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제도 서민가계 압박, "韓電 너무하지않나?"
전기요금 누진제도에 대해 서민들의 불만과 짜증, 분노가 급증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누진세의 피해를 보는 가정들과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적인 더위에 냉방을 위한 전기사용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인데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 8일 전력 사용량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기록됐다. 문제는 요금이다. 냉방 사용의 급증은 필연적으로 전기요금의 인상을 야기시킨다.
전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차등 부여하는 누진제도 때문에 누진세가 적용되는 현행 전기요금체계는 전기를 쓰면 쓸수록 요금이 비싸질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벌어진 최저 요금과 최대 요금 사이의 차이만 무려 11.7배에 이르는 비정상적 수십년전 설계가 서민들을 폭염의 지옥속으로 내몰고 있다.. 문제는 또 너무나 비현실적인 형평성이다. 누진세가 오직 가정용에만 적용되기 때문인데 산업용과 상업용에는 누진세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과 자영업장에서의 에너지 낭비는 방치한 채 유독 가정용에만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해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같은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1.1배), 일본(1.4배), 대만(2.4배)등 세계 여러나라와 비교해서 최저 요금과 최고 요금 사이의 가격 차이가 월등히 높다. 전기요금 체계의 불합리성은 전체 전력의 사용량을 따져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 사용량 중 가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산업용은 무려 55%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의 절반이 넘는 전력을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누진세의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의 경우 kwh당 요금이 107원으로 가정(평균 123원)보다 싸다. 일반 가정의 열받는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진제도 개편에 난색 표하는 정부와 한전
사실 전기요금 누진제도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정부는 박정희 개발, 경제 시대의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과 저소득층 가구의 요금 부담 가중, 전력 사용 급증에 따른 수요관리의 어려움 등을 내세워 누진제도 개편에 난색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현재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전기요금 체계에 대해 일반 가정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누진제도는 제도적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치권에서도 전기요금 누진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제도 개편에 적극적인 야당뿐만이 아니라 이제 겨우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여당에서도 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행 누진제도가 불합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누진제도에 대한 한전과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한전과 정부가 누진제도 개편 불가 입장을 고집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한전의 막대한 영업 이익 때문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한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무려 11조3000억 원에 달한다. 한전 수익의 대부분이 전기료임을 감안할 때, 현행 누진제도를 개편하게 되면 한전의 이익이 줄어들게 되고 정부의 재정수입 역시 감소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이유들이 한전과 정부가 누진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라면 막대한 영업이익은 그 본질적인 이유다. 문제는 그 피해가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재벌과 부자들을 위해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 등의 직접세는 놔두고 간접세와 부가가치세만 건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5년 1월 1일을 기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담뱃세를 필두로 주민세, 자동차세 등이 줄줄이 인상됐다. 이것들은 모두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항목들이다.
사상 최악의 폭염을 계기로 최근 뜨겁게 이슈화되고 있는 누진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전체 전력의 절반을 넘게 사용하는 기업의 에너지 과소비는 눈감은 채 오직 서민들에게만 희생과 책임을 강요하고 있다. 기업에는 막대한 전기요금 혜택을 주고 있는 반면 가계에는 전기요금 폭탄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폭염 찜통 속 낡은 아파트들 정전 속출…한전은 '나 몰라라’
최근 폭염에 전기 소비가 급증하다 보니 노후 아파트의 경우에 정전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정전 피해를 보더라도 보상받을 길이 없고, 더 이상한 것은 낡은 변압기를 교체하는 비용 역시 고스란히 주민들의 부담이다. 8일밤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가 7시간 동안 정전이 됐다.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세 시간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찜통더위에 잠을 못 이룬 것은 물론, 냉장고 속 음식도 몽땅 녹아버렸다.
인천 연수구의 한 주부는 “하루에 몇 번씩 (정전이) 되더라고요. 에어컨 안 되니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라고 울상을 지었다. 오래된 저압차단기가 고장이 나면서 교체하기 전까지 아파트 한 개 동이 정전된 상태로 있었다. 최근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노후화된 아파트의 경우 변압기가 버티지 못하고 정전되는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7월 말까지 정전 등 전기사고 신고 건수는 3만 7천 건으로, 지난 5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정전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한전 등에서 보상받을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다. 아파트 관리비에서 돈을 마련해 변압기를 교체하는 의사 결정도 쉽지 않다. 낡은 아파트들의 주민들은 오늘도 불안 속에 짜증과 분노의 열대야를 맞고 있다.
한전, 이래도 되나?
이러한 상황에 지독하게 계속되는 폭염에도 서민들은 전기요금 누진세로 인한 요금폭탄 때문에 에어컨조차 마음대로 틀지 못하고 있는 반면, 비정상적 비합리적 누진세로 이득을 보고 있는 한국전력 직원들은 단체로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난 것으로 드러나 분노와 빈축을 사고 있다. 세계 에너지 산업 현장을 체험한다는 명목인데 1인당 900만원이나 소요되는 연수일정이 관광견학 등으로 채워져 전기요금 누진세를 통해 얻은 이익을 직원 해외 관광경비로 낭비하는 꼴이라는 비판과 분노가 일고 있는 것이다. 한전 내부 공문에 의하면, 한전은 지난 6월 말 '글로벌 메가 트렌드 현장 교육'이라는 해외 연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해당 연수프로그램은 에너지 신가치 창출 모멘텀을 확보하고 직원의 창의·혁신 역량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올해 처음 실시됐다. 한전은 내부 공고를 통해 지난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수자 100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20명 씩 5개조로 나뉘어 7박 8일 일정으로 휴가철인 지난달 말부터 이달 말까지 약 한달 동안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탑승했거나 탑승할 예정이다. 한전이 이번 연수에 쓴 비용은 총9억원으로, 국민의 피같은 비합리적 전기요금이 직원 1인당 900만 원 정도로 짧은 연수 일정을 위해 쓰이는 셈이다. 하지만 이 연수가 소위, 교육으로 포장된 관광성 외유라는 점이 분노와 비난의 이유인 것이다.
연수 계획서에 담긴 교육방법에는 스탠포드대학의 토니 세바 교수 등 해외 석학 특강과 테슬라와 구글 등 현지 기업탐방, 그리고 워크숍이 전부다. 이 외에는 대부분 ‘관광일정’이라는 것이 내부관계자의 설명이다. 연수 선발자가 대부분 간부급 직원이라는 점도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한전의 이번 연수에는 2직급(부장)과 3직급(차장) 등이 다수 선발되고, 연차가 낮고 교육 성적이 우수한 직원은 탈락됐다. 실제로 100명의 연수 대상자 중 2직급은 39명, 3직급은 38명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연수 대상자 선발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지적이 난무하고 있다. 한전 내부 문서에는 연차가 높은 직원이 선발될 수 있도록 '연공서열' 중심으로 평가 배점을 설정했다고 전해진다.
평가 항목(100점 만점) 중 경력점수의 만점은 20점, 최하점은 8점이지만, 토익점수는 15점과 5점으로 낮았다. 예컨대 10년 차 이상 직원이 토익 최하점을 받으면 25점인 반면 3년 차 미만 직원이 토익 최고점을 받아도 23점으로 뒷순위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 누진제 등으로 실적이 향상되자 간부급 직원들의 외유성 관광을 보내기 위해 연수라는 엉뚱한 구실을 만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우리경제의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7% 오르는데 그쳤지만 전기요금은 7.2%나 이상급등했다. '요금 폭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전기요금 누진세로 인해 사실상의 전기요금 인상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한전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1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호실적을 낼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한전 내부 관계자가 "이익이 늘어나니 이런 저런 명분을 만들어 간부들 해외 관광 시켜주는 것"이라며 "대상자들이 영어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무슨 교육을 받는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이번 해외 연수는 외유성이 아니고 변화하는 에너지 산업의 글로벌 트렌드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며 "갓 입사한 직원과 퇴직을 앞둔 직원이 연수를 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보고 30대 이상 10년 차 이상 직원들을 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대답은 매우 궁색하기 짝이 없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한 시민은 지금 한전을 보면 마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시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편집국장 권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