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민정비서관실, 부도덕의 극치
우병우, 출세위해 한 선량한 경찰관을 죽음으로 몰았다
지난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핵심 피의자였던 한일(46) 전 경위가 10일 “문건 유출자로 지목돼 수사받을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회유가 있었다”고 놀랄만한 주장을 했고 이를 중앙일보는 단독보도 했다. 드디어 이 사건과 관계해 사망한 최경락 경위의 죽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자신들의 불법비리를 덮기위해 한 선량한 경찰관을 죽음에까지 내 몬 셈이다. 2014년 12월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이었던 한일 경위는 최순실(60)의 전 남편 정윤회(61)가 비선 실세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 든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았다.
한일 전 서울경찰청 경위는 10일 "진실을 말하지 못해 최경락 경위와 유족에게 늘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선 실세 의혹을 그때 파헤쳤다면 나라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전 경위는 “그해 12월 8일 오후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P행정관이 연락해와 ‘문건을 최경락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하면 불기소도 가능하다’며 협조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전날에 당한 검찰의 압수수색 때 제출한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내용들을 그가 알고 있었다. 내가 최 경위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그 뒤 한 전 경위는 “최 경위에게 문건을 넘겼다”고 검찰에서 진술했고, 최 경위는 언론에 이 문건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최 경위는 닷새 뒤인 13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는 유서에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썼다. 이후 검찰은 박관천(50) 전 경정이 청와대 근무 때 만든 문건을 가지고 나와 정보분실에 둔 것을 한 전 경위가 복사해 최 경위에게 넘겼고 이를 최 경위가 언론에 유포했다고 결론 내렸다. 한 전 경위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민정비서관실이 검찰의 보고를 받아가며 사건 조기 진화를 위해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병우(49) 전 민정수석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 우병우는 이 사건을 수습한 뒤 민정수석이 됐다. 한 전 경위는 “당시 압수당한 내 휴대전화에는 ‘최순실이 대통령의 개인사를 관장하면서 대한승마협회 등에 갑질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문건 수사 당시 검찰과 민정비서관실에서 이러한 최씨 비리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도 묵인했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 P행정관은 10일 “(한 전 경위와의) 만남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한 경위와의 일문일답.
Q : 왜 2년 가까이 된 뒤에야 털어놓나.
A : “당시에는 너무 무서웠다. 말단 공무원이 청와대·검찰과 맞서려고 하니 겁이 났다. 이제라도 이야기하는 것은 최 경위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끝까지 침묵을 지키면 유서가 거짓말이 되지 않나. 고인(故人)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었고 이제는 말을 해도 되겠다는 판단도 섰기 때문이다.”
Q : 당시 상황은.
A : “체포 하루 전인 8일 오후 4시쯤 P행정관한테 전화가 왔다. 공중전화였다. 처음에는 서울 남영동의 선배 사무실에서 만났고 이후에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청와대 문건을 복사해서 최경락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해라. 그럼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루 전 내가 검찰에 제출한 휴대전화 속 정보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문건을 복사했다는 내용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Q : 흔들렸을 것 같다.
A : “내가 복사를 해준 건 맞으니까 흔들렸다. 그래서 최 경위도 배려해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최 경위에게 연락했는데 ‘정윤회 문건을 절대로 기자에게 주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문건 복사해 준 건 사실이니 그냥 그렇게 말하고 선처받자고 얘기했다. 최 경위가 ‘죽어도 못한다. 내가 한 짓이 절대 아니다. 너 회유당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체포가 됐고 구속영장 기각돼 풀려나자마자 최 경위가 목숨을 끊었다.”
Q : 압수된 휴대전화에 어떤 정보가 있었나.
A : “난 그때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 휴대전화에 이와 관련한 통화 내용들이 녹음돼 있었다. 최순실이 대통령 개인사를 다 관장한다는 정보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검찰 수사 때는 아무도 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Q : 승마협회 조사하고 있어서 불이익 받았다는 생각은 안 했나.
A :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억울한 측면도 있다. 난 정윤회 문건은 써먹은 적도 없고 사무실에 있는 걸 복사한 죄밖에 없다. 문건을 유포하려고 복사한 것도 아니다. 당시에 승마협회 정보를 캐고 있었던 게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Q : 지금 심정은.
A : “5개월가량 복역하고 파면돼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공직자라는 끈을 놓지 못해 힘들었다. 20년 넘게 몸 바쳤던 생업이니까. 법정구속이 된 뒤엔 다 놓게 됐다. 지금은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서울 강동구 다세대 주택에 산다. 이번에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우병우, 차은택 비위, 알고도 묵살 은폐” 증언도 나와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지난해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47)의 이권 개입과 인사 개입에 대한 내사를 벌여 구체적인 비위 단서를 적발했지만 청와대가 특별한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는 관련자 증언도 나왔다. 차 씨의 비위 첩보를 이미 수집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당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배경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김수남 검찰총장의 지시로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최순실(60) 관련 의혹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은폐했는지에 대한 첩보 수집에 나섰다.
9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아프리카픽쳐스나 모스코스 등 차은택이 이끌던 회사의 대기업 및 정부부처 일감 수주 문제점에 대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복수의 대기업에서 구체적 자료까지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정수석실은 또 차은택이 문체부 산하 고위직 인사 등에 입김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문체부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은택 소유 업체 혹은 지인업체들은 KT, 현대차그룹, 포스코 등에서 광고 일감을 대거 수주했다. 인사에 개입한다는 뒷말도 나왔다. 차은택의 든든한 배경에 은사인 문체부 장관, 외삼촌인 대통령교육문화수석 등이 있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민정수석실이 차은택을 눈여겨본다는 기류가 민간에 포착되면서 일부 대기업에서는 차은택과의 업무 관계를 꺼림칙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우 전 수석 산하의 민정수석실이 차은택을 내사하기 시작하면서 미르재단 등으로 차은택과 깊이 연관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구속)과 우 전 수석 사이에 깊은 갈등이나 긴장 기류가 조성된 적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차은택의 비위 의혹이 수집된 자료가 어디까지 보고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가 이뤄졌다면 결과가 민정수석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 민정수석실로부터 자료 요청을 받은 재계 관계자는 “당시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윗선 지시에 따른 첩보 수집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당시 차은택의 비위 행위가 구체적으로 발견됐지만 비위 행위 자료를 관련 기관에 이첩하는 등 특별한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병우는 최순실 라인에 대한 감찰을 소홀히 해 이 사태를 방치했다며 직무유기로 현재 고발돼 있다. 민정수석실이 차은택의 비위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우 전 수석에게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고도 묵살했다면 박 대통령의 형사적 책임이 무거워진다. 한편 검찰은 우 전 수석이 변호사 재직 당시 변론 활동을 벌인 양돈업체 ‘도나도나’사건의 몰래변론 의혹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주요관련자들, 수사대비 말도 맞추었다" 의혹
‘최순실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청와대가 주요 관련자들을 먼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사 대상에 오른 청와대 관련자들이 수사에 대비해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검찰에 고발된 차은택 감독과 관련해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통해 사건 내용을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역시 조사했다는 진술이 나와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차 감독을 접촉해 조사를 한 시기는 지난달 중순께다. 당시 차 감독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정부의 각종 이권 사업을 챙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였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9월29일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을 고발한 데 이어 다음달 11일 차 감독을 추가 고발했다. 이 사건은 10월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된 상태였다. 차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자 9월 말 중국으로 도피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차 감독을 접촉하기 위해 나섰다. 당시 홍보수석실 관계자가 평소 친분이 있던 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을 통해 차 감독과 접촉했다. 청와대는 차 감독에게 언론에 보도된 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나섰다. 차은택이 당시 청와대에 보낸 자료에는 “정부 사업으로 이권을 챙긴 적 없고, 재능기부 차원이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료는 우 전 수석에게도 전달됐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이 자료를 본 뒤 ‘별거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앞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역시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사무총장은 지난 9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미 나를 조사했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 수사가 예정된 피고발인을 청와대가 먼저 접촉한 것을 두고 말맞추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이다. 차은택과 이 전 사무총장에 대한 조사 내용은 민정수석실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도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우병우 전 수석은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해부터 차씨의 비위 자료를 수집하는 등 감찰 활동에 들어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박 대통령 조사 하지 않을 수 없어”
한편, 차은택의 측근인 이동수 KT 전무와 김홍탁 플레이그라운드 대표가 개입된 신생 법인 ‘한국크리에이티브 광고원’에 문체부 예산 15억 원이 들어가 광고 수주 특혜를 얻은 혐의는 집중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검찰은 차은택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6월부터 융복합 콘텐츠를 활용해 케이팝(K-pop) 사이버 걸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와 관련해 사업 자금 일부도 횡령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9일 차은택의 측근 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송 전 원장은 콘텐츠진흥원이 발주한 발광다이오드(LED) 사업 수주 대가로 공사업체에서 38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또 차 씨와 함께 광고업체 포레카의 인수자를 협박해 포레카 지분을 넘겨받으려 한 혐의(공동강요)도 있다. 검찰은 지분 강탈 과정에 박 대통령이 연루됐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10일 차은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김종 문체부 전 차관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검찰은 최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 경위와 관련해 CJ, KT, LG, SK, 현대차 전·현직 임원을 조사했다. 검찰은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CJ 이미경 부회장에게 퇴진을 압박했다는 의혹도 수사 중이다. 조 전 비서관은 출국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검찰은 최순실의 청와대 무단출입, 문건 유출 의혹과 관련해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전·현직 비서관 4명의 자택, 최 씨 소유의 회사 더블루케이와 장애인펜싱팀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그랜드코리아레저를 압수수색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