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순실증’ 심각,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연 5주째 이어지는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촛불 집회’ 등 최근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들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감정 기복의 폭이 커지고 언어가 과격해 지는 등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위협 받고 있다. 지난 11월 1일엔 한 시민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포크레인을 몰고 돌진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전날에는 서울중앙지검에 개똥이 담긴 용기를 투척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 모두 현재의 사태에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쓴 용어로 ‘금수저’가 1위, ‘헬조선’이 2위에 선정되었다. ‘금수저’는 타고날 때부터 유리한 지위를 타고난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헬조선’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상징하는 신조어다. 이러한 신조어 모두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과 우울함이 담긴 단어들이다. 최근 사회를 강타한 여러 사건들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이 커져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커지면서 점차 온 사회가 혼란과 아노미(기존의 전통적인 규범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규범과 가치관이 아직 정립되지 못하여 혼란과 무규범 상태에 빠지는 것)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를 이기지 못해 돌발행동을 하거나, 혹은 무기력감이 자조와 우울로 변질돼 나타나고 있다.
실제 최순실게이트 등 사회적인 분위기가 구성원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현재 상황은 이전 ‘헬조선’ 등 각박한 현실로 인해 정신적 피폐함을 쌓아온 상황에서 터진 사건이라 그만큼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단순히 일시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 정신건강 전문가는 “최근 ‘최순실 게이트’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남에 따라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간혹 앞의 예처럼 과격한 형태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정치·사회 현상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건설적으로 표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너무 매몰되기 보다는 타인과의 소통 및 운동 등을 통해 지나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사회적 스트레스, 구성원간 정신 건강에 큰 영향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이 발표한 ‘2016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35로 전체 58위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순위인 11위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지속적인 사회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도가 낮은 것은 그만큼 사회구성원들이 행복보다는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 OECD가 발표한 ‘OECD 사회조사(Society at a Glance)’에 의하면 전체 35개 국 중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35위), 스스로 느끼는 건강도(35위), 삶의 만족도(28위), 정부신뢰도(29위), 사회관계(28위), 일자리 안정성(34위) 등에서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진 이번 사태는 구성원들의 정신 건강에 타격을 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이전부터 계속 스트레스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의 사태가 방아쇠로 작용, 다양한 형태로 분노와 우울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충동조절에 취약한 구성원들은 자칫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
‘간헐성 폭발장애’ 등 발생시 질환으로 인식, 적극 대응해야
최근 사회적 스트레스로 인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바로 ‘간헐성 폭발 장애’다.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나 대검찰청으로 포크레인을 몰고 돌진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과도한 스트레스나 혹은 화가 과도하게 쌓인 경우 공격적 충동이 억제되지 않아 폭력이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게 된다. ‘간헐성 폭발 장애’가 심해질 경우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행동 혹은 자해를 시도하는 등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것은 물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들의 경우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파악하지 못해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반면 현재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 소위 ‘순실증’이라 불리는 최근의 현상이 대표적으로, 희망과 대안을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가 심해질 시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 우울증이 심해질 경우 사고, 행동, 판단력 등에 장애가 생길 수 있고 더욱 심해질 경우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더불어 현재 문제에 너무 몰두해서 더 큰 감정에 휩쓸리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더불어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주 등을 자제하고 대화, 운동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걷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들, “썩은 정치가 못하면 우리가 하자!” 오늘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6차 촛불집회
한편, 법원이 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청와대 100m 앞 집회 및 행진을 사상 처음으로 허용했다.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지점까지 행진을 허가한 4차 촛불집회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청와대와 시위대 사이의 공간이 현행법이 수용할 수 있는 최단 거리까지 좁혀지면서 성난 민심의 함성이 박 대통령을 더욱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김정숙)는 2일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에 반발해 낸 집행정지 사건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청와대 200m 지점)에서 효자치안센터(100 지점)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오후 1시~5시30분 행진이 허용됐다. 다만 청와대 앞 30여m 지점인 분수대 앞(효자동삼거리)을 경유하는 집회ㆍ행진은 금지돼 참가자들은 효자치안센터에서 다시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 돌아 나와야 한다. 경찰은 앞서 퇴진행동이 청와대 주변에서 오후 1시부터 자정 전까지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 7건을 교통혼잡과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금지하고, 청와대분수대 앞을 지나는 행진 1건도 금지 통고했다. 푸르메재단, 효자치안센터, 정부서울청사창성동별관, 자하문로 16길21, 청와대로 126맨션,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등 모두 청와대와 동ㆍ서ㆍ남쪽으로 100~150m 인접한 지역이다.
법원 결정에 따라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청와대에서 보다 가까이 들릴 수 있게 됐다. 퇴진행동은 이날 집회를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로 명명했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헌정 사상 최초로 ‘금단의 영역’을 허문 법원 결정을 환영한다”며 “분수대 앞까지 못 간 점은 아쉽지만 엄연한 민심의 승리”라고 밝혔다. 12월 내내 청와대 200m 앞 평일 야간 행진도 허용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이날 “29일까지 평일 오후 8~10시 1개 차로를 이용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행진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이 경복궁역사거리까지로 행진 구간을 제한한 경찰의 조건부 통보에 반발해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단 참가 인원이 100명 미만이면 인도 행진만 가능하다.
청와대 행진뿐 아니라 부도덕한 정권을 질타하는 분노한 민심은 ‘촛불 성지’ 광화문광장을 넘어 여의도로 향했다.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새누리당 의원들이 탄핵 찬성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이날 예정된 탄핵소추안 표결 처리가 불발되자 시민사회의 분노가 정치권을 정(正)조준하기 시작한 것이다. 6차 집회의 전선 역시 국회로 확대됐다. 이날 일정은 오후 6시 본 행사에 앞서 여의도 사전집회로 문을 연다. 퇴진행동은 오후 2시 새누리당사 앞에 수천 명이 모여 정부 여당을 규탄하는 시민대회를 열고 인근을 행진할 계획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정치권을 흔들기 위한 박 대통령의 3차 담화에 부화뇌동한 새누리당은 더 이상 국민의 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축제 성격이 강했던 촛불집회 분위기도 한층 엄중해질 전망이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기획했던 문화ㆍ공연행사를 가급적 줄이기로 했다. 퇴진행동 측은 “연예인이 등장하는 공연이 한 건에 그치는 등 본 집회를 기존보다 짧고 압축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최 측은 1~5차 집회를 통해 박 대통령 퇴진을 바라는 민심은 충분히 검증된 만큼 참여 규모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최용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은 “지난주처럼 100만명 이상의 참여를 예상하지만 정확한 규모는 추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후 7시 모든 시민이 불을 끄는 ‘1분 소등’과 청와대 홈페이지에 동시 접속해 기능을 마비시키는 불복종 행사를 함께 열어 보다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50여개 도시에서도 비슷한 시간 예외 없이 촛불집회가 이어진다. 그동안 촛불집회가 평화적 집회로 이어졌지만 연이은 박대통령의 오만과 말바꾸기로 본보도 이제 더 이상 시민들의 성난 분노를 달랠길이 없다. 아무쪼록 불상사가 없기를 기원한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