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갑질들도 극치, 대통령 지시들도 드러나
검찰, 해운대 엘시티 이영복 회장 체포-이영복, 최순실과 연관있는지도 의혹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10여m만 사이에 두고 101층 호텔과 85층 주상복합아파트 2개 동을 짓는 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사업은 사업과정에서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등에 로비 의혹들과 최순실과도 연루가 되어있는지의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사업 시행사인 엘시티PFV의 실소유자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이 석 달 동안의 도피 끝에 10일 검찰에 체포됐다. 이씨는 가족과 지인의 설득으로 자수하러 부산으로 오다 마음을 바꿔 서울에서 다시 은신 중 가족신고로 10일 오후 9시 10분쯤 경찰에 붙잡혔다. 이 회장은 11일 새벽 검찰 승합차를 타고 부산지검에 압송됐다.
이날 오전 3시 20분쯤 부산지검에 모습을 드러낸 이씨는 수갑을 차고 수사관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였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착용했고, 복장은 검거 당시 그대로였다. 오랜 도피생활을 한 탓인지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혐의와 로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로비장부 유무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또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을 만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눈을 잠시 감으며 미간을 찌푸리다 고개를 저었다.
이씨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2분여 만에 수사관과 함께 검찰청사로 들어갔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간단한 기초조사를 진행한 뒤 구치소에 입감 했다가 11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이 주목하는 것은 이씨가 조성한 비자금의 사용처다. 2조7400억원의 초대형 건설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관계와 법조계, 언론계 등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온 때문이다.
이씨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횡령)혐의와 거액의 사기대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기대출과 횡령금액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8월 엘시티 자금담당 임원 박모(53)씨 등 2명을 구속했다. 박씨 등은 허위용역과 회사 돈을 빼돌려 52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비자금 조성에 이씨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돈을 가져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의 엘시티 사업은 해운대구 중1동 일대 6만5000㎡에 관광호텔 260실과 일반호텔 561실 등이 있는 랜드마크 101층(411.6m) 1 개 동과 882세대의 아파트가 있는 지상 85층짜리 2개 동, 워터파크, 판매시설, 전망대 등을 짓는 사업이다. 지난해 10월 착공돼 2019년 11월 말 완공될 예정이다. 사업비만 2조7400억원이 들어간다. 애초 엘시티 부지는 부산 해운대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었다. 최근까지 개발되지 않고 남아있던 해운대 백사장 인근의 마지막 땅이었다. 슬럼화돼 남아있던 이 땅을 부산시는 2006년 11월 도시개발구역으로 고시했다. ‘사계절 체류형 관광단지’를 만든다는 명분이었다. 이에 따라 2007년 6월 민간 사업자 공모에 들어갔고 트리플 스퀘어 컨소시엄(현 엘시티)이 선정됐다.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가하던 주거시설이 허용되고, 높이 60m로 제한된 건물높이가 해제됐다. 부산시가 도시계획위원회 등을 거친 결과다. 결국 부산시는 2010년 1월 사업을 승인하고, 해운대구는 2011년 10월 건축을 허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지면적이 기준(12만5000㎡)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았다. 교통영향평가도 약식으로 이뤄졌다. 대신 부산시는 수백억원을 들여 엘시티 주변 도로를 넓혀주고 공원을 조성해주기로 했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특혜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적법 절차를 거쳐 사업승인 등이 나갔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특혜를 준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최순실과의 연루도 있는지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최순실, 장관들 인사도 좌지우지
한편, 최순실(60·구속)이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를 좌지우지한 사실이 8일 체포된 차은택(47)의 검찰 진술로 10일 확인됐다. 그동안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 보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 개최에 관여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사실은 일부 드러났지만, 그가 정부 핵심 인사에까지 직접 관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차은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014년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56)를 대통령교육문화수석에, 홍익대 대학원 지도교수인 김종덕 씨(59)를 문체부 장관에 임명해 달라고 최 씨에게 청탁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차은택은 그의 측근인 송성각 씨(58·구속)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앉혀 달라고 최 순실에게 청탁했다고도 진술했다.
김 전 수석 등 3명은 차은택이 최순실에게 청탁을 한 그대로 박 대통령이 실제로 임명했다. 최순실이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을 움직여 이들의 인사를 관철시킨 것이다. 이 3명이 임명된 시기는 김 전 수석과 송 전 원장이 각각 2014년 12월, 김 전 장관은 그해 8월이다. 차은택이 2014년 8월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직후다. 이들은 차은택의 도움으로 정부 고위직에 오른 뒤 반대급부로 차은택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취임 후 문체부 예산을 차은택과 그 측근들이 추진한 문화콘텐츠융합 사업 등에 밀어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 전 수석은 최순실이 실소유한 더블루케이의 사업과 관련해 이 회사 조모 전 대표를 만나 사업을 논의하는 등 최순실 관련 사업을 도와줬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또 송 전 원장은 차은택과 관련이 있는 회사들이 콘텐츠진흥원의 예산을 받도록 힘써 준 의혹을 받고 있다.
차은택, CJ에 문화사업 2개 요직 요구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이 CJ그룹에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2개 핵심 직책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이권을 챙기려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차은택은 '비선 실세' 최순실을 등에 업고 문화정책과 인사를 좌지우지하면서 자신과 관련된 업체 등을 통해 사익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자신이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와 관련해 CJ가 맡은 두 사업에서 각각 핵심적인 자리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관여했던 핵심 관계자는 11일 "차씨가 지난해 2월 개소한 문화창조융합센터 출범 당시 CJ에 센터장 자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컬처밸리에서는 공연총감독 자리를 요구했으나 CJ가 모두 거부했다"며 "이후 차씨가 CJ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차 씨는 2014년 8월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데 이어 작년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으로 발탁됐다. 2019년까지 총 7천억 원대 예산이 책정된 초대형 사업인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상암동 문화창조융합센터, 청계천 문화창조벤처단지, 고양시 K-컬처밸리, 홍릉 문화창조아카데미 등 다양한 문화사업 거점을 국내 곳곳에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이 가운데 CJ는 상암동 CJ E&M 본사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열었고, 고양시에 K-컬처밸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CJ가 설립과 운영을 맡은 문화창조융합센터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주요 거점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구심점이다. K-컬처밸리는 축구장 46개 크기의 땅에 한류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공연장·쇼핑몰·숙박시설 등이 들어서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CJ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1조4천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핵심 관계자는 "차 씨는 문화창조융합센터장을 맡아 각종 콘텐츠 기획 및 개발사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것"이라며 "총감독직 역시 K-컬처밸리에서 개최될 수많은 대형 공연 등을 둘러싼 이권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차 씨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업체들을 문화창조벤처단지에 입주시키고 지원받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그가 현 정권에서 인천아시안게임, 밀라노 엑스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의 행사에서 영상감독 등을 맡아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회사에 일감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ㆍ안종범 ‘광고사 강탈’ 시점에 수차례 통화
검찰이 11일 권오준(66) 포스코그룹 회장 소환에 나선 것은 차은택(47)측의 ‘광고사 강탈 시도’에 그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볼 만한 단서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차은택측이 포스코의 광고계열사인 포레카를 인수한 C사 측에 지분을 넘기라고 강요했던 지난해 3~6월 무렵, 안종범(57ㆍ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과 권 회장이 수 차례 통화 및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최순실(60ㆍ구속)의 국정농단 의혹과도 맞물려 있는 이 사건의 전모가 권 회장 조사로 명확하게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오준(66) 포스코그룹 회장
차은택이 측근인 송성각(58ㆍ구속)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내세워 C사 대표 한모씨에게 “지분 80%를 넘기라. 안 그러면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는 협박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포스코는 단순한 ‘매각사’ 정도로만 비쳤다.
그러나 검찰이 지난 7일 자료제출 요구에 이어 9일 포스코 정모 전무를 참고인으로 조사하고, 곧바로 재계 순위 6위인 포스코그룹의 총수를 부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권 회장이 차씨 측의 광고사 강탈 시도에 처음부터 공모했다는 의혹은 물론, 최순실 사단이 포스코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확산됐다. 권 회장을 ‘단순 참고인’ 정도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권 회장 조사의 초점은 우선 2014년 3월 제일기획 출신인 김영수(46)씨가 포레카 신임 대표에 오르게 된 배경이다. 40대 중반에 불과한 김씨가 포스코그룹 출신인 김영상 당시 사장을 밀어내고 신임 대표에 오르자 포스코 내부에선 그 배경을 의아해했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포레카의 당시 다른 임원들보다도 김씨는 훨씬 젊었다.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송 전 원장이나 김홍탁(55) 플레이그라운드 대표 등 차씨의 최측근 인사들처럼 제일기획 출신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초 포스코는 2012년 대선 전 정치권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 추진’ 분위기에 맞춰 포레카 매각작업에 착수했으나, “포레카 관련 자료에 오류가 있다. 수개월 후 다시 절차를 밟겠다”며 돌연 중단했다. 포레카 매각이 예정된 상태에서, 차씨나 최씨 측이 이권을 챙기려 ‘포레카 인수’를 작정하고 김씨를 포스코에 심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김씨는 “(권오준) 회장님한테 오케이를 받았다”면서 C사에 대한 협박에도 가담했다. 이 과정에 권 회장이 관여했다면 그 배경도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검찰은 특히 차씨 측의 ‘강탈 시도’가 무산되자 포스코가 C사에 매각 조건으로 약속했던 일감을 사실상 끊었다는 의혹과 관련, 권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드러나는 대통령 지시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으로 이미 45억원을 낸 롯데는 지난 5월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하남에 한류 스포츠 선수 체육센터를 짓는 데 추가로 후원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다음달 계열사 6곳을 통해 70억원의 돈을 더 냈다. 그런데 재단은 검찰의 롯데 압수수색 하루 전인 6월 9일부터 이 돈을 전부 돌려줬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대통령이나 주변 인사들이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반환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검찰의 수사 상황을 보고받는 곳은 우병우(49) 전 민정수석이 총괄했던 민정수석실이다. 이와 관련해 특수본은 이날 우 전 수석의 서울 압구정동 집을 압수수색해 두 박스 분량의 자료를 확보했다. 우 전 수석과 부인 이모씨가 사용하는 휴대전화 1대씩도 압수해 분석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 농단에 개입한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박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이다. 검찰 수사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진행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 유출은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정 전 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렸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아울러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검찰에서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지원하라고 했다고 인정했다.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을 보면 문건 유출부터 재단 모금까지 대통령의 사전 인지 혹은 지시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당초 박 대통령과 자신들의 관여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 왔던 수석·비서관 등이 입을 열고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대통령 개입 정황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미 문건 유출과 재단 설립에 자신이 관련돼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
그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논의 과정을 거쳤다”(지난달 20일 수석비서관회의),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최씨로부터)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같은 달 25일 대국민사과)고 했다. 그 구체적인 과정이 검찰 조사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통령이 국기 문란과 국정 농단의 중심에 있었음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지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과 최씨, 청와대 비서진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