 외부 유출 경위만을 집중 수사한 검찰에 대해선 “검찰 특수부가 기자를 수사한 정도로만 고소인들을 수사했다면 국정농단의 흔적을 당시에 찾아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기자는 증언 말미에 “2015년 1월5일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 보름 후 아내가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며 “최경락 경위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관련자들에게 검찰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걸 보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어 “언론의 본령은 권력에 대한 감시지만 그 일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세계일보는 이를 혹독히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헌재 재판관들은 이날 “사실관계가 아닌 의견을 자꾸 묻고 있다”며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질의 태도를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 측 일부 대리인은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한 질문을 해 일부 관련자들로부터 의구심을 샀다. 그러나 국민들은 십상시들의 이 권력갑질, 국정농단의 비밀을 알게 되었던 한 경찰관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