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최순실 구속영장 발부, 안종범 "대통령 개입" 진술
파렴치하게 현 정부 '비선 실세'로 행세하면서 국정을 마음껏 농단하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 최순실이 결국 구속됐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자 9월초 독일로 도피했다가 지난달 30일 수사를 받겠다며 전격 입국하고 나서 나흘 만이다. 최순실이 구속됨에 따라 철저한 의혹 규명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특권을 내려놓고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3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최순실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2일 긴급체포한 최순실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공범),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자금 유용, 외교·안보 기밀 등이 담긴 정부 문서 유출, 딸 정유라(20)의 부정 입학 등 여러 범죄 의혹이 제기됐지만 시간에 쫓긴 검찰은 신병 확보 가능성이 가장 큰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혐의를 우선 적용했다.
최순실은 기금 모금 당시 기업들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을 움직여 자신이 막후에서 설립과 운영을 좌지우지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53개 대기업이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K스포츠재단이 '형제의 난' 이후 검찰 내사설이 파다했던 롯데그룹을 상대로 추가 기부를 요구해 70억원을 받았다가 돌려주는 과정을 뒤에서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이 밖에도 최순실은 외국인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 그렌드코리아레저(GKL)가 장애인 펜싱팀을 만들 때 안종범이 개입하도록 해 개인회사인 더블루케이와 대행 계약을 맺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최순실 본인은 직권남용죄가 적용되는 공직자 신분은 아니지만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안 전 수석 등과 공모 기업측에 압박을 가해 자기 사업을 돕게 한 것으로 보고 둘을 각각 범죄를 스스로 저지른 '공동정범'으로 판단했고 법원은 이런 논리를 수용했다.
이날 영장심사에서 최순실 측은 안 수석과 모르는 사이라면서 공모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범행을 위한 상호 의사 연락도 없었다고 강력 주장했다. 또 최순실 변호인은 피의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안 전 수석의 일부 직권남용 행위를 최순실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고 공동정범으로 본 것은 법리 오해라는 취지로 궤변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최순실은 고영태(40) 등 측근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더블루케이를 차려 놓고 K스포츠재단에서 용업·사업비 명목으로 자금을 빼가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스포츠 마케팅, 인재 육성 등 사업을 한다고 포장된 더블루케이가 실제 연구 용역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K스포츠재단에서 각각 4억원과 3억원씩 용역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최씨에게 사기미수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앞으로 최장 20일간 최씨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주요 의혹들을 추가 수사할 계획이다. 해당 의혹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및 자금 유용 *정부 문서 유출 등 국정 농단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갈취성 모금 *삼성·승마협회의 정유라 승마 훈련비 특혜 지원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 등이다.
한편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업을 도와주려는 의도에서 안 전 수석 등 공직자들에게 직접적인 지시를 내렸는지, 민간인인 최순실에게 정부 문건을 보내주도록 지시했는지 등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박 대통령을 조사할지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안종범, "박대통령, 미르·K스포츠 현안 일부 직접 챙겨봐" 진술
한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검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이 막후에서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관련 현안을 직접 챙겨봤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전날 직권남용 혐의로 긴급체포된 안 전 수석은 이날 이틀째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두 재단 및 최씨가 실소유주인 더블루케이의 일부 구체적인 사업 내용까지 챙겨봤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조사까지 안 수석은 박 대통령이 여러 공개 장소에서 두 재단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만큼 재단들이 잘 설립돼 운영하도록 돕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 생각해 두 재단의 운영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안 전 수석이 두 재단의 설립과 모금뿐 아니라 K스포츠재단이 롯데, SK, 부영, 포스코 등 기업들에 추가 기부를 요구하는 과정에 청와대 경제수석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깊숙이 개입하고최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되는 더블루케이의 사업 회의까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런 행동을 한동기·배경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K스포츠재단의 회의록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올해 2월 재단이 이중근 부영 회장을 만나 70억∼80억 지원을 의논하는 자리에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기금을 쾌척하겠다면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노골적으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은 포스코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 협조를 요구한 의혹도 받고 있다. 통상적인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 행태로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다.
그는 또 최순실이 K스포츠재단 자금을 합법적으로 빼내 가기 위해 비밀리에 만든 더블루케이 관계자들이 1천억원대 평창올림픽 시설 공사 수주를 노리고 스위스 누슬리사와 업무 협약을 맺는 자리에도 참석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의 추궁에 안 전 수석은 두 재단의 구체적인 사업 내용 가운데 일부는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기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은 진술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기업들을 강요·압박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대통령이 제안한 좋은 취지에 공감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며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는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이날 "(대통령) 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의혹과 관련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소속 김모 전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로써 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수사가 롯데·SK에 이어 삼성으로 확대됐다. 검찰은 김 전무를 상대로 삼성이 재단 출연금 외에 최순실과 딸 정유라(20)가 독일에 세운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에 승마 선수 전지훈련비 명목 등으로 280만달러(한화 약 35억원)을 지원한 경위도 집중 추궁했다. 이 밖에도 검찰은 최씨 조카 장시호(37·개명 전 장유진)씨가 작년 6월 설립된 영리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국가보조금 등을 일부 횡령한 의혹과 관련해 예산 집행 내역과 사업계약서 분석 등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