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역대 최대규모 피해, 정부 방역망 구멍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내고 있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AI 발생 이후 한 달여 만에 전국적으로 살처분한 닭·오리 등 가금류는 1444만9000마리(살처분 예정 378만 마리 포함)에 달한다. 지금까지 역대 최대 AI 피해는 지난 2014년 1~7월의 1396만 마리였다. 당시엔 195일 동안 1396만 마리를 살처분했는데, 이번엔 불과 한 달 만에 최대 피해를 내고 있다.
AI 피해가 커지자 정부는 15일 열릴 가축방역심의회에서 AI 위기 경보를 현재의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발생 지역이 영남과 제주 지역을 제외한 25개 시·군으로 확대된 상태이고 신규 의심 신고도 최근 며칠간 급증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AI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겨울 철새가 40만 마리 더 들어올 예정이다. 겨울철이라 소독약이 얼어붙고 있어 방역 여건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AI 추가 확산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정부 방역망 구멍, AI감염 알고도 닭10만마리 달걀288만개 유통
정부의 방역망 곳곳에도 구멍이 뚫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AI 의심 신고를 한 세종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신고 직전 닭 10만 마리와 달걀 288만개를 유통시켰다. 방역 당국은 해당 농가가 AI 감염 사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닭을 출하했다고 보고 정밀 조사 중이다. 이 농장은 2014년에도 AI가 발생한 적이 있고, 이번에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출하한 닭은 전량 수거해 폐기 처분했고, 달걀 상당수는 유통됐지만 AI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국민안전처가 11개 시·군을 대상으로 감찰을 벌인 결과, 20건의 방역 미비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 군청은 방역대책본부를 문서상으로만 설치하고 실제로는 운영하지 않았고, 저녁을 먹는다는 이유로 거점 소독 시설을 통째로 비운 경우도 있었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AI가 발생하면 24시간 내에 살처분해야 하는데 매몰지와 살처분 인력을 구하지 못해 평균 2.2일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올라가면 정부가 필요에 따라 사료 공장과 도축장, 부화장, 분뇨 처리장 등 방역과 관련된 시설을 폐쇄할 수 있다. 전통시장에서 생닭 등을 파는 판매 업체도 폐쇄시킬 수 있다. 전통시장에서 판매되는 토종닭의 20~30%는 살아 있는 상태로 공급되는 상태다. AI 긴급 백신 접종도 가능해진다. 전국 주요 도로엔 이동 방역 초소가 설치되고, 농식품부에 설치된 AI대책본부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이관된다.
경제적 피해 급증… 계란값 계속 올라
AI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피해도 커질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AI로 최소 4920억원에서 최대 1조4770억원의 직·간접적인 기회 손실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피해액은 AI가 전국적으로 확산돼 AI 감염률이 10~30%일 때를 가정한 것이다. 이번 AI는 지난 12일 기준 1235만 마리가 감염돼 7.5%의 감염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추세대로라면 감염률은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AI 감염률이 10%로 올라가면 농가는 1671억원, 정부는 1187억원, 육류 및 가공 업체는 1855억원, 음식업은 208억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추정했다. AI 감염률이 30%로 올라가면 농가는 5012억원, 정부는 3561억원, 육류 및 육가공업은 5564억원, 음식업은 625억원으로 피해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다.
대규모 닭 살처분 탓에 계란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이마트는 15일부터 계란 판매 가격을 평균 4.8%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 8일 계란 판매 가격을 평균 5% 올린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이에 따라 계란 30개(대란 기준)의 소비자가격은 6280원에서 6580원으로 300원 오른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이번 주중에 계란 가격을 올릴 예정이다.
업계에선 지역에 따라 계란 품절 현상이 나타나는 점포가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지에서 계란 출하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각 점포에 공급되는 계란이 평소의 60~70%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1인당 계란 판매량을 제한하는 마트도 나타나고 있다. 반면 닭고기는 소비 심리 위축 탓에 도매가가 지난 1일 ㎏당 1890원에서 13일 1490원으로 21% 떨어졌다. 계란 공급이 줄면서 계란을 대량으로 쓰는 제빵 업체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