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정치권 여야없이 이전투구(泥田鬪狗)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결과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가덕도의 부산과 밀양의 대구·경북·경남·울산 간 감정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급기야 정치권은 여야 할것없이 지역의 큰 이슈로 부상했으나 전체 국민은 안중에 없는 볼썽사나운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지역 이기주의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영남권 신공항 건설’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해법을 내놓아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급기야 14일, 부산에서는 2만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만5000여명)이 모인 대규모 궐기대회까지 열렸다. 선정 발표를 앞두고 실력행사로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뜻이다.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부산 남포동 구 미화당 앞 광장에서 열린 가덕신공항유치 범시민 궐기대회에는 부산의 100여개 사회단체와 시민 등 2만여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정부와 청와대, 국회 등에 제출한 뒤 관철되지 않을 경우 끝까지 투쟁하기로 했다. 행사 후 시민단체 대표들은 부산시청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집회 현장에는 새누리당 부산시당위원장인 김세연 의원과 유재중 이진복 배덕광 의원, 야권에서도 더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김영춘 의원과 김해영 의원 등이 참석했다.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이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신공항 선정을 놓고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지역 의원들은 3월 29일 대구가 지역구인 친박(친박근혜)계 조원진 의원의 ‘선물 보따리’ 발언을 문제 삼았다. 조 의원이 총선 선거대책위 발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신공항 입지가 경남 밀양으로 선정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신공항과는 전혀 다른 문구다. 용역 진행 사항도 전혀 모른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부산지역 의원들은 조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 1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면담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도 다음 날 정 원내대표와 만나며 맞대응했다.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14일 국회에서 신공항 입지 선정과 관련해 새누리당 영남권 의원들을 상대로 비공개 개별 보고를 하려다 돌연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등 4개 시·도 단체장들은 이날 오후 2시 경남 밀양시청에 모여 공동 호소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17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은 갈등을 해소하자면서 밀양이 돼야 한다는 이중적인 기존 입장을 되풀이만 했다. 이처럼 부산과 영남 4개 시·도가 경쟁적으로 실력 행사와 여론전에 나서는 것은 신공항 입지선정 결과 발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4일 이전 입지선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야권도 갈등을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차기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가덕도 신공항 후보지를 찾아 “부산 시민은 입지 선정 절차가 객관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되고 있느냐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며 사실상 가덕도에 힘을 실어줬다. 다만 대구가 지역구인 더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이날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이 정치적 사안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며 “전문가들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은 확인되지 않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비방전에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이날 성명을 내고 “대구·경북·경남·울산 단체장들이 회동한 것은 신공항을 정치 이슈화하는 것으로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4개 시·도도 부산에서 2만여명이 모인 것은 명백히 정부를 압박하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밀양 내정설, 결과 불복설 등 각종 설과 함께 음모론도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여야 구분 없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가덕도와 밀양으로 갈려 다투면서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발표결과에 따라 정권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라 정부의 조정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엄원지 대기자